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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sdom Shine Dec 08. 2022

6. 골골송(3)

큰 딸의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정말 우리가 바라보는 그것과 매우 다른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구슬이를 위해 매진하기 시작했다. 일단 넥카라를 바꿨다. 습식을 하루에 세 번 챙겨주고, 그때마다 넥카라를 벗겨 먹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핑계같지만 내가 너무 바빴다. 아직 어린 고양이인 구슬이는 하루에 3~4번 식사를 해야 하는데, 하루에 꽤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내가 계속해서 그것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실은 그동안 둘째 딸 어린이집 하원 문제로 인하여 직장에서 육아시간을 사용했는데, 덕분에 구슬이 밥을 챙겨줄 수 있었다.) 그래서 넥카라를 착용한 채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광고를 하는 넥카라를 주문해서 착용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 보니, 구슬이는 그 넥카라를 스스로 벗어버렸고, 결국 나는 다시 편하게 구슬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넥카라를 직접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자동급식기를 이용하기로 하고, 구슬이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안약도 더 잘 놓고, 인공눈물도 계속해서 넣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하면 구슬이 눈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구슬이는 고맙게도 밥은 잘 먹었다. 습식과 건식을 가리지도 않고, 습식 형태도 어떠한 것이든 잘 먹는 아이였다. 단, 과식을 한 날에는 여지없이 설사기가 있는 변을 보고는 했는데, 그럴 때에는 할 수 없이 목욕을 시켜야 했다. 어차피 넥카라로 인하여 구슬이가 그루밍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루는 구슬이 목욕을 시키고서는 나는 거실에서 둘째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갑자기 방에서 큰딸이 나를 불렀다. 긴박한 목소리였다. 

"왜 그래?"

"아빠, 구슬이 눈이 터졌어."

"뭐라고?"

나는 구슬이에게로 달려갔다. 구슬이는 고개를 뉘어 있었고, 얼굴과 넥카라 사이에 불그스름한 액체가 고여 있었다. 동물이라곤 처음 키워보는 내가, 이 상황을 감당하거나 어떻게 할 방법을 알 리는 만무했다. 바로 우리가 다니는 동네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영업시간 종료였다. 구슬이를 처음 구조했던 날이 일요일이었는데, 그때 갔던 동물병원은 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쪽으로 전화를 넣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오라고 하셨고, 나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다. 아내는 꽤나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둘째는 얼마나 큰 상황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듯했다. 놀라운 건 첫째였다. 첫째는 담담했다. 내가 얘기했다. 

"아빠랑 같이 갈래?"

아내가 살짝 걱정하는 눈치를 줬지만, 첫째는 같이 가겠다고 이야기하며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나는 구슬이와 첫째를 차에 태우고 동물병원으로 출발했다. 구슬이는 옆에서 골골송을 불러대고 있었다. 분명 아파서 내는 골골송이었을 것이다. 나는 곧 첫째도 걱정되었다. 구슬이 눈이 터지는 모습을 생중계 보듯이 바라본 큰 딸의 심리 상태가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첫째 딸이 그 순간 이야기했다. 

"심심해. 옛날 얘기 틀어줘."

"응? ...... 어. 알았어. 너 ...... 괜찮아?"

"왜? 아 구슬이? 괜찮아."

그러고는 예전에 했던 말을 똑같은 말투로 자신의 무릎에 있는 이동장에 대고 웃으며 다시 이야기한다. 

"그러게. 처음에 잡히지 그랬어."

아이의 눈은 정말 다른가보다. 첫째는 분명 구슬이를 걱정하고는 있지만, 구슬이 눈이 터지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해서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어린아이의 눈에는 그리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병원에 어느새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은 구슬이 눈을 꿰매었다가, 다시 풀었다. 눈에서 무언가 흘러나오길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눈이 터졌다, 딱지가 생겼다, 다시 터졌다 그럴 거라고 했다. 그리고 왠지 내가 주눅 들어 보였는지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구슬이 오른쪽 눈은 어차피 다시 볼 수 있는 눈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눈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구슬이가 생명을 잃지도 않아요. 보호자가 할 수 있는 건 어차피 얼마 없어요."

세상에, 이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 나는 순간 동물병원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는 의사 선생님의 말투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는 점, 두 번째는 응급상황에 문을 열 수 있는 병원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구슬이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oseul_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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