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가족여행 2일 차 아침
밖은 깜깜했다. 바다가 훤히 보였던 창문 너머는 안개가 가득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새벽 4시 50분, 와치를 손목에 걸치고 숙소밖으로 나왔다. 어제 이 시간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 나갈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여행지에 와서 새로운 길을 뛸 수 있는 날씨에 감사하였다.
조깅을 하루 쉬었더니 몸에 활기가 있었다. 몸을 잠시 풀고 해안도로를 타고 뛰기 시작했다. 아직 깜깜한데도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점점 날이 밝아왔다. 바다 쪽에는 바로 앞 해변정도만 보일 정도의 해무가 깔려있었다. 구름 한 점 없어 햇살이 비치는 것보다는 뛰기에 훨씬 좋았다. 해변도로가 끝날 때까지 안개는 해안가 쪽 일부를 제외한 먼바다의 경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골목과 아파트, 가옥, 상가이지만 처음 뛰어보는 거리라 낯섦도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1차 목적지인 능포항을 향해 뛰었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건물들 사이에 편의점 불빛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바닷가에 들어섰지만 항구 역시 안개가 자욱했다. 바다 저편에서 불빛이 보이더니 새벽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의 모습이 보였다. 어부 2명이 탄 작은 배를 맞이하는 듯 몇몇 남성들이 시선을 바다에 두고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옆에는 시동이 걸린 1톤 트럭이 쌍라이트를 뿜어대고 그 빛은 안개에 산란되어 신비한 느낌을 자아냈다.
항구를 한 바퀴 돌아 나와 능포로라 불리는 큰길을 따라 쭉 내려왔다. 도롯가에 여러 건물이 있었지만 큰 교회하나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예배를 위해 주로 어르신들로 구성된 신도들이 예배당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어제 숙소 가기 전 주전부리를 샀던 마트를 지나 숙소 가는 방향으로 접어드니 장승포항 팻말이 있었다. 평소 뛰던 거리인 6km는 충분히 넘겼지만 힘이 남았고 처음 와본 지역의 곳곳을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장승포항은 자그마했지만 통영이나 여수에서 본 정돈되고 세련된 항구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기구들이 늘어서 있었고 동네주민 몇 분이 이용하고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비도 오지 않아 새벽운동하기 딱 좋은 것은 나에게만 국한된 행운이 아니었다.
우리 숙소의 반대편 방파제 쪽으로 뛰다 보니 거제대학교와 지세포로 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그쪽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었는데 시간을 보니 6시도 안 된 시간이라 한번 가보기로 했다. 거제대학교를 목표로 두고 슬로조깅이라 생각하고 발걸음을 떼었다. 대학교가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지금까지에 비해 힘은 배로 들었다. 헥헥거리며 거제대학교 정문까지 오자 다시 돌아갈 때는 지름길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 폰을 켜서 지도앱을 보니 약수암 쪽에 샛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숲이 우거져서 어두운 산길로 접어들었다. 안개는 여전했고 불탑과 낡은 암자가 보였다. 안내하는 길 쪽으로 가니 변소가 나와서 다시 돌아 나왔다. 탑 뒤로 돌아가봐도 지도에 나타난 산길은 보이지 않았다. 잘 모르는 곳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홀로 산을 내려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안갯속에서 무엇이라도 나올 듯한 으스스한 산속은 당장 원래 온길로 돌아가라고 경고를 주는 느낌이었다.
숲을 돌아 나와 거제대학교 정문에 다시 서자 밝은 느낌이 들었다. '괜히 다른 길로 내려가려고 하다가 힘만 더 들었네.'라는 생각이 '무리해서 산길로 내려가지 않아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으로 바뀌며 무서움이 사라졌다. 이제는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기만 하면 되기에 몸에 힘을 빼고 중력에 발걸음을 맡겼다. 무릎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폭을 줄이고 빠른 속도로 왔던 길을 되돌아 뛰었다. 장승포 항으로 돌아왔더니 슬슬 몸이 피로를 느꼈다. 안개는 여전했다. 방파제의 등대를 한 바퀴 돌아 숙소로 향했다. 방파제 앞 테트라포트에는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여럿 있었지만 그곳에 올라가 새벽 낚시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이런 안개 낀 날에는 조심하는 것이 상책일 텐데 잔잔한 바다만 믿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까 출발했던 숙소 앞에 다시 도착하니 13km를 조금 넘게 달렸다. 안개 덕에 햇볕을 피해 잘 뛰었다. 다만 습도가 높아 땀인지 물인지 모를 수분으로 온몸이 축 젖어 있었다. 아직까지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흘낏 쳐다보고 욕장에 들어갔다. 어제 아이들과 놀던 물을 빼지 않아서 몸을 푹 담그며 쉴 수 있었다. 피곤이 풀리고 더운 기운이 몸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이 순간을 생각하며 1시간 반을 뛰었지!'
달리기는 하는 동안에도 기분이 좋지만 다 뛰고 휴식할 때가 최고의 순간임은 달리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