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이 지나도 선생님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
"안타깝지만 만약 '가스'라고 썼다면 모두 오답이다. 그러니까 내 수업을 제대로 들었어야지." 교단에 선 맘씨 좋게 생긴 40대 후반 또는 50대 초반의 교련 선생님은 자신감에 차있는 말투로, 웃음을 띠며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 학생들 모두는 선생님을 따라서 처음엔 같이 웃기도 했다. 종종 그랬던 것처럼 선생님이 우리에게 장난을 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장난 섞인 말투로 물었다. "선생님, 에이 거짓말이죠? 이거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 그렇죠?" 아이들은 웅성웅성거렸고, 이내 교실은 시끄러워졌다.
"조용히 해! 인마! 이 새끼들이 선생 말을 무시하는 거야 뭐야? '가스'라고 쓴 놈들은 다 틀린 거야. 절대 안 바뀌니까 이제 다시 얘기 꺼내지 마!"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며 결국엔 학생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육군 장교 출신이라던 선생님은 부하들을 야단치듯, 선생님 손에 들린 반쯤 잘린 반짝이는 갈색 당구채로 어두운 고동색의 교탁을 세게 내리치며 큰 소리를 냈다. 우리는 장교에게 혼나는 병사들처럼 순간적으로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가만히 교단 가운데 서있는 교련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호빵맨처럼 볼이 빵빵하신 선생님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더워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 회색의 정장 재킷을 벗어서 아무렇게나 교탁 위에 턱 하니 걸쳐놓더니, 장교였을 때보다는 절반쯤 사라진 듯한 머리카락을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손바닥으로 한번 쓸어 넘기며 누구라도 한마디만 더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발단은 기말고사의 교련 과목 마지막 주관식 문제였다. 주관식치고는 너무 쉬운 문제라 우리는 모두 서비스로 나오는 문제쯤으로 생각했다. 화생방 상황에서 외쳐야 하는 세 단어를 쓰는 것이었다. 세 개의 괄호 안에 들어가야 할 정답은 당연히 '가스, 가스, 가스'였고 대부분의 학생은 그렇게 답지에 적어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것이 오답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정답은 '깨스, 깨스, 깨스'였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으나,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본인은 분명히 '깨스'라고 칠판에 썼다면서 '깨스'가 아닌 '가스'는 모두 오답이라고 우기는 중이다. 다만 영어로 gas라고 썼다면 정답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영어로 쓴 사람은 없었다. 이게 왜 진짜인가 싶지만, 과거엔 이런 일이 가능했다. 결국 가벼운 서비스 문제였다고 생각한 저 마지막 주관식 문항은 전교생의 90% 이상이 틀린 난이도 최강의 문제가 되었다.
그 후 30년가량의 시간이 흘렀지만, 가스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깨스가 떠오르곤 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남색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 가득하던 교실, 장난스러웠던 처음의 분위기, 흥분하던 선생님, 그리고 실망스러웠던 선생님의 모습. 그때는 실망스럽더라도 윗사람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이런 선생님이 없을 것이고, 학생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에게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 우리들은 그 후로 최고의 욕설로 교련 선생님 이름을 활용하며 나름의 분풀이를 했다. 'OO이 아들(교련선생 아들)'이 우리 사이의 욕설이 된 것이다.
본질이 아닌 것에서 본인의 주장만 옳다고 고집하는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단어가 이제는 널리 쓰이고 있다. 꼰대의 정의 중에 하나가 아닐까? 이제 그 선생님의 나이가 되어가는 나를 보며 가스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가스와 깨스를 다 용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는가? 나와 대화를 나누는 청년이 수십 년 후에 깨스와 같은 단어로 나를 기억하지 않게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