Amy Winehouse - Rehab
야구 경기장에서 축구 선수처럼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탈수로 쓰러져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1.5리터 포카리스웨트 병을 들고 다녔고, 세 병 정도를 너끈히 비웠는데도 화장실 한번 제대로 가지 않았던 날. 프로 선수들이 한 경기(90분) 당 평균 8-9km를 뛴다고 하니, 풀타임 세 번 정도를 뛴 셈이다. 평소 6,000 걸음 정도 겨우 걷던 주제에 무슨 날이길래 저렇게 열심히 뛰어다녔냐면..
정말 뭐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하루였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무대가 세워지고, 설레는 표정의 사람들이 밀려 들어와 가득 차고, 바이브가 잔뜩 올라간 그 무대에 주인공들이 오르면, 밴드 연주와 함께 환호성이 터지는 장면이 타임랩스로 흘러간다.
그러니까, 화려한 무언가들이 잔뜩 지나갔다가 다시 텅 빈 공터가 될 때까지의 아주 밀도 높은 시간들만을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수백 명의 스태프들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고, 싸우기도 하다가, 또 웃었던 건 모두 딱 한 가지의 같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다, 는 어처구니없는 순수한 마음.
그 목표가 달성되고 난 후 찾아온 건, 엄청난 성취감과 동시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공허함이었다. 이상하리만큼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이 너무 느꺼웠던 나머지, 이 감정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될 때까지 - 그러니까 아마 평생 - 이 일을 하고 싶다는 다짐까지 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든 공연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수 Amy winehouse의 이야기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주인공이 무대에 오른다. 제대로 서있는 것조차 못해 스피커에 걸터앉는다. 비틀거리며 노래를 시작하지만 노랫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한다. 실망한 관객들은 야유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 이후 예정되어있던 유럽투어를 전면 취소하고 재활치료에 들어간다. 애석하게도 정확히 일주일 뒤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세르비아의 공연은 그녀조차 알지 못했던 마지막 공연이었던 것이다. 그녀 나이 스물일곱의 일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조금씩 어긋나 폭력과 파멸로 치닫던 관계, 외모 비하에서 시작된 끝없는 자기 비하, 자신을 괴롭히는 타블로이드의 기사나 파파라치와의 형편없는 승부, 어쩔 도리가 없는 단계까지 이른 약물과 알코올 중독.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능을 돌려주고 아무런 방해 없이 거리를 걸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다큐멘터리 영화 Amy 속 대사)'는 그녀의 슬픈 고백은 아니 그녀의 삶은, '나도 술 같은 건 다시 마시고 싶지 않아, 그냥 친구가 필요해서 그런 거야.(정규 2집 <Rehab> 가사)'와 함께 종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쓰자면, 약이나 술에 취해 엉망진창이었지만 언제까지나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자 했던 싱어송라이터. 취기가 잔뜩 묻은 멜로디 속에 자전성이 도드라지는 슬프고 아름다운 서사들. 그 모든 총체가, 바로 에이미 와인하우스였음을.
2017년 말, 우리의 곁을 떠나간 또 다른 스물일곱을 생각한다. 하얗게 입김이 서리던 추운 날이었고, 조금씩 눈이 내렸던 날. 용산역 근처에서 술을 마시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의미 없는 질문을 하던 내게 당신은 말했다. 오늘은 눈이 오지 않았냐고. 슬픔이 늘 고여 있던 사람이라 이렇게 눈이 오는 아름다운 날을 아마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미어져왔다.
당시 소식을 접한 나와 주변의 동료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너무 무기력해했다. 음악 산업의 종사자 중 하나로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죄책감을 공유해서였던 거 같다.
상품이나 브랜드의 하나로 취급하고, 매일 같이 무섭게 업데이트되는 수치로 그들을 평가하며 보낸 무심한 일상의 업무 속에서 많은 것들을 잊고 있었다. 그들도 '사람'이라는 걸.
스타라는 건 승자 독식성을 전제로 한다. 모두가 특별할 수는 없으니, 한 명의 스타를 위해 수많은 스타 아닌 스타들이 있다. 한편 스타가 된다는 건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에 의한 것은 아니다. 상황이나 운 같은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의 요소들이 크게 작용한다.
다시 말해, '꿈'과 그를 향한 노력으로 버텨내기엔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다. 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늘 불안정한 상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리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직업군임에도, 역설적으로 심리적 지원에 대한 접근이 가장 어려운 직업군이기도 한 셈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은, 젊은 세대를 위한 알코올 및 약물 중독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재단(http://amywinehousefoundation.org/)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평생 이 일을 하기로 한 다짐을 지켜나갈 수 있게 된다면, 이 산업의 시스템을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더 나아가 그들의 영향력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괜찮은 곳으로 바꿔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