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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May 05. 2021

내향적인 노르웨이 사람들과 친구되는 법

노르웨이 사람들 종특 1탄

한국에는 연어의 원산지로 유명한 나라. 밥상에 만만하게 올라오는 고등어의 고향인 나라. 정확히 지도에 손가락을 갖다댈 수는 없지만 얼핏 북유럽에 있다는 것은 알겠는 나라. 영어를 쓰는지 현지어가 따로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파란 눈에 금발인 사람들이 살 것 같은 나라. 이렇게 알듯말듯한 노르웨이로 내가 처음 공부하러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똑같았다.

웬 노르웨이...?

그냥 물음표도 아니고 쩜쩜쩜(...)을 포함하는 어리둥절한 이 질문은 도대체 그게 어딨는 거고 뭐 하는 데인지 1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쭉 빼고 물어야 제 맛이다. 그래서 준비한, 나도 처음엔 몰랐지만 살다보니 알게 된 노르웨이 사람들의 종족 특성. 나랑 같이 사는 노르웨이인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다 그렇더라...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 한국인들과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도 아니요, 아주 깊숙이 자리한 전통적 문화적 가치 체계까지 가기 전인 그 중간 어딘가 애매모호한 부근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질과 비슷한 것들이다.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언제든지 손뼉치며 "맞아, 맞아!" 하지만 게 중 앉아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렇긴 하지.' 하며 머쓱타드 웃음 짓게 만드는 썰을 풀어보겠다.



낯가림과 스몰토크 포비아 (?)


노르웨이인들이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스몰토크이다. 으레 '외국'을 생각하면 왠지 엘리베이터에서 방금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I like your dress!"를 아무렇지 않게 외칠 것만 같은 미국 서부의 외향적이고 업된 분위기가 떠오를 수 있는데, 노르웨이는 그것과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내향성을 잘 반영하는 예로 언젠가 온라인 상에서 유명해졌던 짤을 가져왔는데, 흔한 버스 정류장의 풍경 사진이었다.


노르웨이의 흔한 버스정류장 풍경. 출처는 사진 오른쪽 아래.


줄을 설 때는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1미터 이상 떨어져 서는 게 당연하다. 코로나 이전에도 항상 그래왔다. 반경 1m안에 사람이 들어오면 뭐지? 나에게 설마 말 걸려는 건가? 하는 부담감부터 든다고 보면 된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항상 부담스러웠던 부분이 물건 계산하려고 줄 서 있을 때 괜히 How is it going 이런 스몰토크 하는 거였는데 ("I'm actually having a terrible day" 라고 해도 받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노르웨이에서 절대 그럴 일이 일어날 일이 없다. 모든 슈퍼마켓 및 식료품점에서 계산원과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일정하다. 보다 실감나는 이해를 위해 현지 어디에나 있는 식료품 체인점 중 하나인 kiwi의 계산대 부근이 찍힌 사진을 가져왔다.


 사진 출처: kiwi.no/tema/turmat/kiwis-handlevettregler
계산원: (손님의 차례가 되면) Hei. (Hi/ 어서오세요)
손님: Hei. (Hi/ 안녕하세요)
계산원: (조용히 바코드 찍으며) Pose? (봉투?)
손님: Ja, takk (네, 고맙습니다) / Nei, takk (아뇨, 괜찮아요)
(산 물건을 천천히 담는다)
계산원: (계산이 끝나면) Kvitteringen? (영수증?)
손님: Ja, takk / Nei, takk.
계산원: Ha det bra. (Good bye)
손님: Ha det bra. 


전혀 군더더기가 없다. 얼마나 깔끔한가. 누구나 이렇게 Yes, No, Bye 만 할 줄 알면 노르웨이에서 물건 사는 건 아무 문제없이 현지어로 소화할 수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람에 따라 몇 단어만 앞뒤로 더해질 뿐 똑같고, 실제로 예전에 캐셔로 일했던 신랑에게 현실고증을 마친 정보이기도 하다. 이는 낯가림 때문일 수도 있지만 스몰토크 자체를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어쩌다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캘리포니아에서는 짧게 웃음을 지어주거나 어깨를 으쓱 하거나 심한 경우 (?) 스몰토크를 시작하기도 하는데 노르웨이에서는 얼른 다른 데 보면 된다. 그냥 못 본 척 하는 것이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경우에도 그냥 모른 척 하기가 일쑤이다. 그러면 속으로 '아, 괜히 어색하게 안부 묻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라며 갈 길을 마저 갈 수 있다. 


그렇다고 마음 상하는 일은 전혀 없다. 그냥 그 날 그 타이밍에 그 사람과 굳이 할 말이 없었을 뿐, 혹은 그냥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을 뿐, 엄청나게 가까운 가족이나 정말로 깊게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서로 못 본 척 하기'는 나에게도 여러번 일어난 일인데, 처음에는 '아니, 저 사람이 왜 날 모른척 하지?! 나에게 삐진 일이 있나?' 했지만 이제는 나도 딱히 할 말이 없는 사람이거나 그냥 왠지 오늘따라 모른척 하고 싶으면 얼른 그냥 다른 곳을 보면서 간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했다 하더라도 굳이 지금 길거리에 서서 한 두 마디 안부를 나눌 필요가 없고 그걸 상대방이 어색해 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만났을 때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고, 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나 지난 번에 길가다 너 봤는데, 그냥 지나가게 됐어" 정도로 말해도 당연하게 이해하고 넘어간다.


자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요


이쯤되면 스몰토크 포비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는 내향성이 짙은 노르웨이인들이 명랑하고 쾌활해지는 때가 있다. 이는 바로 자연에 있을 때! 특히 등산 중에 마주친 다른 사람들과는 신이 나서 "Hei!" 하고 인사를 하고 웃어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더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절대 아니다. 본래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는 것 자체가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산에서는 동료 등산객에 대한 응원같은 느낌으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동네 뒷산에 올라 가서 찍은 풍경. 사진에 계신 분들은 모르는 분들이지만, 이렇게들 피크닉을 한다.


하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내향성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인들은 그들의 자연과 풍경을 굉장히 사랑하며 그 안에 있을 때 내적 평화를 얻는다. 우리가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무렵 신랑에게 내가 "노르웨이는 가장 유명한 게 뭐야?"라고 물었을 때, 당황해 하며 "...... 자연?" 이라고 답했던 적이 있다. 숲이나 산에서 캠핑을 하고, 눈이 있는 겨울부터 봄까지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러 가고, 심심하면 시도때도 없이 등산이나 산으로 나들이를 가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연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이는 흔히 사람들이 쓰는 현지 속담에 잘 반영되어 있다.

Ut på tur, aldri sur!

롸임을 좋아하는 노르웨이인들의 속성에 걸맞게 "우웉 포 투ㄹ, 알드리 수ㄹ!" 정도로 읽히는 이 속담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자연에 있다면 찡그릴 일이 없다"는 자연 덕후적인 첫 번째 의미와 더불어 (If you're walking in nature, you'll never be mad/annoyed!), "자연에서 야외활동을 하고 있는 한 짜증이 날 만한 일이 있어도 그러지 말자"는 다짐의 의미  (You don't get to be mad/annoyed while being out in the nature)가 공존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아주 유명한 속담이 있는데, 

Det finnes ikke dårlig vær, bare dårlig klær!

이것 역시 롸임이 살아있는 문구로 "데 핀네스 이께 도올리 바ㄹ, 바레 도올리 클라ㄹ!" 정도로 읽히는 이 속담은 "안 좋은 날씨 따위는 없다, 제대로 옷을 입지 않았을 뿐! (There is no such thing as bad weather, just bad clothing!)"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울로 된 내복과 스웨터, 방수 기능을 가진 옷과 캠핑 장비를 챙겨서 밖으로 나가는 이 노르웨이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말들이다. 나도 처음에는 굳이 다시 내려올 거 왜 기를 쓰고 올라가나, 그냥 편안한 집에서 잠을 자면 될걸 왜 굳이 산에 기어올라가서 씻지도 않고 불편하게 잠을 자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 자연의 초록과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즐기는 맛, 그리고 새소리와 냇물소리를 들으며 햇빛 때문에 눈이 떠지는 고요한 아침의 정기는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노르웨이인들의 자연 덕질은 등산에서 끝나지 않는다. 땅이 얼면 산에 오르는 게 위험한데 그렇다고 긴 겨울 내 실내에 틀어박혀 지낼 것인가? 응, 아니야. 해결책은 크로스 컨트리 스키. 노르웨이인들의 스키에 대한 애정은 이로 말할 수 없이 크다. 한국인이 태권도와 양궁에 가지는 자부심과 비슷하달까?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태권도를 많이들 배우긴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정말 성별 나이 불문 개나 소나 누구나 스키를 타기 때문에 국민 스포츠에 가깝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중요해서 (!) 다음에 다시 더 자세히 쓰기로 한다. 



친해지기 위해서는 "협업"이 중요: 이케아를 생각하세요


그렇다면 이렇게 내향성이 짙은 노르웨이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혹은 그들끼리는 어떻게 친해지는 것일까?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초반에 절대 naver... 해서는 안 될 일이 바로 저녁 초대이다! 우스갯소리이지만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사람더러 방금 알게 된 사람과 밥을 먹으면서 2시간 동안 대화만 하라는 것은 정말 큰 고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협업"이 키워드. 공동의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아주 효과적으로 우정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신체적 활동이 수반된다면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래서 내가 볼 땐 등산과 캠핑을 좋아하는 것도, 머리를 맞대고 가구를 만들어야 하는 이케아가 옆나라인 스웨덴에서 시작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흔한 노르웨이식 타코 사진. 양념된 고기, 살사, 야채와 과카몰리. 사진 출처: kitchn.no/bli-no-1/oppskrifter/klassisk-fredagstaco/

꼭 옷장을 조립하는 것과 같은 고된 작업이 아니더라도 함께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이 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요지이다. 예를 들어, 텐트 치기, 모닥불 만들기, 등산 하기, 블루베리 따러 가기, 미니골프 치기, 보드게임 하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살짝 친해진 친구들과 만날 때는 저녁을 함께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손쉽고 만만한 메뉴는 타코. 이것은 멕시코 음식인 타코를 노르웨이식으로 보다 맵지 않게 변형한 것이다. 이것저것 들어갈 재료를 각자 맡아 손질해서 준비한 뒤, 식탁에 사진과 같이 따로 놓는다. 사람들은 각자 입맛에 맞게 또띠야나 타코 쉘 안에 재료를 듬뿍 조합해서 쌈을 싸 먹듯이 각자의 타코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현지에서는 젊은이들이 금요일마다 파티를 하며 주로 저녁으로 타코를 만들어 먹는다고 해서 이 메뉴 자체를 "금요일 타코 (fredagstaco)"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저녁을 함께 만드는 것이 노르웨이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인 까닭은 각자 할 일이 주어진 상태에서 대화를 할 수 있고, 어색할 때는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공동의 과제 및 대화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노르웨이에서 의외로 인기가 정말 많은 것이 보드게임이다. 노르웨이인 친구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거나 더 친해지고 싶다면 보드게임을 사서 "다음에 함께 하자"고 해보자. 혹은 "00산의 경치가 좋다는데 언제 같이 등산할까?"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활동을 함께 할 것을 제안하는 것은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난 당신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게 생각한다", 즉 "나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라는 것과 동의어로, 그들은 생각보다 큰 울림과 감동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친하지 않다면 무조건 양말. 울 양말이 최고다.


실제로 우리 부부가 처음 만남을 시작하게 된 것도 우연찮게 그런 '노르웨이식 친해지기'가 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인가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공부하던 5-6년 전 당시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과 함께 금문교를 자전거로 횡단하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는 것에 서툴었던 나는 아니나 다를까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사고를 일으키며 난리가 났고, 그런 나를 도와주고 구해주면서 신랑은 나에게 이끌렸다고 했다. 정작 난 그 날 자괴감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도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보면 야외에서, 신체적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이 여자를 무사히 기숙사로 데려다 놓는다'라는 공통의 프로젝트(ㅋㅋㅋ)를 함께 한 것이 찐노르웨이인인 그의 입맛에 딱 맞는 첫 데이트가 된 건 아닐까? 어찌 되었든 결과로 보면 이득.




이렇게 정리해본 노르웨이 사람들의 종특 첫번째.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지니고 있는 성향이라고 해도 당연히 사람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한국인들처럼 본인들의 '종특'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꽤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낯을 많이 가리지만 한 번 친해지면 정이 깊고 오지랖도 넓은 노르웨이 사람들. 그래서 어쩌면 한국인들과도 잘 맞을 것만 같은 이 사람들의 이야기. 앞으로도 관심있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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