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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에필라 May 02. 2024

방콕행 밤비행기 탑승기

나 참 낭만 없이 살았었네

남편이 퇴근하면서 바로 공항으로 가서 발권을 했다. 짐을 부쳐놓고 기다리다가 비행기를 탔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많다. 창가자리에 앉아서 비행기가 뜨는 것과 타고나서도 계속해서 창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볼 게 많은지 보면서 자꾸 나를 불러서 같이 보고 싶어 한다. 좋은 걸 보면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누구보다 알기에 고맙기도 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이거 봐봐."

"와. 이게 구름이야? 우리 구름 위에 있는 거야?"




구름이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류탄 같기도 하고 매연 같기도 했다. 어릴 때 앞이 하얘지는지도 모르고 쫓아다녔던 트럭으로 쏘아대던 소독차가 생각났다.

회색으로 깔린 바닥은 달의 분화구 같았다.

우주선을 타고 달 위를 날아가는 것 같았다.

달의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산도 있고 구릉도 있는 것 같다.


"이거 진짜 구름이야? 구름 아닌 거 같아."

구름이라고 하기엔 너무 색깔이 진하고, 어둡다.

내가 본 파란 하늘에 하얗고 둥글게 생긴 구름이 아니었다.


"기분이 이상해. 구름 위에 있다니."


창문에 붙어서 바깥을 보던 남편이 몸을 뒤로 기울이자 나는 창문에 더 바짝 붙었다.




"저기 보이는 까만 점은 뭐야?"

"섬이야."

너무 신기해하면서 비행기 창가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묻는다.

"지금까지 비행기 많이 타봤잖아."

하나하나 신기해하는 내 모습이 더 신기했나 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비행기를 탈 때 창가자리일 때도 이륙 하는 것만 보고 바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비행기에서 특별히 할 게 없으니까 최대한 잠을 안 자서 비행기에서는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했다. 이렇게 비행기 창문으로 여러 가지 풍경을 보는 게 재밌는 줄, 아름다운 줄, 경이로운 줄 몰랐었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 몰랐던 세상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 그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따라가다 보면 놓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컨디션관리"라는 명목하에 보지 않았던 창가. 비행기가 뜨고 나면 그냥 깜깜할 거라고 생각하고 바로 창문을 닫았었다. 이렇게 다양하게 노을 비스름한 것도 보이고, 구름도 보이고, 별도 보이고 이런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질 줄은 몰랐었다.


"나 참 낭만 없이 살았었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비행기를 타니, 혼자 탔을 때와는 다르다.

안 보였던 게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게 보인다.


누군가와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새롭고 즐거운 일이다.

생각과 경험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혼자 이어폰 끼고 달리던 내가, 남편을 만나서 함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오늘은 공기에서 어떤 내음이 나는지, 바람은 어떻게 부는지, 하늘은 어떤 색깔인지 보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느끼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가는 태국은 얼마나 더 즐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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