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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hine Dec 12. 2022

8. 하악질(2)

링웜 판정 후, 구슬이를 대하는 우리 가족의 태도는 꽤나 달라졌다. 첫째 딸은 더 이상 구슬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지 못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구슬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던 둘째 딸의 행동도 빈도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내가 구슬이 케어를, 아내가 아이들 케어를 책임지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가 구슬이를 케어해야 하는 과정이 꽤나 복잡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구슬이 화장실부터 청소를 하고, 구슬이 꼬리를 포비돈으로 소독하고 안약을 넣는다. 그리고 5분 정도가 지나면 구슬이 꼬리에 연고를 바르고 다른 안약을 넣는다. 그러고 나서 츄르에 약을 타서 구슬이를 먹인다. 보통 넥카라에 대변이 묻어 있을 때가 많아 넥카라를 교체하고서는, 더러워진 넥카라를 세척한다. 1분 1초가 급한 출근 준비 시간에 이 과정을 매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면 사람은 그것을 하게 되어 있다. 퇴근 후에도 비슷한 과정이 반복된다. 3일 정도마다 구슬이를 목욕시켜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긴 했지만, 인터넷 서핑 결과 약욕이 워낙 효과가 좋다는 말이 많아서 무조건 실행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구슬이가 목욕시키기가 편한 스타일이라는 것이었다. 약욕을 하려면 약용샴푸를 5분 이상 몸에 묻히고 있어야 하는데, 구슬이는 욕조에서 5분 이상 있는 것도 곧잘 했다. 물론 스트레스는 심했을 것이다. 목욕을 할 때 마지막은 항상 욕조 물에 대변을 누는 것으로 마무리지었으니까. 그리고 목욕보다도 드라이기 소리를 더 무서워해서 털을 말리는 것은 일치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하루는 SNS를 통해 한 사람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EM용액이 링웜 치료에 좋다는 조언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EM용액을 불렀다. 병원에서 처방한 것들 이외에 수시로 구슬이 꼬리에 EM용액을 분무하는 일까지 나의 일이 된 셈이었다. 물론 구슬이가 빨리 나을 수만 있다면 나는 더한 것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슬이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구슬이는 약 1Kg 정도니까, 나는 구슬이보다 약 70배가 큰 괴물이다. 그 괴물은 자신을 잡고 몇 시간마다 눈이 이상한 액체를 들이붓는다. 꼬리에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바르고, 목에는 그루밍도 못하게 이상한 걸 또 입혀버리는 괴물. 게다가 눈에 보일 때마다 분무기를 들고 꼬리에다 이상한 걸 뿌린다. 그뿐인가, 그 괴물은 자신에게 며칠마다 한 번씩 물에 집어넣고서는 자신의 온몸 여기저기를 만져댄다. 구슬이가 나에게 하악질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구슬이가 만약 사람이었다면, 나는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라고 이야기했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무조건 이해해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섭섭해도 할 수 없고, 서운해도 할 수 없다. 구슬이를 만지고, 안아주고, 그렇게 지내는 것은 앞으로 한 달 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겠다. 올해 우리 집을 담당하는 산타클로스는 구슬이의 링웜 치유를 선물로 주어야 한다.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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