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차 -
몰스킨 공책을 집에 놓고 온 관계로 몬트리올의 글은 이 공책에 쓰기로 한다. 공책을 두고 온 게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걸 보면 글쓰기가 얼마나 내 삶의 한 부분이 됐는지 또 한 번 새삼 깨닫는다.
여행은 언제나 나에겐 가능성의 세계였다. 미지의 영역이자 또 한 편으론 동어반복의 세계이기도 하기에. 카페에 앉아있는 나는 아무 경험도 없는 백지상태이자 모든 것을 경험해 본 영수증과도 같았다.
여행의 세계는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과 뒤로 돌아가는 시간이 포개지는 기적적 체험이다. 그리고 나는 그 포개짐 위에서 시간의 역방향성을 생각하며
아, 이래서 나는 여행을 사랑했구나.
그것은 내가 시간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추억할 수 있고 동시에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과 상상의 세계, 그것이 아마도 여행의 세계 아닐까.
2일 차 -
늦게 일어난 토요일. 몬트리올 골목을 걷다가 cafe osmo라는 카페에 들어선다. 커피 진열대 위에 올려져 있는 도쿄 재즈바 사진집을 훑어본다.
그리곤 너의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들은 간신히 아문듯한 상처를 다시 열어놓는다.
우리는 왜 가까워지고 다시 또 멀어졌을까. 우리의 거리감을 사랑할 순 없었는지. 잠잠해 있던 나의 감정은 시각을 지나치게 믿는다. 보이는 건 심장 깊숙한 곳에 박히고, 혼동된 심장은 천천히 뇌에게 주파수를 전달한다.
너와 네가 같은 장소로 돌아오게 되면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될는지. 네가 너무 가깝게 있는 것도 무섭지만, 그렇다고 너와 단절되는 것 또한 싫어서.
"잠깐 딴생각을 하다가 언덕을 잊어버린 언덕처럼 앉아 있으면 네가 지나갔다." - 임승유
3일 차 -
자전거가 램프에게 속삭이고 있다
있잖아, 나는 너처럼 세상을 환하게 하고 싶어
나는 그저 굴러만 갈 뿐 -
자전거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주인이 그를
매섭게 끌고 갔다.
어제는 내가 자전거가 되는 꿈을 꾸었다
내일은 네가 부서진 램프가 되는 꿈을 꿀 것이고
금발머리 소년은 분수 사이로 뛰어갈 것이다
분수는 비가 오는 날에도 분수일 것이고
소년이 흘리는 눈물은 비처럼 쏟아지는 것일까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것일까
저기, 공원이 있다
공원에 다가갈수록 공원은 다른 공원들을 집어삼킨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고
공원은 나를 집어삼킨다, 그리고
"신비로워지고 싶으면
네 얼굴을 지우고 자전거를 타봐"
내가 나를 집어삼킨다.
4일 차 -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 연애는 - 파티 같은 거라고. 모두들 이 만찬을 즐기기 위해 요리를 가져오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시간이 되면 해산을 해야 한다고.
몬트리올에서 M을 만났다. 퀘벡에서 자란 그녀는 유일한 아시아인으로서 느꼈던 모멸감과 자괴감, 부모님의 이혼 후에 감당해야 했던 아픔들을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정말 슬픈 사람들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말한다. 나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람을 쓰다듬어준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아껴준다.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는 시간은 언제나 애틋하고 아프고 행복하고 쓰라린다.
급속하게 가까워진 두 남녀는 이제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공원 벤치에서 일어서면 꿈의 시간에서 깨어나고 현실이 찾아온다. 남자는 아무리 여자를 아낀다고 해도 현실의 문 앞에선 턱 없이 초라한 거렁뱅이라는걸 안다.
남자와 여자는 손을 꼭 잡고 입을 맞춘다. 여자의 볼 위로 눈물이 흐른다. 이 둘은 이제 만찬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예감하고 있다.
"사라지지 마."
"안 사라져."
누가 무엇을 말한 지도 모른 채, 만찬은 끝이 난다.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 쉼보르스카
5일 차 -
존재한다는 건 그저 하나의 꿈인 걸까? 그렇다면 꿈을 꾸는 우리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결국엔 사라질 우리이기에.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도 아스라이 부서질 추억조각들이기에.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던 도중 너를 만났다. 너의 시간이 내 시간 위로 포개졌다.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벌써 너는 어렴풋해지고, 며칠이 지나면 너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인생을 사라짐과 헤어짐의 반복. 이별을 잘해야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죽지 못한다면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상념에 잠기지 않으려면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한 곳에 머무는 새가 계절이 바뀌면 떠나는 것처럼.
6일 차 -
여행을 하면서 슬퍼지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이 흥분이, 주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 앞에서 무릎이 저절로 꿇리는 이 감정이, 언젠가는 사라질 운명인 삶의 망각적 성질을 자각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하고 떠나는 것 같다. 망각과의 전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고. 이 모든 게 결국엔 보이지 않는 소실점에 다다르기 위한 준비 운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 나는 - 기록한다. 6월의 어느 날, 퀘벡에서 보냈던 하루를 추억할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기에. 기록은 미래를 먼저 살아본 어린아이가 작성한 서투른 보고서 같은 것이다.
그렇게 작성된 보고서:
네가 다녔던 학교 교정에 앉아 있던 내 모습
찬연하게 내리쬐는 햇빛 사이로 스며들던 산들바람
잔잔하게 흐르는 이루마의 경음악
내 사진을 찍어주던 프랑스인 노부부
텅 빈 광장
텅 빈 내 마음
공사 현장의 소음
벨그라드를 연상케 하던 올드 퀘벡의 시내
학교 유니폼을 입고 도시를 유영하는 너
낯선 세계에서 만나게 된 우리
태양에 그을려진 내 목덜미
파놉티콘 같은 수 백개의 창문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저귀는 새들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덧없어질게 뻔하면서도 -
그 순간만큼은 이 보고서가 내 삶의 전부라고 믿어버리게 되는 사랑의 역설.
너와 나는 자유로이 사라질 것이다.
7일 차 -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는 바람에 퀘벡 성곽 안에 있는 스타벅스로 몸은 피신했다.
사실 도시는 비를 맞으며 활보하는 게 더 낭만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비가 싫다.
하지만 걷는 건 좋다. 새로운 도시는 더더욱 좋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를 걷는 건 제일로 좋다.
일상의 바깥에서 마주치는 무수한 사람들과 사연들... 그 관계들의 가능세계 안에서 아주 잠시동안 춤을 추다 이내 각자의 길을 걷는 우리.
내가 봤던 유럽풍 건물들, 심취해서 들었던 거리 공연, 사유했던 지난날들... 이 모든 것들은 순간 속에서 영원하면서도 한순간에 잊히는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사는 것도, 너와 만나게 된 것도, 당신에게 인사를 하게 된 것도
새로운 도시를 정처 없이 떠도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쏟아지는 오후의 퀘벡에서, 어쩌면 너를 만날 수도 있을 법한 시간에 이렇게 글을 쓴다.
퀘벡도, 우리도, 세상도 참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부재로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 우리 내면에 끝없는 공허함을 채워놓는다는 것." -장석주
마지막날 -
모든 것들은 아무리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1주일 전, 몬트리올 도착 첫날, 카페에 앉아서 끄적끄적 몬트리올의 첫인상을 적는 기억이 벌써 멀게 느껴지듯이. 악착같이 뇌의 몸뚱아리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기억들도 제 풀에 지쳐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경험은 부재를 생성하고, 감정은 공허를 제조한다. 내면을 채울수록 우리는 더 허기지고, 더 비워진다.
하지만 비어진 상태에서 비어지기 전의 시간을 돌이켜 볼 때 우리는 우아한 그리움에 젖는다. 그건 아마도 '무'와 '유' 사이에 놓인 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자신을 보며 느끼는 향수 같은 것이다.
그는 어디서 온 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저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그 다리는 미래와 과거를 이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리 위에서 눈물의 춤을 춘다. 비워지기 전의 우리를 기억하며, 텅 비어진 우리를 위로하며.
그 벤치를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