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명절음식: 양갈비, 통삼겹갈비구이, 그리고 젤리같은 생선요리
설날과 추석이 한국의 큰 명절이듯이, 루터복음교가 국교인 노르웨이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다. 가족들끼리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선물도 나누는데, 12월 즈음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들떠있는 게 느껴질 정도. 12월은 해가 짧아서 출근하기 전과 후에는 어두운 하늘만 보는 기간이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알게 모르게 다들 보다 생기 있고 포근하달까? 그만큼 현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자 휴가 기간이다. 한국에서는 25일 하루만 성탄절 국경일이지만, 여기서는 24일 밤이 예수의 탄생이기 때문에 그 날부터 3일, 그러니까 25일과 26일도 빨간날이다. 그만큼 크리스마스 전통에 대해서는 소개하고픈 것이 많은데, 오늘은 우선 음식부터 소개하겠다.
*Jul [유울]은 크리스마스, mat [마앝]은 음식, 그리고 middag [미닥]은 저녁식사라는 뜻이다.
한국인에게 삼겹살이 있다면, 노르웨이인에게는 ribbe가 있다. 자르지 않은 두꺼운 옆구리 삼겹살을 갈빗대가 붙은 채로 한꺼번에 통으로 오븐에 구워, 껍데기를 바삭하게 만드는 ribbe [립베]는 노르웨이 전통 음식 중 단연 최애라고 말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노르웨이 내 크리스마스 밥상의 6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라고 한다.
Ribbe의 가장 큰 특징은 이 바둑판 모양이다. 익히기 전에 고기 자체는 자르지 않고 돼지 껍데기 표면만 촘촘한 격자무늬로 칼집을 내기 때문이다. 고기를 오븐에서 낮은 온도로 오랜시간동안 굽다가, 마지막에 온도를 올려 구우면 돼지 껍데기가 팝콘처럼 터지면서 작은 방울 모양이 되는데, 이게 그렇게 바삭하고 고소할 수가 없다. 위 사진처럼 골고루 바삭한 ribbe가 '완벽한' ribbe라고 여겨지는데, 이를 완성하는데는 고도의 집중력과 많은 시간, 그리고 정확한 기술이 필요해서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잘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팁이 온라인에 아주 많다.
Ribbe를 먹을 때는 여러가지를 곁들여 먹는다. 지난 포스트에서 두꺼운 소고기 미트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소개했던 링곤베리잼 (tyttebær syltetøy)과 브라운소스 (brunsaus), 그리고 삶은 감자는 필수이다. 이에 더하여 크리스마스 만찬인만큼 부수적인 것들을 많이 준비한다.
메인인 ribbe와 함께 준비하는 것 중의 첫번째는 소세지이다. 한 마디로 고기에 고기를 곁들여 먹는다는 소리다. 위 사진에도 나와 있는데,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julepølse [율레폴세/펄세] 라고 해서 크리스마스를 대표할 수 있는 향신료 (e.g. 아니스, 정향, 계피, 육두구; anise, clove, cinnamon, nutmeg)를 곁들인 두꺼운 소세지를 판매한다. 이것을 후라이팬에 굽고 나서 마지막에 ribbe가 있는 오븐에 넣어서 함께 속살을 데워서 준비한다.
위 사진에는 없지만 흔히들 곁들여 먹는 것이 말린 자두와 사과 등의 달콤한 과일이다. 생으로 먹지는 않고, 이 역시 ribbe의 그 시그니쳐 바삭한 껍데기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에 같이 오븐에서 익힌다. 그러면 고기에서 나온 기름과 육즙을 머금고 익혀지면서 달콤함이 배가된다. 이렇게 따뜻한 과일들을 통삼겹갈비구이와 함께 먹으면 상큼하고 달짝지근 하면서도 감칠맛있게 고기의 무거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 한 가지 빼놓으면 서운한 것이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와 비슷한 surkål [수르코올]. Sur [수-ㄹ]가 시다, 새콤하다는 뜻이고 kål [코올]이 양배추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시큼한 양배추 절임이다. 위 사진의 오른쪽 아래에 등장하는 누런색이 양배추, 붉은색이 적양배추로 만들어진 surkål인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옛날에는 surkål을 만들 때 사우어크라우트처럼 발효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보통 이미 만들어진 것을 슈퍼마켓에서 구매하거나, 직접 만든다고 해도 발효시키지 않고 피클처럼 식초에 절여서 만든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칼로리도 높지만 크리스마스는 만찬이니까 다 괜찮다는 심산으로 즐겁게 먹는다.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맛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는 ribbe의 맛. 정말 최고.
노르웨이의 서부 지역에서는, 그리고 고향이 그 지역인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만찬으로 pinnekjøtt[핀네숏/셧]을 즐겨 먹는다. 노르웨이어로 pinnekjøtt은 뾰족한 가지를 뜻하는 pinne[핀네]와 고기를 뜻하는 kjøtt이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뾰족한 가지는 사실 양의 갈빗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Pinnekjøtt을 만드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짜게 염장하여 양고기를 말린다. 추운 지역에서는 (그러니까 웬만한 노르웨이 전역에서는) 해가 들지 않는 방 한 켠에 빨랫줄 같은 것을 묶어 말릴 수 있다. 먹을 때가 되면 양의 갈비를 따라 길게 자른 뒤, 물에 오랜 시간 불려 소금기를 빼낸 후 쪄서 먹는다. 보통 14-16시간 정도 물에 담궈놓는데, 덜 짜게 먹고 싶으면 더 길게 넣어두어도 된다. 찔 때는 맨 밑에 나뭇가지들을 넣어 고기가 물에 거의 잠기지 않도록 한다.
Pinnekjøtt은 대체로 위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kålrotstappe를 곁들여 먹는다. 노르딕 국가에서 나는 순무의 일종인 kålrot [코-올롵](영어로 rutabaga)를 삶아서 뭉갠 다음 버터와 크림을 넣고 쑨 풀의 질감이 날 때까지 잘 개어서 만든다. Kålrot 자체는 순무와 같은 식구이니만큼 그냥 뿌리 채소 맛이 나는데, 그래도 이 kålrotstappe를 만들 때는 흔히 kålrot과 함께 당근이나 감자를 함께 넣어 만들기 때문에 색상은 주로 주황끼가 도는 노란색이 나고, 부드럽고 약간 달짝지근해서 정말 맛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pinnekjøtt에는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조금 남아있다. 맛을 보면 잘 느껴지지 않는데, 냄새만 맡으면 그렇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양고기요리로는 fårikål을, 크리스마스 저녁으로는 ribbe를 더 좋아한다. 그러나 현지 사람들은 pinnekjøtt이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어떤 이들에게는 ribbe보다 훨씬 더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음식일 정도로 사랑받는 음식이다. 그리고 나 또한 이제는 이 양갈비의 긴 숙성시간에서 오는 감칠맛과 짭짤함에 꽂혀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pinnekjøtt을 굳이 이렇게 집에서 준비하지 않아도 늦가을-겨울철이 되면 이미 염장과 건조과정을 거친 pinnekjøtt 용 갈빗대를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훈제과정을 거친 pinnekjøtt 고기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누린내가 거의 하나도 나지 않고 보다 익숙한 훈제 맛이 나서 더 쉽게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노르웨이에서 몇 년 살았다고 하면 현지 사람들이 장난처럼 물어보는 것이 바로 "lutefisk 먹어봤냐"는 것이다. 그만큼 호불호가 강하고 식감과 향이 특이하기 때문인데, 바다생물은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lutefisk[루떼피스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이다. 노르웨이어로 lut[루웉]은 양잿물 할 때 그 재 (영어로 lye)이고, fisk[피스크]는 생선/물고기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나도 이번에 구글링으로 알게 되었는데, 아주 짜게 소금을 쳐서 말린 흰 생선을 잿물에 담가 절여서 만들어 진다고 한다.
물론 그대로 먹을 수는 없다. 5-6일이상 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물에 담가 불린 다음에, 이틀 정도 더 물을 갈지 않는 상태로 약간의 가성소다(잿물)이 든 물에 다시 불려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말렸던 생선이 다시 부피가 커지고, 단백질의 50% 정도를 잃으면서 젤리같이 탱글탱글한 식감이 완성된다.
물에 불려졌기 때문에 코다리 같은 식감은 사라지고 젤리나 오래 고아진 한우 사골의 물렁뼈와 비슷한 식감이 된다. 온도는 차갑고 맛은 아주 짠데, 노르웨이 전통 효모 없이 만든 얇은 빵이자 랩인 lefse [레프세]에 버터를 바른 뒤 lutefisk의 살 일부 조각을 잘라 올린 후 후추를 곁들여 말아 먹으면 정말 별미이고 맛이 좋다.
Lutefisk를 1년 내내 먹는 것은 아니고 보통 연말에, 크리스마스 즈음에 특별하게 먹는다. 아쉽게도 시댁 식구들 중에 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시어머니와 나밖에 없다. 당신께서 좋아하심에도 불구하고 함께 먹어줄 사람이 없는 데다 1인분만 준비하기가 귀찮고도 낭비스러워 한동안 안 드셨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온 며느리가 이것을 입맛에 맞아 하니 나를 핑계 삼아, 감사하게도, 매년 조금씩 준비하신다. 앞서 말했듯이 이 음식은 처음부터 만들기는 아주 까다로워서, 어머니께서도 이미 만들어진 것을 구매하신다. 다른 식구들이 식탁에서 소세지 따위를 먹을 때 우리는 한 쪽 끝에 사이 좋게 마주 앉아 lutefisk를 먹는다. 둘이서만 오붓하게! (Vi koser oss, vi!)
노르웨이에서는 12월 24일 저녁이 크리스마스 당일이며, 그래서 그 날 저녁이 가장 중요하고 큰 식사이다. 그래서 준비할 것도 많고, 옷도 차려 입고, 선물도 주고 받고 등등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은데, 강풍이 불고 눈이 쌓인 밖을 바라다보면서 따뜻한 음식을 먹고 가족들과 정을 나누다보면 한 해의 마무리를 정말 "아늑하게" (koselig!) 할 수 있다. 여전히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노르웨이의 겨울은 집 밖이 더 위험하니까 이번 겨울도 이런 음식들을 먹으면서 나야겠다고, 밤 열한시에도 밖이 훤한 백야의 여름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