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마약 2
경찰들이 마약 조사관들과 함께 우리 회사에 들이닥쳐 직원들을 몇 잡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안쓰러움보다는 ‘잘 잡아갔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잔인한가 싶기도 할 테지만 회사에 마약을 쓰는 사람을 두고 있는 일은 그만큼의 여파가 있기 때문이다.
여느 날처럼 그날의 새벽도 일을 시작하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러 명에서 지내는 숙소에 그곳 팀장이 직접 알람이 되어 다들 일어나라고 큰 목소리로 사람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이 이미 몸에 배어 있어서 먼저 따뜻한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도 한두 명 있었고, 그들을 포함한 20~30명의 사람들이 모인 그 시간대에는 다들 에너지를 모아 하루를 시작하는 때였다. 이 직원들은 똑같은 일을 매번 반복하면서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기 전에 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받아 다음 장소로 발령받고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일을 정말 끊임없이 하는 이 사람들에게 가족을 볼 기회는 연말 혹은 병간호가 필요한 가족이 나타났을 때뿐이다. 그럼에도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각자 일들을 하는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일자리를 잃지는 않을까 두려워 너무 즐겁다고 대답해준다. 그렇게 아침식사 당번이 식사 준비를 모두 마쳐 각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조금 비좁은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하거나 샤워를 했다. 제삼자의 눈에서 보았을 때는 분주한 아침으로 보이겠지만, 이런 단체생활을 반복해온 사람들 중에 가장 최근에 합류한 사람마저도 3년이나 되었을 정도로 본인 일에는 경력이 어마어마해 이런 아침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워졌다. 다들 이런 생활에 능숙한 것이다.
그런 평온하고 뻔한 아침을 깬 것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는 경찰차 3대였다. 숙소로 쓰던 그 집 앞마당에 경찰차를 주차시켰을 때 사이렌 소리는 꺼졌지만, 대낮이어도 빨간불 파란불이 교차되는 것이 심란하게 느껴졌다. 차에서는 다여섯명의 남자들이 경찰복을 입은 채로 내렸고, 직원들의 이름을 몇 개 호명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한 사람들은 누구의 이름이 불릴 것인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어 하나같이 웅성웅성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만 부르고 가만히 있을 경찰들이 아니었고, 그 와중에 어느새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호명한 사람들 외에도 수배할 만한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눈치였다. 허락 없이 신발도 벗지 않고 숙소 안을 이곳저곳 돌아보며 개인 짐들을 들추는 경찰들이 못 마땅한 사람들이 반항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차피 다들 마약 중독자 같이 생겼고 작은 꼬투리라도 잡히면 잡아갈 테니 조심하라고 경찰들은 반격했다. 필리핀은 경찰이면 다니까.
그날 경찰들은 5명의 직원들을 체포해갔다.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정말 마약을 사용해왔던 사람 1명과 같은 무리에서 이와 어울려 지냈다는 이유로 4명이 수갑을 차고 경찰들에게 무자비하게 체포되었다. 이 5명이 유치장에서 심문을 받는 동안 우리 회사 사람들은 연락이 오면 받아주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마약 사용 여부가 확정이 되어 회사가 돈을 조금만 빌려주면 풀려날 수 있으니 몇 푼 만 빌려달라고 졸라대는 이 직원을 못 마땅해하시는 대표님의 지시였다. 나한테는 연락이 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회계팀 직원들부터 프로젝트 매니저까지 꽤 여러 명에게 연락을 돌렸었나 보다. 어제까지도 보고와 지시를 주고받으며 함께 일하던 사람이 그리 벌벌 떨며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직원을 도와주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전혀 좋을 것이 없다고 변호사가 말해주어, 현장으로는 인사과 팀장을 보내 놓고 우리는 다 같이 가만히 소식을 전해 듣기만 했다.
교도소로 가는 사람 1명과 풀려나는 사람들 4명으로 나뉘면서 어느새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함께 잡혀간 4명은 마약 사용을 했으나 1명의 설득으로 인해 시도해보는 식으로 사용한 것이었고, 교도소로 간 1명은 알고 보니 상습범이었던 것이 이유였다. 시도만 해보았다고 진술한다고 해서 다 풀려나는 것은 아니니 한번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되나, 마음먹고 마약범 체포를 하러 간 경찰들의 마음을 어떻게 녹였는지 4명은 유치장 생활 며칠 만에 풀려났다. 그리고 교도소에 갇히게 된 그 직원 1명은 알고 보니 몇 번이나 우리 매니저에게 적발되었지만 매니저가 그냥 넘어가 주었던 적이 있어 자비를 구할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매니저를 혼내기도 했지만 밤낮으로 일해야 하는 경우에 마약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가족들을 만나지도 못 하는 환경에서 마약의 쾌락에 의지하기만 하는 사람들을 마냥 혼낼 수만은 없었다고 하는 매니저를 우리는 이해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마약범이 적발되었을 때 바로 뽑아내야 하는 이유는 1명으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에게도 쉽게 퍼질 수 있는 것이 마약의 중독성이기 때문이다. 밤에 일을 해야 할 때는 잠을 깨울 수 있고, 몸 쓰는 일을 해야 할 때는 에너지 충전을 하거나 허기를 달랠 수 있고, 반복적인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는 것이 마약이 하는 일이었기에 같은 일을 하고 같은 환경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이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쉽게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회사와 직원들을 지키는 차원에서 우리는 이 사건이 있고 난 뒤로는 마약 검사를 주기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인사과에서 예고 없이 사람을 보내어 직원들을 가까운 마약 검사소에 데려가 소변검사를 시켰다. 거의 확실한 심증이 있어 소변검사를 시키는데도 음성이 나오는 사람들은 모발 검사도 진행 해보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머리카락 한 가닥이 아니라 삭발을 해야 한다고 하여 소변검사로 마무리 짓기로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렇게 의심을 받은 직원들은 체포될까 두려워서인지, 마약 할 돈을 다른 데에 사용해서인지, 더 이상 마약이 즐겁지 않아서인지 그 후로는 마약 검사에 양성이 나오는 직원들은 없다. 그래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 추가로 마약 관리청에서 하는 예방교육도 여러 번 받아 보았었다.
그 일이 일어난 후 몇 개월 간격으로 생각날 때마다 이 직원에 대해 인사과에 물어보았다.
‘고향에 있는 사촌이 돈을 들고 와 경찰들이랑 협상하려 했는데 잘 안 됐대요.’
‘경찰들이랑 이야기가 돼서 본가에 더 가까운 교도소로 옮겨졌대요.’
라는 대답을 듣다가 최근에 또 생각나서 물었더니
‘다른 회사에 취업했대요, 저희 회사랑 같은 일 하는. 형을 다 안 마치고 풀려났는데, 어떻게 곧바로 다른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고 저번에 소식 들었어요.’라고 인사과에서 대답해줬다.
나올 수 있는 방법들은 많았을 것이다. 주로 뒷돈을 주는 것이 방법일 테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그런 허술함이 통하는 곳이 필리핀이니까 말이다. 가 본 적은 없지만 정말 열악하다는 것은 소식만 들어도 알고 있었던 필리핀 교도소에 있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매니저가 몇 번이나 마약 사용을 적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봐주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직원의 근태가 좋아서였는데,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정신을 갖고 있는 이 성실한 직원이 교도소 생활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내부 생활 및 시설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들도 범상치 않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당연히 그렇겠지만) 교도소 가는 것을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 저 방법 모두 생각해 본 이 직원이 경찰의 마음을 얻는 방법도 배워 풀려난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정말 교도소 안에서 썩는 것이다.
필리핀은 이런 이유 외에, 생존을 위해 마약을 하는 경우가 다수이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듯이 팬데믹 이전에는 거리에 봉지나 작은 페트병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샤부’를 하는 마약쟁이들이다. 기본 상식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허기도 달래고 몸 쓰는 일도 하며 근근이 살아보기 위해, 국가적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들 현실에 부딪혔을 때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겨내 보기 위해, 그리고 즐거움 위에 쾌락을 느껴보기 위해 마약 사용을 한다. 하지만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사실이라 어쨌든 무서운 것이 마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