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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아래의 매미성

거제도 가족여행 2일 차 낮

by CJbenitora

울산으로 복귀하는 길에 관광지 한 곳을 보고 가기로 했다. 거제도가 워낙 넓어 추천 관광지를 검색하면 많은 곳이 나왔지만 시간 상 거가대교로 가는 길에 있는 곳이어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던 아내가 좋은 곳을 발견했다며 매미성을 언급했다. 매미성은 2003년 9월 12일에 한반도에 상륙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 매미로 인해 폐허가 된 땅에 세워진 성채였다. 태풍을 대비하기 위한 개인의 집념이 이색적인 관광지가 된 사례였다.


애초에 인공적인 관광지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기 때문에 매미성 관광이 탐탁지 않았다. 게다가 주차장이 널찍히 있었지만 정오가 다가오는 시간임에도 만차였다. 길가에 세워진 차량 사이사이에 빈자리가 보이길래 얼른 세우자는 내 말에 아내는 더 가까운 자리가 있을 거라며 도로를 빙빙 돌았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차량과 사람들로 인해 애초 세우자고 제안했던 자리보다 몇백 미터 더 먼 곳에 세우고 걸어 들어가야 했다.


해가 머리꼭대기에 있어 아이를 업고 걸어가는데 땀이 흘렀다. 다른 좋은 곳도 있을 텐데 여기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미성 역시 관광지라 내려가는 입구부터 관광객을 대상으로 미역과 같은 특산품과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일본의 관광지마다 있는 그런 가게들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몰리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바가지 물가는 아니었다. 호객행위는 거의 없었고 아직 시골마을의 정취가 있었다.


사람들을 따라 해안가로 내려가다 보니 중국 기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자갈해안에는 물수제비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우리 아이들도 거기에 끼었다. 바닷물에 자갈을 던지고 물이 들어왔던 자리에 서있다가 파도가 들어오면 피하는 단순한 놀이에도 피부가 까맣게 타는 줄 모르고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노는 곳 바로 뒤에는 유럽풍의 성채하나가 서있었다. 곳곳에 작은 나무들과 풀들이 어울려 위엄 있으면서도 친근한 모습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아이들의 즐거움에 있었기 때문에 매미성은 올라가나 안 올라가나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르내리는 인파가 뒤섞여도 우리와는 상관없었다.


햇볕은 점점 더 쨍해지고 기온도 계속 오르고 있었다. 햇볕을 피하는 방법은 매미성 그늘로 자리를 이동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참 파도와 실랑이하며 쫓아다니는 첫째는 아내에게 맡기고 둘째를 꾀어서 매미성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좋아하는 아이는 돌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이리저리 온갖 곳으로 튀는 아이를 잘 구슬려 성벽 위에 오르니 나무그늘이 꽤 있었다. 사진이 잘 나와서 사람들이 몰린 장소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어제 내린 비로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어서 둘째는 그곳에 돌을 던지며 놀았다. 아빠는 그늘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여유를 즐기고 아이는 물에 돌멩이를 마음껏 던지며 노는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 생겼다.


한참 뒤 첫째와 아내가 성벽 위에 올라왔다. 땀으로 범벅이 된 첫째가 덥다고 하여 그늘을 찾아온 것이었다. 잠시 쉬다가 아이들이 목말라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까 오던 길에 있던 한 카페에 들어가서 눈꽃빙수와 블루베리 스무디를 시켜 아이들에게 각각 쥐어 주었다. 첫째는 그러고도 성에 덜 차서 카페를 나올 때 샤베트 하나를 더 시켜주어야 했다. 더 놀고 싶어 하는 둘째를 업고 수 백 미터밖에 세워둔 차로 돌아왔다. 차를 몰고 가서 음료를 마시며 그늘에서 기다리던 첫째와 아내를 태웠다.

"이제는 사람 많은 데는 가지 맙시다."

세상천지에 한참을 줄을 서서 보거나 먹어야 할 만큼 대단한 건 없다는 평소 생각에 더 확신을 주는 매미성 나들이였다.


혼자였으면 절대 오지 않을 곳이지만 아이들과 같이 오는 것은 귀찮음 보다는 그 나들이가 만들 추억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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