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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Jbenitora Apr 04. 2024

아이와 놀아주다 넘어진 엄마에 대한 예의

아이들이 집에만 있으니 심심해했다. 유튜브 영상도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네 놀이터에 갔다.

애들은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며 즐겁게 놀았다. 황사로 대기가 뿌옇든말든 미세먼지를 마시든말든 밖으로 잘 나왔다.


뛰어다니며 놀던 둘째가 미끄럼틀에서 내려왔다. 그러곤 주변 모래 바닥에 떨어진 소나무 가지를 주웠다. 그걸 본 첫째가 재밌어 보였는지 자기도 가지를 들고 땅에 낙서를 했다. 나도 첫째 옆에서 가지하날 주워 한자를 썼다. 첫째가 쉬운 한자 몇 개를 알아보고 맞혔다. 이렇게 놀이터 바닥에서 놀고 있는데 한 그룹의 아이들이 나타났다. 젊은 아주머니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대여섯 명과 함께 놀이터 옆 벤치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혼자서 여러 명의 아이랑 온 것도 놀라운데 자리를 깐 그녀가 아이들과 같이 놀았다. 자기 애 한둘과 남녀 조카들로 이뤄진 아이들은 놀아 준다고 하니 신이 났다. 뭘 할지 잠시 설왕설래하더니 얼음땡 놀이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애가 술래가 되어 뛰어다녔다. 나만큼은 몸무게가 나가 보이는 녀석이 뛰니 지축이 울렸다. 쪼그려 앉아 자기만의 놀이에 빠진 우리 둘째가 그 애들 뛰는데 부딪히거나 혹시라도 다칠까 신경이 쓰였다.


한두 판 만에 그 엄마가 술래가 되었다. 아이들은 안 잡히려고 좁은 놀이터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또래가 술래 할 때보다 업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뛰어다니던 그녀는 재미있어했지만 힘들어 보였다.


첫째가 내가 쓴 한자를 바로 알아채지 못해서 요새 한자공부 안 하냐는 둥 한자는 어떻게 공부해야 한다는 둥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를 하고 있는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를 잡으러 뛰어다니던 술래 엄마가 앞으로 슬라이딩하며 모래바닥에 사정없이 넘어진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녀가 크게 다쳤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다친 것 같진 않았다.

"이모는 괜찮아!"

금세 모래를 털며 일어나는 그녀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했다. 이것은 부끄러울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툭툭 털고 일어섰지만 넘어진 부위의 통증으로 잠시 절룩이던 그녀는 아까 펴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괜찮다는 그녀가 앉자 아이들의 놀이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젊은 엄마는 아이들이 자리에 둘러앉자 간식을 꺼냈다. 그렇게 분위기가 수습되자 앉아서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는 그들이었다.


나도 일전에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다 생각보다 낮던 쇠봉에 이마를 박은 적이 있었다. 모래 바닥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기도 했다. 부주의로 당한 일이라 그때마다 큰 아픔에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니 아픔의 크기보다 부끄러움의 크기가 컸다.


아이들과 놀아주다 보면 이런 일은 흔하게 생긴다. 아까의 외면은 실은 일신의 편안함을 버리고 아이들 무리에 몸을 던져 놀던 그녀의 헌신에 대한 작은 경의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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