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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an 17. 2021

노르웨이 정착일기: 복지국가라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슬로에 사는 이유

    2017년 오슬로의 겨울은 유난히도 매서웠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도 있고 막연하게 서양은 다 거기서 거기려니 하는 생각으로 왔지만 노르웨이는 정말 다른 세상이다. 특히 그 해 겨울은 현지인들도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로 특별히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매 걸음마다 눈과 얼음이 잔뜩 낀 거리를 걸으며 (또 연거푸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처음에는 그래도 예쁜 겨울왕국에 살게 되었구나 스스로를 위안했다. 미끄럼 방지 스파이크를 실내에선 벗었다가 야외에서는 다시 신발에 장착하는 루틴에 익숙해질 무렵 슬슬 눈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4월 말, 5월 초까지 함박눈이 내리니 그럴만도 했다. 처음 두 번의 겨울은 감기와 독감을 달고 살았다. 4개월 정도 열, 코감기, 목감기를 연달아 겪고 나니 바람 한 자락에 온 몸이 휘둘리는 느낌이었다.

오슬로 정착 이후 나의 올타임 최애짤. 출처는 언젠가 Reddit 일 듯.

    그런데 왜 여기 사냐고? 그러게 말이다.




외국인에게도 무료인 고등교육


       유럽의 고등교육은 대체로 EU국가의 시민들에게는 무료이지만 EU 소속이 아닌 국가의 시민들은 등록금을 내야한다. 이 또한 북아메리카와 비교해서는 훨씬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노르웨이의 경우 21년 1월 현재 아직까지 외국인도 무료로 공립 고등교육을 수료할 수 있다. 교육이 기본권의 일부이자 기회의 평등을 담보한다는 일념하에 계속되어온 원칙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꾸준히 외국인에게 등록금을 부과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어왔기 때문에 언제까지 지켜질 지는 의문이다. 학사 수준의 경우 노르웨이어로 진행되는 수업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유창한 수준의 노르웨이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입학할 수 있지만, 석사 이상의 레벨은 프로그램 자체가 영어인 경우가 꽤 많고 여러 학과 내에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도 많다. 휴학을 할 경우에도 만 35세 이하에 한해 언제나 무료로 다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여 고등교육 수료를 장려하고 있다.

    내가 석사 학위를 받은 오슬로대학교 (University of Oslo; 노르웨이어로는 Universitetet i Oslo, 줄여서 UiO)는 노르웨이 내에서 가장 크고 명망이 높은 고등교육기관이다. 노르웨이는 한국처럼 대학교의 서열이 뚜렷하지 않고 교육기관들이 대체로 평준화되어 있지만, UiO의 경우 1811년에 건립되어 긴 역사를 자랑하고 연구 실적도 많으며 수도에 위치하여 아주 매력적인 학교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오슬로의 유일한 university였는데, 오슬로 메트로폴리탄 대학교(OsloMet)가 university 지위를 인정받아 승격되었다. UiO의 경우는 학문적, 역사적, 과학적인 연구, 그리고 OsloMet의 경우에는 보다 실용적이고 직업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 외에도 비즈니스 스쿨이나 예술 학교 등 많은 교육적 기회가 많이 자리하고 있다 (사립인 경우에는 물론 등록금을 내야 한다).

    사회과학에서 인권, 성평등, 인종차별 등에 대해 더 배우고 싶던 나에게 북유럽의 노르딕 모델은 현존하는 유토피아였고, 오슬로에서의 공부와 삶은 그를 들여다 볼 기회였다. 어느 사회이건 간에 보면 볼수록 넘쳐나는 게 사회적 문제이지만, 낮은 교육의 문턱과 북유럽 사회에 대한 자기 반성적이고 맥락적인 연구가 많은 노르웨이를 경험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장학금으로 일부 전환되는 학자금 대출


     우선, 노르웨이의 학자금 대출은 학생 비자로 머무르는 외국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자국민이거나 자국민과 결혼한 배우자의 경우 고등교육 수료 과정 동안 로네카센 (Lånekassen)이라는 학자금 정부 대출 기관을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학생을 전업으로 하면서 대출을 받을 경우, 1년에 약 123 000 크로네 (한화 약 1590만원)를 대출받을 수 있는데, 매 월 정해진 금액을 받는 방식이라 계획과 운용이 보다 편리하다. 매 학기 시작인 1월과 8월에는 교과서와 준비물 등 필요한 것이 많기 때문에 22 000 크로네 (한화 약 280만원) 를 받고 여름방학인 7월을 제외한 나머지 달에는 매 월 약 8400 크로네 (한화 약 100만원)를 받는다.

    풀타임으로 등록하였고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여 공부하는 학생이 모든 수업을 무사히 마칠 경우 (성적이 F일 경우 학점을 듣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지만 그 이상의 성적을 받으면 패스라고 간주된다) 약 1-2년 후에 대출금의 40%가 장학금으로 전환된다. 나라에서 공부하라고 주는 장학금이라니! 이렇게 좋은 학자금 대출 기회가 있다보니 그를 마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2.159%라는 아주 낮은 이율로 평생동안 갚을 수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다른 대출금을 먼저 갚고 학자금 대출금을 가장 나중에 갚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2021년 현재 연간 학자금 대출가능금액 및 장학금 전환예정 추산 수치. 출처는 lanekassen.no


   대학등록금이 사실상 무료이다 보니 (등록비 한 학기 840 크로네; 약 11만원) 학자금 대출은 주로 생활비 보조라고 할 수 있다. 쓰고 넘칠만큼은 아니어도 평소 큰 제약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랄까. 이에 더하여 학생 전용 편의시설, 의료시설 및 기숙사/학생주택을 이용하고 외식을 자주 하지 않는다면 매우 저렴하게 한 달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가구나 옷, 일상 생활용품들을 사고 파는 중고 장터 (finn.no; 이에 대한 정보는 따로 다시 서술하기로 한다)가 학생들 사이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아주 활발하기 때문에 이를 잘 이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알뜰한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학생비자로 있었기 때문에 자비로 생활비를 모두 충당했지만, 혼인신고를 하고 배우자 비자로 전환한 뒤 논문을 쓰던 마지막 해에는 나도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2019년 가을 학기의 대출금은 아직 전환되지 않았지만, 그 이전 학기는 모두 40%가 장학금으로 전환되었다! 졸업 후 6개월 뒤에 대출금 상환을 시작하는데, 취직을 하지 못했거나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상환 시작 시기를 늦출 수도 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이자가 없지만 그 후에는 이자가 붙기 시작하기 때문에 늦게 시작하는 것만이 답은 아닌데, 그래도 바로 갚으라고 종용하지 않으니 꽤나 이해심이 많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싼 물가, 높은 최저임금, 실직 수당


    빅맥지수 (Big Mac Index)에 따르면 노르웨이가 세계에서 빅맥 햄버거를 가장 비싸게 파는 나라라고 한다. 처음 오슬로에 왔을 때는 가격을 매번 한화로 변환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1000원이 약 7.5 크로네...) 물건을 사는 데 있어 비싼 물가에 주저하기 일쑤였다 (울양말 한 켤레에 99크로네 (12,000원) 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살만한 이유는 현지에서의 임금수준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하는 일의 분야와 구직자의 연령, 그리고 직장에 노동조합이 있는지에 따라 차등이 있지만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직의 경우 168크로네 (21,000원) 정도가 최저임금이다. 한마디로 말해 카페나 식료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할지라도 풀타임(일주일에 37.5시간)으로 일한다면 풍족하지는 않아도 어렵지 않게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해도 임금 수준의 차이가 심하다면 일의 가치를 보는 시선도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최저임금을 받는 서비스직이라 해도 생활 유지가 가능하니 해당 업무와 그의 종사자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보다 지속가능한 직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의 업무 능력과 시간이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일과 일상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 낸다. 카운터 뒤에 서 있는 나와 손님이 두 인간으로 만날 수 있게 하고,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질문과 대답, 눈맞춤과 미소를 불러오며, 자부심과 고마움의 긍정적 상호작용으로 서비스의 질과 만족도가 상승한다. 최근 Covid-19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있어 절대 필수적인 직업과 업무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면서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딜 가나 진상손님은 있고, 상대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갑질은 존재하며, 일터의 문화와 고용주의 리더십에 따라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최저임금이 높다 할지라도 현지에서의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소한도의 임금이기에 지나치게 이상화하진 마시라.

    그래도 복지국가의 혜택은 이게 끝이 아니다.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았는데도 취직이 되지 않거나, 실직할 경우 실직 수당 (umployment benefits)을 받을 수 있다. 작년 봄 Covid-19 사태가 한참 시작될 무렵, 일하던 카페가 잠시동안 문을 닫는 바람에 약 2개월 간 임시 실직 (temporarily laid off; permitert) 상태가 되었다. 그 때 실직 수당 신청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현재 코로나 때문에 계약서에 쓰인 임금 조건의 40%를 노르웨이 노동 복지청 (Norwegian Labour and Welfare Administration; NAV [Nye arbeids- og velferdsetaten])으로 부터 받을 수 있다.

간단한 실직 수당 신청 방법. 출처는 nav.no

    현재 NAV 홈페이지에 보면 어떻게 실직 수당을 신청할 수 있는지 자세히 쓰여 있다. 구직자 (jobseeker)로 등록한 뒤 본인의 상황을 매 2주 마다 업데이트 해야 하고, CV를 입력하여 구직상태임을 증명해야 한다. NAV 홈페이지를 통해 구직 정보 및 채용 공고를 내는 기업들도 많아 취직 과정에 도움을 제공한다. 내가 실직 수당을 신청했을 당시에는 전국이, 아니 전 세계가 예기치 못한 혼돈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 수당을 받기까지 시간도 걸리고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외국인인 나에게는 돈을 받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지덕지였다. 한편, 이렇게 많은 혜택이 있다 보니 교육을 무료로 받은 뒤 나라에 의존해 실직 수당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5시가 러시아워라고? 저녁이 있는 일상


    오슬로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한 도시 중 하나이다. Ruter 라는 앱을 통해 교통수단 이용티켓을 구매하면 버스, 지하철(T-bane), 트램 (trikk), 그리고 섬 사이를 다니는 배까지 이용할 수 있다. 현재 녹색당이 집권하고 있는 데다 점점 푸른 도시, 환경친화적인 도시로 거듭나기를 목표하고 있는 오슬로이기 때문에 혹시 관광할 일이 있다면 차를 빌릴 생각은 하지 않아도 좋다. 서울의 따릉이나 쏘카처럼 도시 곳곳에서 빌릴 수 있는 자전거(Bysykkel)와 경차(Bybil)가 많기 때문에 그에 의존하여 다닐 수도 있다. 이렇게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다 보면 오후 4-5시 쯤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밝혀두건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서울 저녁의 2호선만큼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는 것을 오슬로에서 볼 일은 없다). 그 때가 보통 사람들의 퇴근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거리가 훤한 것이 익숙한 나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5시인데.. 러시아워라고? 벌써... 집에 간다고?

    이렇게 퇴근 시간이 이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일 것 같기도 한데, 노동 시간과 업무의 효율성이 비례하지 않는 다는 인식이 아주 흔하고 깊게 자리하고 있고, 그래서 일주일의 평균 노동시간은 37.5시간이다. 심지어 은행은 오후 2시면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웬만한 의료시설은 오후 2-3시에 문을 닫는다 (몸이 아프면 일하러 갈 생각 말고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채비를 하고 병원에나 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음식과 주류를 판매하는 식당들의 가격이 높은 세금으로 인해 대체로 높은 데다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관념이 뚜렷하기도 하다. 그래서 저녁식사는 대부분 집에서 한다. 친구를 만난다 할지라도 보통 대여섯시가 되면 '이제 나 저녁 먹으러 가 봐야 겠다'하고 채비를 하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이유에 더불어, 자연적으로 겨울에는 오후 3시면 해가 완전히 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으로 햇빛을 흥청망청 쬘 수 있는 여름과는 정 반대로, 겨울에는 햇살을 받는 것이 일상의 큰 이벤트로 여겨질 지경이다. 애초에 길거리를 밝히는 레스토랑이나 주점, 여러 가게들이 시내가 아니고서야 많지 않기 때문에 해가 지면 굉장히 어두워져서 미끄러지거나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과 가장 다른 점은 카페가 다른 곳보다 문을 더 일찍 닫는다는 점이다. 물론 Covid-19 이전에는 저녁 내내 문을 여는 곳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저녁 8시 정도면 영업을 종료한다. 가장 늦게까지 여는 곳들은 바, 펍, 그리고 슈퍼마켓이다. Covid-19 이후에는 현재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의 주류 판매가 금지되어 거의 모든 주점들이 영업을 임시 중단했기 때문에, 밤에 문을 여는 곳은 슈퍼마켓밖에 없다. 내가 일하는 카페도 매일 오후 6시에 문을 닫고, 여름에는 한 시간 늦춰 저녁 7시까지 영업을 한다.

    그럼 다들 어디서 만나냐고? 누군가의 집에서 논다! 저녁 식사에 초대받거나 초대하는 것이 큰 친밀함의 표시이고, 친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없거나 이미 친하지 않으면 서로 잘 초대하지 않는다. 주류에의 세금이 가장 높기 때문에 보통 대학생들은 누군가의 집에 모여 각자 가져온 술을 마시면서 게임을 하고, 밤이 무르익으면 정오가 다 되어서야 클럽이나 바로 놀러가곤 한다. 지금은 유행병 때문에 다들 조심하느라 서로의 집에 놀러가는 일도, 가까이 서서 오래 이야기 하는 일도 없지만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볼을 부비고 껴안으며 인사를 하고,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보드게임을 하는 그런 날들이 오겠지.

    



그래서 노르웨이에 삽니다



    내게 있어 오슬로는 작지만 큰 도시이다. 한국보다 영토가 4배 넓지만 인구는 10분의 1인 나라. 자랑거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경치인 나라. 수도인 오슬로 시내를 맘먹고 걷자면 하루면 대충은 다 지나가볼 수 있는 나라. 뭐든지 선택권이 다양하진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간단하고 여유로운 나라. 낯을 많이 가리지만 막상 알게 되면 정이 깊은 사람들로 가득한 나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 발견할 것이 끝나지 않는 나라. 앞으로 이 나라에서 얼마나 더 살게될 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이민 4년차, 그동안 겪고, 생각하고, 하고, 먹었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겠다. 이 긴 겨울과 향수병을 무릅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의 '집'이 된 오슬로. 어쩌면 그래서, 이 모든 것들 때문에 지금, 나는 노르웨이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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