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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왕봉안 Nov 18. 2021

11. 셜록 홈즈의 비서

(셜록 홈즈는 시대를 뛰어넘는 아이콘입니다. 불후의 탐정과 파트너 왓슨 박사, 그를 만든 작가 아서 코난 도일. 이들이 보여주는 당시의 영국과 세계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아이콘이 각 국에서 채택되어 1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끊임없이 변용됩니다. 이 여행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     



하루에 2통이 넘게 홈즈에게 온 편지     


친애하는 홈즈씨,

당신은 정말로 좋은 탐정이어요. 우리 시의 탐정을 알고 있어요. 당신처럼 멋지지 않고, 일반인처럼 평범한 복장을 입어요. 하지만 그도 멋집니다. 당신 책을 모두 읽었습니다. 공공도서관에 갈 때마다 한 두 권 빌려 옵니다. 

엄마는 당신이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일씨가 소설에서 만들어 낸 허구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너무 바쁘기에 친구인 도일씨가 대신 글을 쓴다고 나는 반박하지요. 

왓슨 박사에서 안부를 전해주세요. 모리아티 교수를 체포하기 바래요. 

답장해 주세요.

린 스미스(Lynn Smith)

*추신. 엄마가 바보처럼 이렇게 자주 말하지요. 제 생각은 구름처럼 수 천 마일을 날아 당신에게로 갑니다.      

   1980년 초 미국 메릴랜드 주 옥슨힐(Oxon Hill)이라는 자그마한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린 스미스는 위 편지를 홈즈에게 보냈다. 베이커 거리 221 B.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홈즈의 편지를 받았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린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홈즈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엄마에게도 따졌다. 내가 홈즈의 편지를 받지 않았느냐고. 그렇다면 홈즈가 정말 실재하는 인물이어서 무덤에서 나와 편지를 썼을까?


   답은 셜록 홈즈의 비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홈즈에 열광한 독자들은 전 세계에서 명탐정의 주소로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대부분의 팬들은 혹시나 하고 보낸 편지의 답장을 받았다. 홈즈의 집에 자리를 잡은 회사에서 비서를 두어 일일이 답장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온 독자 편지 


 1887년 홈즈와 왓슨이 첫 선을 보인 『주홍색 연구』가 출간되었을 때 베이커 거리는 85번지까지만 있었다. 따라서 1890년대에 홈즈가 큰 인기를 끈 이후 이곳으로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그렇게 고대하던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애비내셔널(Abbey National)이라는 금융회사가 1920년대 말에 이 곳에 터를 잡았다. 건물이 워낙 커서 베이커 거리 219번지부터 229번지 지번을 받았다. 홈즈의 집에 이 회사가 있게 되었다. 회사는 셜록 홈즈 비서를 두는 게 홍보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홍보 담당자에게 명탐정에게 오는 편지의 답장을 하도록 추가 업무를 맡겼다. 이래서 홈즈의 비서직이 생겨났다. 


   크리스 배즐린턴(Chris Bazlinton은) 7대 셜록 홈즈 비서로 1975년부터 1982년까지 7년간 애비내셔널의 홍보담당으로 일하면서 이 일을 겸직했다. 그는 비서로 일한 7년간 총 6천 여통의 편지를 받았다. 일 년에 857통, 하루에 2통이 넘는 편지나 엽서가 왔다. 그는 이 글에 일일이 답장을 보냈다. 


  편지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사진을 보내달라거나, 여성 독자의 경우 결혼을 하고 싶다...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내용도 제법 있다. 대표적인 게 버뮤다 삼각지대의 미스터리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이다. 미국 플로리다와 버뮤다, 푸에르토리코를 잇는 대서양의 버뮤다 제도 주변의 삼각형 지역인데 이 곳을 지나던 선박과 항공기 수십 척이 흔적이 없이 사라진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미국의 수사기관이 나섰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6천 여 통의 편지 절반은 미국 독자가 보냈는데 1963년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수사해 달라고 부탁한 편지도 자주 왔다. 


  편지를 보낸 독자들도 세계 각국에 퍼져 있었다. 냉전시기인데도 북한을 제외하고 러시아, 폴란드 등 공산권 팬도 자주 편지를 보냈다. 일본, 뉴질랜드, 호주와 같은 자유 세계의 팬들은 물론이고. 1980년대 초 런던주재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특파원은 배즐린턴과 종종 술 한 잔 마시며 소련 독자의 편지도 번역해주기도 했다.


  애비내셔널은 1990년 이곳에서 이주했다. 이후 민간업자가 인근에 셜록 홈즈 박물관을 열었다. 박물관이 있는 주소는 239번지이다. 금융기관이 이사하면서 홈즈 비서직은 없어졌다. 2015년 8월 내가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세계 각지에서 보낸 편지가 일부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으로도 팬들의 편지가 계속 오고 있다. 20세기 영국의 유명한 시인 T.S 엘리엇은 셜록 홈즈의 가장 큰 미스테리는 “그를 이야기할 때면 실존인물인 듯한 환상에 빠진다”고 적절하게 표현했다. 


  설문조사를 봐도 이게 무리한 의견이 아니다. 영국의 유로TV인 ‘UKTV Gold’가 2008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0%가 셜록 홈즈는 실재 인물이라고 대답했다. 반면에 25%는 2차대전 구국의 영웅 윈스턴 처칠이 허구라고 여겼다. 다른 조사에서도 영국인의 20%가 홈즈는 정말로 영국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영국의 주간 뉴스 매체 이코노미스트가 발행하는 월간지 <<1843년>>의 기자는 7대 비서 배즐린턴의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집에 6천 통이 넘는 편지를 보관중인 그는 “내게 개인적인 소중한 것이기에 보관한다. 누군가의 삶에 아주 조그마하게 관여했었기에.”라고. 


   우리는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며 기뻐하고 종종 어려움을 이겨내 곤한다. 어렸을 적에 그렇게 재미있게 읽었던 홈즈도 많은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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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안병억에게 있습니다. 무단 복제나 전재를 금지합니다.           

로마 시대의 브리튼부터 브렉시트(Brexit)까지의 영국 역사는 저자의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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