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약 1
대학 졸업 준비생이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마약을 접했다. 과 대표로 며칠간 세마나를 참석하게 되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 첫날, 둘째 날과 똑같이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행사장을 나왔다. 첫날 점심시간부터 무리 중 세부 출신인 남학생이 저렴하고 맛있어서 가성비가 좋다고 추천했던 식당에 갔다. 어린이 입맛이라면 누구든 좋아할 만한 맛의 메뉴들이 있었고, 나는 데리야끼 그릴 치킨과 페스토 파스타를 시켜 먹었다. 같이 간 학생들은 비슷한 메뉴들을 골라 함께 점심을 먹고 행사장으로 돌아가려 차에 탔다. 그날은 식당을 추천한 남학생의 차로 이동했었는데, 이제 점심식사를 마쳤으니 행사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본인은 잠시 chill time을 가져야겠다며 무슨 뜻인지 알겠는 사람만 먼저 차에 타라고 했다. 그랬더니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간 친구들 중에 나만 빼고 우르르 차에 탔다. 멍하게 있던 나에게 친구들이 웃으면서 ‘너도 타!’라고 해서 차에 탔다. ‘이게 뭔지 몰라?’라며 내 눈앞에 보여준 것은 잘게 잘려 있는 대마초가 들은 지퍼백이었다. ‘이거 차에서 그냥 막 해도 돼? 걸리면 어떡해?’라는 물음에 친구들은 다시 한번 웃음이 터지고 괜찮다며 돌아가며 스모킹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호기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Lauv의 Modern Loneliness 가사 we love to get high but we don’t know how to come down처럼 마약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고, 뉴스에서 보던 마약 중독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절대 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아 주겠다고 말해줬다.
전 대통령 두테르테가 임기 시작과 동시에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할 만큼 필리핀에서의 마약은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주위에 한두 명 정도는 마약을 해본 사람이 있다고 할 정도로 많다. 해안의 경계가 허술한 섬나라 필리핀 안으로 마약이 들어올 통로는 그리 좁지 않기 때문이고, 뉴스에도 여러 번 언급되듯이 정치가들이 마약 거래상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마약의 종류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듯이 필리핀도 그러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대학생 때 접했던 대마초가 필리핀의 샤부 (shabu)와 맞먹을 정도로 가장 흔한 종류이다. 온라인 매체에서 알려주듯이 대마초는 주로 잘게 잘린 대마잎을 태워 그 연기를 들이마시며 복용하는 형태이다. 그 외에도 대마로 기름을 짜낸 대마유를 혓바닥 아래에 두세 방울 떨어뜨리는 형태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격이 조금 더 비싸다. 인류에 도움이 되는 식물로 개발되었었고 여전히 의료용으로는 합법적인 약이지만, 연기를 흡연하는 행위 자체가 폐에 좋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연기로든 액체로든 섭취 후 30분 정도가 지나면 없던 안정감과 평안함을 느껴 안 오던 잠을 잘 수 있거나, 오감이 증폭되어 시각으로 말하자면 3D 같이 입체감을 느껴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을 주거나, 운동능력이 저하되는 효과가 있는 반면 평소에 잘 웃지 않는 사람도 한번 터지면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웃음이 지속되는 효과 때문에 사람들이 주로 이약을 복용한다.
마약과의 전쟁의 주 타깃이 되었던 빈민층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니 빈민층이 주로 사용하는 마약 종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샤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메스암페타민 마약을 할 돈을 구하기 위해 빈민층 사람들은 범죄를 행한다. 마약 복용 후 저지르는 범죄보다 복용하기 위해 저지르는 범죄들이 더 무서울 따름이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지 말고 차라리 음식을 나눠주라는 이야기도 돈을 건네주면 의식주를 챙기기보다는 마약을 살 것이라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약과의 전쟁 이후로 그런 경우는 좀 줄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샤부’가 든 봉지를 들고 다니는 길거리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필리핀의 중상층 사람들이 주로 복용하는 마약들도 있다. 케타민이라는 마약처럼 환시 경험을 하여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와 주변 사람이나 사물과 유합해 자신의 몸을 볼 수 있는 유체이탈을 경험할 수 있는 고단수 마약도 있겠지만, 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식 수준이 낮아지면서 황홀하고, 흥분하게 만들어 파티에서 많이 사용되는 엑스터시 MDMA (메틸렌 디옥시 메스암페타민)가 그의 한 종류이다. 복용 후 30분 정도가 지나면 입이 마르고 동공이 확대되면서 밤새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본인이 하는 모든 행동과 타협하게 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근감을 느끼게 해 주어 파티에 많이 사용된다. 그만큼 뇌의 세로토닌 신경다발을 손상시켜 이를 복용하거나 중독된 사람들은 정서가 저하되며, 알레르기가 있어 복용 직후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만 아니라면 복용 후 잠이 오질 않고, 잠을 잘 때까지는 극한 슬픔이나 패닉을 느끼는 것이 부작용이다. 이런 정신착란으로 인해 2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던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었다.
새끼손가락 4분의 1 정도 크기의 종이에 뿌려 말린 형태의 애시드 LSD (리세르 그산 디에틸 아미드)도 필리핀 중상층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약 중에 하나이다. 기분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는데 불안한 상태에서 사용하면 내면의 공포가 효과로 드러나 끔찍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락 계통 음악에서는 Live, Suffer, Die로도 부른다. 이 약을 복용했을 때는 함께 대화하던 사람이 눈을 감으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는가 하면, 고양이 울음소리와 같은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손톱이 긴 아주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어깨를 톡톡톡 두드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마약을 복용하면 성적인 충동도 활발해져 관련 범죄를 많이 일으키게 하는 것도 이러한 마약들이다. 함께 있는 사람들의 몸을 더듬게 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원하지 않는 관계를 맺을 정도로 판단능력이 흐려진다고 한다. 마약을 복용했을 때 잠깐의 좋은 기분만 제외하면 안 좋은 것밖에 없다. 그렇다면 필리핀 사람들은 왜 마약에 의존하고 사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