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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 Jan 19. 2021

빨리 한대 쳐봐!

파이트 클럽(1999)

(스포가 있는 리뷰입니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은 다중자아 및 반전을 활용한 영화들의 전성시대였습니다. '아이덴티티', '식스센스', '멀홀랜드 드라이브', 그리고 '파이트 클럽'까지. 다중인격과 반전 요소를 다루었던 영화들은 하나같이 주옥같은 작품들이었고, 그중 파이트 클럽은 해당 장르 시대의 주역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입니다.


전반 부 줄거리

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은 30대 중후반의 남자로 대기업 자동차 회사의 리콜 심사관입니다. 주인공은 6개월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주인공은 의사의 조언을 듣고 각종 치료 목적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해당 치료 모임들은 고환암, 불치병 등등 특정 병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마음을 나누고 위안받는 곳이었습니다. 치료 모임에 참석한 주인공은 신기하게도 그 안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치료 모임 덕에 내면의 평화를 되찾고 불면증이 다 나은 주인공은 매일같이 모든 치료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평화로운 나날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말라’라는 여성이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녀도 주인공처럼 어떠한 병도 지니고 있지 않았음에도 모든 모임에 참석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주인공은 그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불면증이 재발하여 다시 괴로워합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주인공은 그녀를 붙잡아 대화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려울 게 없는 말라를 모임에서 내쫓기란 쉽지 않았고 결국 격주로 모임에 참석하여 서로 만나지 않기로 그녀와 약속합니다.

이후 주인공은 리콜 관련 문제로 여러 지역을 방문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신상태가 계속 악화되는 것을 직감합니다. 매 순간이 사라지는 것만 같은 바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비행기에서 ‘타일러 더든’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비행기에서 만나는 인연을 일회용품에 비유하던 주인공은 타일러 더든의 솔직하면서도 거침없는 말과 행동에 신선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명함을 받고 헤어진 뒤 주인공은 집으로 향합니다. 집 근처에 다다른 주인공은 자신의 집이 폭발로 인해 모조리 불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갈 곳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비행기에서 만난 타일러가 생각나 그에게 전화를 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타일러 집에서 묵는 것을 허락받게 되는데 타일러는 대신 조건을 하나 겁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을 있는 힘껏 때려달라는 겁니다. 주인공은 고민하지만 이내 타일러를 한 대 때리게 되고 타일러는 아파하다가 주인공을 역으로 한 대 때립니다. 주인공과 타일러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이에 재미를 느끼고 둘은 제대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타일러와 함께 살게 된 주인공은 종종 타일러와 재미로 싸웠습니다. 눈탱이 밤탱이가 된 얼굴은 이미 그들의 고려대상이 아니었지요. 타일러와 주인공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고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점차 싸움에 참여하였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주기적으로 싸우는 모임이 결성됩니다. 타일러와 주인공은 이 모임의 이름을 파이트 클럽이라 정합니다.     


영화가 의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법

영화‘파이트 클럽’은 치밀하게 짜여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파이트 클럽'은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들을 보여주는데, 영화를 보는 중에는 해당 양식들이 왜 존재하는 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해당 양식들의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를 이해하게 되고 그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굉장합니다.

영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주인공을 일관성 있게 묘사하기 위해 그리고 주인공에 대한 감정 선을 탄탄히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주인공의 목소리를 보이스오버로 설정하여 영화의 플롯을 이끕니다. 영화학적으로, 화자가 프레임에 등장함에도 화자의 목소리를 보이스오버로 활용하는 것에는 다양한 의도가 내포되어있습니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경우에는,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과 주인공이 자신의 정신 상태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활용된 듯합니다. 초반부에 나오는 짧은 길이의 숏들 또한 동일 목적에서 사용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짧은 숏 길이에 압축되어 보이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답답함과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주인공의 불안정하고 비정상적인 심리상태를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이지요. 대체적으로 주인공을 클로즈업 혹은 미디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 것 역시 주인공의 피폐한 얼굴과 정돈되지 못한 주인공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된 방식 들일 것입니다. 이외에도 듀얼 프레임을 활용하여 관객에게 말을 거는 주인공의 씬을 담는 것, 페이드인 페이드아웃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것 등등.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영화는 영화를 관통하는 감정선이 ‘혼란’ 임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였습니다.

왜 영화는 이토록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강조하였을까요. 집요할 정도로 치밀하게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묘사한 영화는 결말에 도달해서야 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준 일관성 덕에 영화의 흐름과 반전에 쉽게 설득당합니다.     


영화의 의도가 메시지와 연결되는 방법     

영화 내내 타일러와 주인공은 분노, 해방, 자유라는 키워드를 강조합니다. 무엇에 대한 분노였을까요? 그리고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해당 질문들의 답을 각각 기득권 사회에 대한 분노 그리고 기득권 사회가 심어놓은 헛된 희망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기득권 사회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실질적인 기득권 집단을 의미하고 헛된 희망은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들을 통칭합니다.

자동차 회사 직원이었던 주인공은 자동차 사고를 분석하러 가는 장면에서 자신의 리콜 계산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리콜 계산법은 수학적이면서도 다소 잔인합니다. 주인공은 리콜 여부를 인명피해 가능성 보단 손익 가능성을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주인공은 곧바로 이어지는 흑인 여성과의 대화 씬에서 자신의 리콜 계산법이 직업윤리 측면에서 잘못되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추가적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회사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음으로써 전 사회가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주인공이 아무 생각 없이 그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험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행기의 추락을 기대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주인공이 자본주의 세상에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는 해석 방향에 힘을 실어줍니다. 초반부터 묘사되었던 주인공의 정신적 혼란은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영화는 자본주의 체계뿐만 아니라 현 사회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일반적 가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친구 ‘밥’을 만나게 된 고환암 모임은 남성성을 잃은 남자들의 모임입니다. 고환암 모임의 구성원들은 미국 사회가 강조해온 전형적인 남성성, 성공, 등의 가치들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더 이상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들을 수행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고환암 모임에서 주인공은 사회가 장려하는 가치들을 지킬 수 없다는 절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주인공은 해방감과 자유를 느낍니다. 주인공은 여태까지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들에 묶여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하였기에 사회가 심어놓은 쓸 데 없는 희망으로부터 자신을 놓아주었을 때, 비로소 자유를 느낀 것이겠지요. 주인공의 명상 동굴 속에 사는 펭귄과 말라가 ‘just slide’라 말한 것 또한 유사한 맥락일 것입니다.


 인물을 메시지와 연결시키는 방법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들 속에서 지친 주인공은 초반부터 무의식적으로 타일러를 마주해왔습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반전의 근거들을 심어놨던 것이지요. 우리는 영화 초반부에 지지직 거렸던 희미한 형상이 타일러라는 사실과 무빙 워크 반대편을 스쳐 지나가던 특이한 패션의 사람이 타일러임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사회가 주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내면에 타일러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타일러를 대면하는 비행기 씬을 기점으로 주인공은 타일러라는 자아를 완성시킨 것이지요.

타일러는 주인공의 원초적 본능이 인간화된 형태입니다. 말라와 섹스하는 사람이 오직 타일러뿐이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렇기에 언뜻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타일러가 한 명씩 있을지도 모릅니다. 완성시키지 않았을 뿐. 타일러는 본능적 자아라는 본분에 걸맞게 일반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되는 사회적 룰들을 무시합니다. 주인공이 타일러를 처음 만나는 씬에서부터 이러한 타일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일러가 주인공 앞을 지나갈 때, 타일러는 자신의 성기 부분 혹은 둔부 부분 어느 쪽을 보여주며 나가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주인공에게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뒀던 고민을 타일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 밖으로 꺼내버렸던 것이지요. 타일러의 아나키 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모습은 사회로 인해 피폐해진 주인공을 흔들 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주인공은 조금씩 타일러라는 자아에 지배됩니다. 효율성을 추구하고 시간낭비를 지양해야 한다는 상사 앞에서 피로 가득한 입안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모습은 원초적 자아에 지배되어가는 주인공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극단으로 치 으면 문제가 생기듯, 주인공 마음속에 파이트 클럽과 타일러에 대한 두려움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파이트 클럽의 방향성. 그 안의 모순

파이트 클럽의 주 구성원들은 대부분 사회로부터 버려진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입니다. 클럽원들은 사회적 가치로부터 도태된 사람들이기에, 그들 모두 주인공과 동일한 심리적 동향을 겪어왔을 것입니다. 타일러가 “우린 목적을 상실한 역사의 고아다. 세계 2차 대전을 겪어보지도 경제대공황을 겪어보지도 못했지만 정신적 대공황을 겪고 있다. tv를 통해 누구나 성공할 줄 알았으나 환상임을 알았을 때는 우린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클럽의 구성원들이 모두 주인공과 같은 경험을 하였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였기에 그들은 타일러의 메시지와 파이트 클럽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더욱 공감하고 동화되었던 것이겠지요.

파이트 클럽은 그들의 최종 목표가 신용사회의 몰락이듯 기득권 사회의 지배 논리와 가치를 무너트리고 싶어 합니다. 클럽은 원초적 본능에 근간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합니다. 기존의 가치 체계들을 개혁한다는 관점에서 클럽의 방향성이 혁신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타일러는 지속적으로 클럽원들에게 ‘그들이 사회로부터 버려졌고 모든 걸 잃어본 자만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하기에 타일러는 파이트 클럽원들에게 모든 것을 잃어볼 것을 그리고 극한의 고통과 마주해볼 것을 강요합니다. 타일러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증거로 파이트 클럽원들은 자신들의 손을 지지고 그 흔적을 남깁니다. 극단적 테러리스트 단체들이 연상되는 파이트 클럽의 내막입니다. 파시즘적이기도 하고요. 그들의 지향점이 긍정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클럽의 방향성이 과격해짐에 따라 주인공은 조금씩 클럽으로부터 소외감을 느꼈고 클럽의 방향성이 잘못되었음을 감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결국 주인공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작전 수행을 하다가 오랫동안 알고 있던 친구 밥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클럽원들은 밥을 물증이라 표현하며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인간 본연의 가치들이 무시받는 현 사회에 대한 분노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클럽원들은 ‘파이트 클럽’이라는 새로운 체계 내에서 한 인간의 존엄성을 인류의 제물이라 포장하며 쉽게 무시해버립니다. 이전부터 클럽의 방향성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밥의 죽음을 계기로 주인공은 타일러와 파이트 클럽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로 타일러를 찾으러 나섭니다. 파이트 클럽을 막기 위해서 말이지요.

      

밥과 말라의 존재

영화'파이트 클럽' 스틸컷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며 가장 눈길이 갔던 인물은 '밥'과 '말라'였습니다. 밥의 경우, 비중이 많은 역할도 아니었고 말라의 경우에도 영화의 흐름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역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과 말이 주인공의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들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입장에서, 밥은 처음으로 기존 가치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게 도와준 사람이자 죽음을 통해 파이트 클럽의 모순성을 깨닫게 해 준 사람입니다. 말라는 주인공에게 사랑에 대해 알려준 사람이었고 결국에는 원초적 자아 타일러와 맞서 싸우는 주인공의 내적 동기가 되어줍니다. 우정과 사랑으로 대변되는 각 인물들은 고여 버린 주인공의 생각을 바꾸는 중추적 역할을 했기에 서사적으로 의미가 큽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주인공은 타일러와 파이트 클럽의 노예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밥과 말라는 껍데기만을 쫓는 삶을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지키는 것 혹은 잘못된 것에 분노하거나 이를 바꾸기 위해 혁명 의지를 불태우는 것.

무엇이든 다 좋지만 그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인간 본연의 가치라는 사실을 밥과 말라를 통해 감독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반전 요소를 활용하여 신선한 재미를 가져다준 영화이자 다양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파이트 클럽’입니다. 무엇을 보든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든 관객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90년대 미국 사회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영화가 당시에 흥행했다는 것만으로도 해당 영화가 당대 사회상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할만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며 우리 모두 각자의 자아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a. 우리는 각자의 여러 자아들 중 어디까지 인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b. 파이트 클럽이 사회에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원초적인 방식을 활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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