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2019)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총살당한 시점 이전 40일의 시간을 다룬 영화이다.
기본적으로 김재규라는 인물의 40일을 조명한 영화이지만, 동시에 당대 사회상과 권력구조의 밑바닥을 통찰하는 영화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단순한 역사물이라고 말하기엔 영화를 담은 그릇이 생각보다 컸다. 많은 영화인들은 해당 영화가 역사라는 소재에 매몰되지 않고 영화 본연의 가치를 지켜냈다고 평가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로 분류될 수 있는 사건을 다루었기에, 영화는 특정 방향으로 치우쳐 정치색을 띌 위험이 있었다. 만약 정치색이라는 줄타기에 실패하였다면 영화 자체에 대한 몰입이 방해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남산의 부장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줄을 타고 더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소재에 압도되지 않은 ‘남산의 부장들’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총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비어있는 간극들을 영화만의 픽션으로 교묘하게 엮는다. 아마 이러한 부분에서 많은 영화인들이 호평을 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중간중간 섞여있는 픽션들은 너무도 교묘하여 관객 입장에서는 어느 부분이 픽션이고 어느 부분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내용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분간이 되지 않는 교묘한 픽션들은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느껴지는 방해물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더욱 빠르고, 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는 다큐가 아니다. 역사 영화를 관람하는 대다수의 관객들 또한 영화의 픽션적인 요소를 감안하고 관람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역사영화들은 진위 논란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잃고 말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그러한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는 것은 이전까지의 많은 역사 영화들이 픽션을 엮는 과정에서 아쉬움을 남겼다는 뜻이 아닐까.
단순히 픽션을 교묘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만 영화‘남산의 부장들’이 눈에 띄었던 것은 아니다. 소재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도 영화는 소재에 압도되지 않았다.
단적으로 주인공 '김재규'라는 인물을 설정하는 방식에서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거부터 김재규라는 역사인물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들이 수반되었다. 단순히 박정희 체재에서 권력으로부터 멀어졌기에 김재규가 박정희를 총살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김재규의 마지막 생전 녹음 본에서 알 수 있듯이 박정희의 무분별한 통치 이념에 반기를 들어 박정희를 총살하였다는 의견도 있었다. 영화는 이 두 가지 대립적인 의견들을 적절히 절충하여 김재규라는 인물을 새롭게 풀어내었고 인물 자체의 매력도 또한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지 않았다. 영화 속에 특정 방향성을 내포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다양한 방향성을 동시에 띄게 만드는 것은 전자에 비해 배로 어렵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인물 묘사 과정에서 그 어려운 일을 해내었고 또다시 소재를 리드하였다.
소재를 갖고 노는 모습 그리고 소재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해내는 모습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소재에 갇히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관객에게 압도되지 않은 '남산의 부장들'- 절정 시퀀스에 관하여
영화‘남산의 부장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본인은 단연코 후반 절정 시퀀스를 꼽을 것이다. 너무도 식상한가? 물론 모든 영화에서 절정 시퀀스는 중요하고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절정 시퀀스가 갖는 의미는 다른 영화들의 것과 분명 다르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총살당한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적 사실로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다. 따라서 해당 총살 시퀀스가 절정 하이라이트임을 예상한 상태로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절정 시퀀스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기란 영화 입장에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 또한 그러한 걱정 속에서 절정 시퀀스를 초연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는 보란 듯이 그 어려운 도전을 해내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데 성공한 공을 총살 시퀀스 하나에만 부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영화는 영화 내내 절정 시퀀스의 성공을 위한 밑 작업을 진행하였다. 영화는 절정 시퀀스 이전까지 적절한 픽션을 가미함으로써 김재규의 행동을 개연성 있게 설명해주었고 계속적으로 음향, 구도 등의 장치 들을 통해 영화 내내 묘한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이렇게 절정 시퀀스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 뒤 영화는 새로운 의미의 반전을 통해 관객들을 놀라게 하였다.
영화는 절정에 이르러서 유사 롱 테이크로 해당 시퀀스를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단순히 절정 시퀀스의 단면만을 아는 관객들의 허를 찔렀던 것이다. 영화는 총살 장면의 다양한 단면들과 다양한 의미들을 선사하는데 집중하였다. 거기다가 이병헌의 완벽한 연기가 곁들여지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이가 예상했지만 모든 이가 예상할 수 없었던 절정 시퀀스가 탄생하였던 것이다.
영화 ' 남산의 부장들'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존재할 수 있다. 각 평가가 긍정적 일지 부정적 일지는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각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상이할 것이다. 해당 영화에 대한 개인적 해석과 평가를 존중하는 바이다. 그러나 개별 영화가 외적 요인들을 카리스마로 압도하고 이를 적절히 컨트롤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시대의 단면을 음미해보고 그 카리스마에 한번 압도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듯싶다.
-모르거나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
□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비친 권력의 모습 중 '보편적인 권력의 모습'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엇일까?
□ 누아르 장르로서 '남산의 부장들'이 다른 누아르 장르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