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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 Feb 02. 2021

모순 안의 모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

(약간의 스포가 있는 리뷰입니다)

‘금융’이라는 이름의 멋진 탈을 쓰고 돈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신(新) 자유주의가 도래한 이래로 자본주의 시장은 점진적으로 비대해졌으며 자연스럽게 ‘돈’이 차지하는 위상도 달라졌다. 뉴스를 보면 돈으로 인해 유혈사태를 맞은 평범한 가족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느덧 ‘돈’이라는 녀석이 우리 인류의 전통적 가치들보다도 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는 현태를 보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21세기를 사는 인류와 돈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영화 속 벨포트가 ‘돈이라는 마약이 최고'라고 했던 것처럼, 돈에 중독되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돈을 마냥 멀리할 수도, 마냥 가까이 둘 수 도 없는 이 딜레마적인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까.

한 작가는 우리가 돈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많아야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언뜻 들으면 맞는 얘기 같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그 통념의 간극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우리를 돈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로 초대한다.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전 세계의 금융가는 돈의 시작이자 돈의 끝이다.

그들에게 있어 돈은 어떤 의미일까.     

 

영화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스틸컷
전반부 줄거리     

백만장자가 되고자 하는 주인공 조단 벨포트가 월가에 입성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벨포트는 거칠고 난폭한 월가의 현장에 매료된다. 월가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던 벨포트는 그의 회사 선임 마크해너에게 다양한 가르침을 받는다. 마크 해너덕에 진정한 월가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난 벨포트는 브로커 자격시험에 통과하여 로스차일드에 취직한다. 하지만 취직한 당일은 1987년 10월 19일, 블랙먼데이였고 벨포트는 그 길로 바로 직장을 잃게 된다. 새로운 직장을 찾던 중 페니 스톡이라는 소액 증권 거래소의 구직광고를 발견하게 되는데, 벨포트는 페니 스톡의 수수료 비율을 보며 페니 스톡 시장의 잠재성을 알아본다.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말빨로 거대 계약들을 따내며 승승장구하던 벨포트는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마음먹는다. 벨포트는 아동 가구를 제작 판매하던 아파트 동네 주민 도니를 포함해 자신의 친구들인 브래드, 체스터, 등을 모집하여 회사를 설립하고 친구들에게 고객 상대을 알려준다. 벨포트의 매뉴얼을 그대로 따라한 친구들이 실적을 내게 되면서 회사(오크먼트)는 어마 무시하게 성장한다. 경제지 포브스는 오크먼트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기사를 내지만 오히려 오크먼트사가 월스트리트의 늑대들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계속된 성공가도 속에서 돈 마약 섹스에 중독된 삶을 즐기던 벨포트는 부인 테레사에게 불륜 행각을 들켜 테레사와 이혼하게 되고 불륜 상대인 나오미와 재혼한다. 물론 결혼 후에도 벨포트는 사기와 환락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낸다.

벨포트와 그의 회사 직원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FBI의 타깃이 되기 전까지 말이다.     


의도된 연출적 모순
영화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스틸컷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이하 더 울프)는 관객들과 작품 사이에 일정한 거리감형성시키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활용한다

가장 눈에띄는 장치는 보이스 오버씬과 방백 씬들로 대표되는 ‘낯설게 하기’ 방식이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인물들의 주관성을 역행하는 연출 요소들 역시 동일 목적의 장치들이다.

 가령 나오미와 결혼하기 전 벨포트가 즐긴 마지막 파티씬은 독특한 연출을 통해 벨포트와 주변 인물들의 천박함을 강조한다. 비행기 섹스파티 씬에서 활용된 번잡한 카메라 움직임, 하이키 조명, 빠른 컷 전환, 슬로우 모션, 경쾌한 edm과 느린 템포 음악, 과장된 배우들의 연기는 관능적인 느낌 혹은 인물들의 즐거움을 전달하기보다는 메스꺼움을 가져다준다. 특히 마지막 하이앵글로 나체의 여인들과 벨포트를 담은 호텔 룸 숏은 의도된 모순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호텔 룸 숏은 원초적인 정글과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그 자체로 압권이다. 그러나 해당 숏주인공의 벌거벗은 모습과 탐닉의 흔적들을 하이앵글로 적나라하게 잡음으로써 방탕한 가치관을 가진 주인공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왜소한지 보여주기도 한다. 방탕한 삶에 자부심을 느끼던 주인공의 감정 선과 명확히 대비되는 연출 방식이다.

벨포트가 레먼 714 마약을 흡입한 채로 도니의 전화통화를 막으러 가는 씬에서도, 벨포트의 주관성과 모순되는 감독의 연출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씬에서 벨포트는 매우 급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영화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벨포트를 객관적 카메라 시점으로 유머스럽게 묘사한다. TV 속 뽀빠이 장면과 벨포트의 모습을 교차 편집하는 장면도 벨포트의 다급한 상황을 풍자적이고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이처럼 마틴 스콜세지는 관객들이 주인공의 감정과 상황에 몰입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더 울프>는 인물들의 모습을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관조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인간의 방탕함이 얼마나 메스껍고 역겨운지 그리고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대들은 떳떳한가?
영화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스틸컷

 후반부에 들어서, 벨포트는 FBI에게 발목을 잡히고 그동안 벌여온 불법 금융 사기 행각을 접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벨포트는 뉴질랜드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지낸다. 과거를 답습하듯 벨포트는 청중들에게 펜을 팔아보라고 말한다. 앞줄의 청중들은 열심히 벨포트에게 펜을 팔기 위해 이런 말 저런 말을 덧붙여 본다. 카메라는 점차적으로 뒷줄에 있는 무고한 청중들에게 포커스를 옮긴다. 한동안 뒷줄의 청중들을 바라보던 프레임은 이내 암전 되고 영화는 끝이 난다.

벨포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청중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한 번쯤 이 영화를 관람한 우리 관객들처럼 제 3자의 입장에서 벨포트의 방탕한 삶을 비판하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벨포트에게 돈을 버는 법을 배우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다. 카메라의 포커스를 마지막에 무고한 청중들로 옮겼던 것은 하나의 분명한 질문을 시사한다.

 

“그대들은 떳떳한가?”


벨포트의 방탕한 삶에서 메스꺼움을 느꼈으면서도 우리들은 벨포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는 않았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더울프>는 실로 많은 이들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심어준 영화다. 연출 의도 덕에 우리는 영화 내내 주인공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질문 앞에서 떳떳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각자의 이중성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던 FBI요원이 노부부를 보며 허탈감을 느꼈던 상황처럼 말이다.  

주인공의 매수 제안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서, FBI 요원이 나름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오버 더 숄더 샷에서 보이는 FBI 요원의 시선은 그의 신념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벨포트가 그에게 퍼부었던 저주처럼, FBI 요원은 지하철이나 평생 타며 돈의 노예가 되어 살게 될 자신에 대해 묘한 환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미래가 어찌 될지 개인적으로는 쉽게 상상이 간다.

이중성을 보이겠다고 마음을 먹고 이중성을 내비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모든 이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이중성에 잠식된다.      



영화 <더 울프>는 스스로에 대한 유쾌하지만 진중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영화였다.

영화는 스콜세지의 페르소나인 디카프리오의 연기력만으로도 훌륭한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7전 8기로 우뚝 선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에게 금방이라도 반할 것 같다.

마틴 스콜세지와 디카프리오의 동행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들의 동행이 흥행 보증수표임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기대를 한껏 품은 채 그들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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