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의 눈은 수시로 터지기 시작했다. 눈에서 뭔가가 흘러나오는 것이 차라리 좋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아마 많이 심란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구슬이 넥카라가 풀려져 있었다. 눈이나 링웜이나 모두 넥카라가 필요한 병들이라서, 너무 놀란 나는 허겁지겁 구슬이에게 넥카라를 씌우려고 했다. 그런데 구슬이가 반항을 한다. 항상 나에게 힘으로 눌려져 있던 꼬마 고양이의 반항이 나에게는 귀여운 일이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구슬이가 점점 힘이 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피식 웃고 욕실로 가서 양치를 하고 다시 구슬이 방으로 돌아왔더니, 구슬이가 사라졌다. 워낙 작은 고양이라 종종 있는 일이지만, 평소 숨어 있는 곳에서도 구슬이가 없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구슬이를 발견한 곳은, 아이들이 쓰던 아이스크림 판매 카트 장난감 위였다. 인형처럼 귀여운 구슬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웃고 말았다. 그때 구슬이의 모습은 아직도 '구슬 아이스크림'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구슬이는 확실히 힘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밤중에 흔히 '우다다'라고 표현하는 행동들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갑자기 고양이가 마치 접신이라도 한 듯, 방 안을 뛰어다니고 정신없이 돌아다닐 때가 있다. 그럴 때를 '우다다'라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용어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단어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귀여워야 할 우다다도 구슬이에게는 조금 슬플 따름이었다. 넥카라로 인해 이동 중 예기치 않은 충돌도 더러 있었고, 멈춰 있을 때면 눈에서 바닥으로 뭔가가 떨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하다. 구슬이 눈이 아플 땐 그렇게 마음 아프고 신경이 많이 쓰였었는데, 링웜까지 걸리고 나니 눈에 대한 신경이 덜 쓰인다. 그리고 시력이 없어졌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덜어서인지 조금은 편안해졌다. 물론, 시각적으로 놀랄 때가 아직도 있지만, 그것 역시 점점 적응되어가고 있다. 결국 구슬이 눈은 좋아지지 않았건만, 내 기분은 점점 편안해지는 기이한 현상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구슬이는 얼마나 아픈지 나에게 이야기해줄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물론 인간 중심의 사고겠으나, 물론 내가 답답해서 하는 소리겠으나. 구슬이의 하악질이 차라리 자신의 고통의 표현이라면 덜 답답할 것 같다.
하루는 둘째를 먼저 재우고, 구슬이 방으로 들어가 보려는데 구슬이 방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봤더니, 큰딸이 구슬이를 옆에 앉히고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취미로 조금씩 배우는 하프였는데, 썩 잘 치는 솜씨는 아니었지만 구슬이는 얌전하게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예쁜 광경이었다. '구슬 아이스크림'이나 '하프 연주 듣는 구슬이'처럼 예쁘고 귀엽고 평화로운 장면들이 구슬이가 아프고 힘들 때 보이는 것도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