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와 30대의 경계에서
2021년 1월, 요란하게 서른을 맞이했던 나는 2022년 11월 곧 다시 서른이 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27년을 살고 미국으로 건너온 나는 늘 두 개의 나이를 떠올리며 살고 있다. 생일이 늦은 편이기 때문에 한국 나이와 만 나이 사이에는 대체로 두 살 차이가 난다. 따라서 한국에서 친구들과 서른을 열렬하게 축하한 지 1년 반이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나는 아직 20대다.
나이가 뭐길래. 한국에서 30대였다가 미국에서 20대가 된다고 해서 얼굴이나 신체 능력이 어려지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부여되는 타이틀이 하나 바뀌는 것뿐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는 타이틀도 아니라서 내 사회 활동에 큰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30대가 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20대의 청춘과 낭만을 인생의 꽃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겠지만, 나는 늘 30대가 내 인생의 전성기일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20대에는 무모한 도전을 많이 하면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기, 30대는 비로소 나를 찾고 안정적으로 인생을 즐기면서도 젊음이 남아있는 황금기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서른을 맞이할 때는 다소 우울했다. 20대를 열심히 살았음에도 내가 원하는 만큼 준비된 상태로 서른을 맞이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서른이 될 때쯤 경제적, 상황적, 그리고 정서적 안정을 얻었을 것이라 기대했다. 단순히 말해 경제적 안정이란 집, 차, 그리고 높은 연봉을 말하는 것이고 상황적 안정은 결혼이다. 가장 기대했던 것은 정서적 안정인데, 서른이 되면 나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나의 서른은 집도 차도 없는 싱글 대학원생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 상태로 20대를 마치고 30대를 맞이하는 것은 먹은 고기를 아직 소화시키지 못했는데 또 다른 요리를 먹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짜' 서른을 곧 맞이하게 되는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먹은 열 살이 아직 소화되지 않았지만 다음 열 살을 빨리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이다. 다음 요리가 오히려 이전 요리의 소화를 도울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는 20대에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을 거의 다 했다. 작게는 술집에서 밤새기부터 혼자 여행하기, 크게는 유학까지. 끊임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느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현재의 욕구를 참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자산 증식이나 결혼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나의 상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오롯이 나의 욕구를 위해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그 만족도는 아주 크다. 나의 20대에는 후회되거나 우울하게 기억되는 순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인생을 살아온 방식인 거다. 인생의 황금기가 될 미래를 위해 준비하면서 20대를 보낸 것이 아니라, 청춘 그 자체를 위해 청춘을 보낸 스스로가 철이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이를 말리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도록 놓아둔 부모님도 존경스럽다.
아직도 20대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다. 미래 그런 건 모르겠고 그저 즐기는 게 좋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젊음이 부여해 준 체력과 시간으로 10년 간 욕구를 좇아 단편작을 많이 찍었으니까, 이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장편 시리즈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설렌다. 물론 나는 아직 경계에 놓여있어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또 혼란스럽다. 30대가 된다고 해서 안정을 찾고 20대에 못했던 것을 다 이루며 전성기를 누릴 것이라는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발렌타인데이를 핑계로 연인에게 마음을 한 번 더 표현하는 것처럼, 두 번째 서른 맞이를 핑계로 나 자신에게 다짐을 한 번 더 쥐여줄 뿐이다.
한국에서도 이제 만 나이를 적용한다고 하네요. 이 제도가 우리의 마음가짐에 얼마나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