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듯한 경험을 하는 순간이 있다. 아주 어려운 시험에 합격을 했거나, 취업을 하였거나, 원하던 학교에 들어갔거나, 아주 좋은 물건을 샀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순간임을 당시에 딱 알아챌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경우는 한참 뒤에 생각했을 때 그때가 전환점이었던 걸 깨닫는 경우도 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10년 전에 '이 여성과 한평생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성격이 비슷했고 관심사도 비슷했다. 그녀는 눈치가 빨랐고 내가 하는 말의 의도를 금방 알아챘다. 결혼으로 맺어지고 같이 살면서 우리가 참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갈등이 생겼지만 충분히 시간만 가지면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우리는 자식으로 10살, 4살 형제를 둔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마음은 아직 30대 초반의 자유로운 젊은이인데 생활비 걱정을 하고, 아이들 병원을 쫓아다니고 있는 현실은 괴리가 있었다. 우리는 그런 괴리를 메우기 위해 1년에 2번은 짧게라도 국내여행을 가고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참여하며 지냈다.
결혼 1주년 기념일에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꽃바구니를 아내에게 선물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꽃바구니를 주문하고 전화로 연락하여 20만 원 정도의 돈을 따로 부쳤다. 꽃에 돈을 말아 감싸서 보낸 꽃바구니를 아내가 받은 시간은 아내가 일하는 사무실 사람들이 모두 있는 시간이었다. 직원들은 아내에게 부러움을 표시했고 차후에 그 분위기를 말로 전달받은 내가 뿌듯할 정도였다.
그리고 9년 동안 아이들의 생일은 중요하지만 결혼기념일은 그저 일상의 하루였을 뿐이었다. 이번 10주년 결혼기념일도 그냥 넘어갈까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결혼 1주년 때 꽃다발을 받고 좋아하던 신혼 초의 아내가 떠올랐다. 내가 평생 사랑하기로 공개적으로 약속한 유일한 사람에게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관련한 일에 책임을 넘기고, 덤벙대면 핀잔주고, 서로 생각이 다를 때는 논리적 설득보다는 잘잘못만 따지면서 아내를 대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나의 행동은 서서히 고쳐나가야겠지만 그간의 미안함은 금전으로라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번에도 돈꽃다발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내가 컨설팅하고 있는 꽃집이 하나 있어 사장님께 얘기를 하고 꽃다발을 주문했다. 꽃과 함께 장식할 지폐는 전부 5만 원짜리로 스무 장을 찾아 직접 건넸다. 이미 한번 해본 것이라 어렵지 않았다. 다만 추석연휴가 끝나고 나서라 ATM기마다 5만 원 지폐가 떨어져서 은행을 2곳이나 방문하여 나눠서 찾아야 했다는 정도가 번거로웠을 뿐이었다.
꽃바구니 배달까지 맡기고 오후 늦게 잡아놓은 스케줄을 마치고 복귀하는데 문자가 왔다.
"주문하신 꽃바구니가 배달되었습니다."
업체에서 보내준 사진에는 화려한 꽃과 주황색의 지폐들이 잘 어울린 바구니가 보였다.
곧이어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이게 뭐예요? ㅎㅎ"
"내 마음이지요."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내가 돈꽃바구니를 어떻게 보관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일단 돈을 전부 아내가 수거하였고 꽃바구니는 꽃이 잘 마르도록 거실 책장 위에 두겠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오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자며 뭐 먹을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전처럼 꽃바구니를 받았을 때 사무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선물을 줬으면 그만이지 반응을 확인하는 것은 구차하게 느껴져 그만두었다.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10년째 결혼기념일의 선물은 이렇게 그냥 일상처럼 지나가는 일이 되었다. 만약 9년 전의 내가 보았다면 "그런 가성비 없는 선물을 다시 하다니... 쯧쯧" 하며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내가 꽃바구니를 왜 거실 책장 위에 두었는지, 굳이 저녁을 자기가 사겠다며 배달을 시켜 먹자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대놓고 좋아하는 것은 부끄러운 아내만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10년의 세월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넘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재산, 소중한 자녀 등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것은 표현이나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