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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 Jan 28. 2021

그냥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산다!

소울(2021)

(약간의 스포가 있는 리뷰입니다)     


실타래, 도넛, 막대사탕, 꽃잎, 피자 조각     

나의 경우에는 풋살화, 노트북, 손톱깎기, 식빵이려나?     

뭐든 좋다 그걸로 된 거니까!   

영화'소울' 스틸컷


주어진 것에서 의미를 찾고, 이에 관해 글을 쓰는 일련의 과정들은 리뷰어들에겐 피할 수 없는 강박이자 보람이다. 상반되는 듯한 두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글에 대한 공감 의사인 누군가의 '라이킷'들은 보람의 근원으로 나름의 자극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보람이라는 허상의 목표를 위해 억지로 의미 덩어리들을 토해내는 내 모습은 강박 그 자체이다. 강박이 보람보다 선행한 이유는 역시 최근 나의 글쓰기에서 강박의 비중이 더 커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단 글에 관련해서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 전체가 글에 대한 나의 단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끼던 차였다. 뭐랄까.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 간에 지켜지고 있던 선후관계가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랄까.

 

영화 <소울>은 어쩌면 이와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재징(jazzing) 일지도 모르겠다.    


‘물고기는 바다에 살면서도 바다를 찾으러 다닌다.’  
영화'소울' 스틸컷

 ‘조’의 마지막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소울>은 일상이 갖는 소중함을 피력한다. 하지만 <소울>이 주었던 벅찬 감동의 쓰나미를 단순히 “매일매일 즐겁게 살자”라는 단순한 주제로 치환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소울>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씬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초반부 씬으로 '22호'와 '조'가 처음으로 유 세미나에서 ‘조’의 기억들을 마주했던 씬이다. 다른 하나는 후반부의 씬으로 ‘조’가 피아노 위에 도넛 조각, 피자끄트머리, 실타래, 롤리 팝, 꽃잎을 올려두고 22호와 함께한 일상들을 회상하는 씬이다. 첫 번째 씬에서 반영된 조의 기억들은 하나같이 볼품없다. 허송세월 tv를 보는 조, 매번 테스트에서 떨어져 밴드 참여를 거절당하는 조. ‘조’의 말마따나 암울하고 의미 없어 보인다. 반대로 후반부 씬에서 회고되는 ‘조’의 기억들은 찬란하게 빛이 난다. 학생에게 재즈 음악을 가르치는 것,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쳐 드리는 것,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 22호의 첫 지구 경험들. 모두 따뜻하고 아름답다. 똑같은 ‘조’의 인생이지만 각자 상이한 방향으로 해석된 이유는 삶을 대하는 ‘조’의 태도가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영구불변의 인생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삶의 모든 편린들을 설정된 목표 안에 끼워 맞추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생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 기억 조각들은 그 의미를 잃고, 더 나아가 ‘나쁜’ 기억으로 남는다. 초반부의 ‘조’가 이러한 목표 지향적 태도를 고수하였기에 삶의 모든 조각들이 무의미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토록 자신이 갈구했던 삶의 목표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조’는 자신이 설정한 삶의 목표가 오히려 자신의 삶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태도의 변화가 인생이라는 영화의 장르를 바꾼 것이다.

조금 더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목표와 의미 그리고 태도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 즉 색안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영화'소울' 스틸컷

목표와 의미 그리고 태도가 영화의 장르를 결정하는 색안경이라면, "삶은 그 자체로 무엇일까"?

<소울>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제시한다.

<소울>은 우리가 귀에 피가 나도록 들어온 한 가지 명확한 주제를 은연중에 강조한다. 바로 "모든 이의 삶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는 사실이다. 모든 유 세미나의 아이들은 불꽃을 피워야만 지구로 가는 티켓을 얻는다. 불꽃을 얻는 것이 지구로 가는 마지막 단계인 셈이다. 22호와 ‘조’ 그리고 수많은 멘토들은 불꽃을 삶의 목적과 등치 시킨다. 하지만 ‘제리’에 따르면,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을 즐길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백번 옳다. 지구로 갈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의 불꽃은 삶의 목적과 삶의 의미일 수가 없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는 것이 지구로 가는 최종 단계에 해당한다면, 우리 인간이 기계부품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구에 사는 우리들은 목적과 의미 없이도 이미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사람들이다. 그러하기에 유세미나의 마지막 단계는 당연히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 자체로 빛이 날것이라는 용기를 주는 단계이다.

다시 말해, 불꽃을 생성하였다는 것은 각자가 각자의 삶이 빛날 것임을 깨달았다는 증거이겠다.

 

 <소울>은 삶의 목표, 의미라는 색안경들이 어디까지나 각자의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하는 광택제 역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색안경이 없어도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빛이 난다는 사실이다. 색안경들이 우리의 빛을 광내지 않고 가리기만 한다면 이들은 존재가치가 없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이 그 자체로 빛나고 있음을 몸소 느끼면서 살아가면 충분하다. 그리고 삶이 보여주는 빛을 더욱 빛나게 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태도를 설정하면 된다.

이것이 <소울>이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한 이유이고 궁극적으로 <소울>이 바라는 우리 관객들이 영화와 함께 간직했으면 하는 메시지들이다.

이쯤 되면 ‘산다’ living이라는 말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온다. 모든 일상에 감사해하며 즐기던 22호에게 “하늘을 보거나 걷는 건 목적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라고 초를 치던 ‘조’의 대사가 이상하게 계속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본 다른 관객들도 해당 조의 대사가 굉장히 와 닿았을 거라 생각한다.  아마 영화는 조의 대사가 후반부에는 관객들에게 다른 의미로 재해석되길 바랬을 것 같다. 말 그대로 같은 모습의 ‘그냥 산다’이지만, 무기력한 의미의 ‘그냥... 산다’ 보단 주체적 의미에서의 ‘그냥! 산다!’를 마음속에 지니고 살아보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각자의 빛나는 인생을 즐기기에 지구에서의 시간은 충분하지 않으니 말이다.

          

영화'소울' 스틸컷

22호는 우리 주변인들의 모습과 꽤나 닮아있다.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청춘들이 그러하다. 초반부터 센척하는 22호의 모습까지도 우리 청춘들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외강내유. 강해 보이기만 하는 언행 속에 숨어있는 청춘들의 마음은 여리고 또 여리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청춘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표를 강요해왔다. 꿈을 만들도록, 자신의 꿈과 연관된 활동들을 하도록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압박하는데,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주변에 많은 청춘들은 사회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현실로부터 도피를 하고 현실도피를 합리화한다. 22호가 집착과 절망 속에서 괴물로 변해버렸듯 우리 청춘들도 사회의 괴물로 변해버릴까 두렵다.

 ‘조’의 모습도 우리 사회의 누군가들을 대변한다. 단적으로 글과 영화를 대하는 나 자신부터 떠오른다. ‘조’처럼 나 역시 영화와 글이라는 두 가지 삶의 목표에 나의 모든 것들을 끼워 맞추고 있던 것은 아닐까. 영화가 끝난 후 한동안 자성의 시간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성찰의 시간은 곧 해방감으로 전환되기는 했다만... 어찌 되었든 간에 보람과 강박의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고 느꼈던 나의 모습에서, 목표와 의미라는 색안경들이 나의 삶의 빛을 잡아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다 보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내내, 어떻게 글을 쓰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 창문을 통해 나의 집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카드를 찍고 힘없는 걸음을 내딛는데 버스 문의 노오란 봉에 눈이 갔다. 왜 그리도 이뻐 보였을까. 한참을 그 이쁜 노란색을 바라보다 문이 열리고 나서야 그 어여쁜 노란색과 이별 할 수 있었다. <소울>이 준 시간들에 감화된 것일까. 옳다구나! 이게 <소울>이 나에게 준 메시지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신나게 글을 두들기다 보니 밤이 한참 지났고 가족들은 모두 곤히 자고 있다.

"내일 아침 누구든 만나면 각오하시라. 힘껏 껴안아줄 테니."     



그대들도 빛나는 그대들의 인생을 맘껏 음미하시길!

이미 유 세미나에서 그대들은 인생을 즐길 준비를 다하고 지구에 도착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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