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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 재미는 과정에 있다

당장 도전하자

by CJbenitora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생을 쭉 돌아보면 삶은 죽을 때 무엇을 남기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저 아무개로 남을 것인가? 악인, 선인, 의인 등으로 이름을 남길 것이냐는 본인의 선택이다.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결과라고 하면 삶은 모두 과정이다. 최종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간중간 작은 목표를 두고 달성해 나간다. 목표를 빨리 이루고자 하면 강도가 센 과정을 밟아 갈 것이고 목표를 느긋하게 이루고자 하면 여유 있는 과정을 밟아간다.


그렇게 정한 목표를 이루게 되면 우선 기쁘다. 목표라는 것은 내가 정해놓은 기간 동안 갖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그걸 얻는다는 것은 바라던 일이 이뤄진 것이다. 바라던 일을 이루면 이룬 순간 매우 기분이 좋다. 그것이 힘든 목표일수록 더욱 좋다. 하지만 어떤 목표든지 달성 후 희열은 잠시 뿐이다.


그 이후에 다른 목표 혹은 더 높은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더 이상의 기쁨은 없다. 그때부터는 멈추거나 퇴보하는 것이다. 특히 무리하게 잡은 목표를 달성했다면 이루는 과정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해서 달성 이후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삶을 재미있게 이어갈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이 없다. 뭘 해도 기쁘지 않으면 살아있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목표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 우리는 그걸 얻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고 달성하고 잠시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중학생 시절 새끼손가락과 약지사이에 연필을 끼워두고 손가락을 돌려서 검지와 중지 사이로 연필을 이동시키는 연필 돌리기가 유행했다. 심심할 때나 공부가 잘 안 될 때, 무언가를 생각할 때, 친구들이 손가락 사이로 연필을 빙빙 돌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필을 손가락에 끼워 돌려보니 연필은 손가락 사이를 오가기는커녕 밖으로 튕겨나가기 일쑤였다. 일단 약지와 중지사이에서 검지와 중지 사이로 한 칸만 이동해 보기로 했다.


친구가 천천히 구분동작으로 돌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엄지로 힘을 주어 튕기면 연필은 앞으로 발사하듯 나갔고 이때 중지를 약간 숙이면 자연스럽게 중지와 검지사이에 안착했다. 나는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틈만 나면 연필을 돌려댔다. 수업 중에 떨어진 연필을 주우러 바닥을 기기도 여러 번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연필이 우연히 한 바퀴 돌아서 중지와 검지사이로 이동했다. 가까스로 끄트머리만 잡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최초의 성공이었다. 이 성공이 있고서도 제대로 폼을 갖추며 성공할 때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5번을 하면 4번은 성공하는 수준이 되자 최종목표인 새끼손가락에서부터 두 번 돌려서 중지와 검지사이로 가는 2회전에 도전했다. 이것 역시 성공할 때까지 다시 이틀이 걸렸다. 근 일주일을 책상에 앉으면 연필을 돌려대면서 나를 가르쳐준 친구와 비슷한 실력이 되었다. 이후 엄지로 튕기지 않고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연필이 이동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시험 성적이 오르는 것보다 더 기쁜 성취였다. 일주일이 어찌 가는 줄을 몰랐고 달성하고 친구들 사이에 당당히 나도 끼어 연필을 돌리는 것이 기뻤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공부하며 연필이나 볼펜을 돌리면서 지냈다. 대학생이 되었더니 더 이상 연필을 돌릴 이유가 없어졌다. 우선 잡기술을 좋게 봐줄 친구가 없었고 공공장소나 도서관에서 연필을 돌리면 얼마 안 있어 주변인의 따가운 눈빛이 따라왔다. 그렇게 수십 년을 봉인하고 있다가 최근 첫째 아이의 문제집을 매길 때 무심코 볼펜을 돌렸다. 첫째는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빠, 다시 해봐."

"뭘?"

"볼펜 돌리는 거."

내가 빠르고 부드럽게 볼펜을 돌리자 아이는 신기해했다. 볼펜이 새끼손가락부터 약지와 중지를 지나 검지사이에 안착하는 별 쓸모없는 기술 하나가 초등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한동안 첫째도 연필 돌리기에 빠질 것 같다. 이 기술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기술은 아니지만 이를 익히는 과정이 즐거웠음을 아는 입장에서 우리 아이도 '할 수 없다'가 '될 수도 있다'가 되고 '어설픈 성공'이 되었다가 '자연스러운 성공'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등산을 할 때 처음부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모랑마 봉우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집 뒷산부터 시작하여 조금씩 도전한다. 체력을 높이고 지구력을 갖추고, 시간을 투자하고, 장비를 갖춰 입고, 같이 오를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등 산이 높아지면 질수록 갖춰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 그러다 산의 높이가 2천 미터가 넘어가면 고산병 대비를 하고, 짐을 효율적으로 싸고, 해외 유명산들로 떠난다. 그런 과정들이 성장하는 느낌을 주고 기분을 좋게 한다. 그런 도전을 통해 초모랑마 등정까지 이뤄낸 사람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7 대륙의 최고봉을 전부 오르거나 8천 미터 봉우리를 전부 오르는 등의 다음 목표를 정해서 계속 나아간다.


이런 극소수의 초모랑마 등반가가 되지 않더라도 킬리만자로 등반가, 백두산 등반가, 한라산 등반가, 뒷산 등반가가 될 수 있다. 각자 세운 목표는 산 높이가 어떻냐에 따라 높고 낮을 뿐이지 그 가치는 동일하다. 오늘은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고 기쁨이 없다면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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