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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Oct 18. 2023

완두콩의 습격


그 후 한동안 영희씨로부터의 택배는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했다. 종종 몇 개의 택배가 배달되었지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고구마, 감자 따위의 것들을 받을 지 말 지를 두고 나와 남편의 실랑이가 이어지기는 했다. 킬로수를 정확히 알려주면 정량만 주실 것이니 택배를 받겠다, 그래도 택배비 아깝다며 그 사이사이에 뭔가를 더 넣어주실 것이다로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무언가를 보내주겠노라 영희씨로부터 연락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와 나 사이에 언쟁이 오갔다. 매번 속절없이 속으면서도 받고자 하는 남편의 태도에 진저리를 치는 날들. 주겠노라 부모의 연락에 안 받겠노라 답하는 것이 그에게는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을 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봄날의 끝자락에 영희씨로부터 전화가 날아들었다. 토요일 아침, 정확하게 두 통의 전화였으나 자다 깬 지 얼마 안돼 여전히 무음이었던 내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영희씨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남편이 욕실에 있다 전화받는 소리가 들렸다. 왕왕 울려오는 남편의 통화소리가 밖으로 전해진다. 듣자 하니, 또 그녀는 무언가를 보내줄 요량이다.


지인이가 전화를 안 받아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며 나를 힐난하는 말 한 스푼은 자동으로 첨가다. (후일에 영희씨는 그날 전화를 못받은 나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영희씨가 완두콩을 수확하였고 그걸 보내주겠다는 것이 통화의 요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행여 기함할만한 양의 완두콩이 올까 지레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아니야, 그것만은 제발.


조금만 달라고 했어, 지겹겠지만 오늘도 영희씨와 남편 사이에 '조금만'의 약속이 이어졌다. 지난 두어 달은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납득할만한 양의 택배를 받아왔기에 그날 아침의 나는 꽤나 안일하게 남편과의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그러면 안 됐던 거다.



결국 영희씨의 완두콩이 우리집 냉장고를 초록초록하게 물들였다. 남편은 집에 있는 밀폐용기란 용기는 죄다 꺼내어 배송된 콩들을 욱여넣어 두었다. 투명한 밀폐용기 안에 반짝이는 초록 콩들. 그리고 그 용기로 가득 채워진 냉장고를 열어젖힌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내 말과 의견은 앞으로도 이토록 무참히 묵살당할 것임을, 그 콩들을 보며 미래를 예감했다. 기어코 내 눈을 뒤집히게 할 만한 양의 완두콩을 실어 보내는, 모성애를 빙자한 그 마음에 나는 앞으로 한 터럭의 이해심도 발휘하고 싶지 않아졌다. 며느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걸까. 그 의도를 불순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가히 어마어마한 양의 완두콩이 알알이 밀폐용기에 들어앉아있었다.

 

예견된 수순대로 남편과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도 양이 지나치다는 사실에는 동의했으나 보낸 이의 의도에 대한 나의 원색적인 비난을 넙죽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결국 이 택배 지옥의 엔딩신은 언성 높이며 다퉈대는 나와 남편의 모습이었구나.


그때의 나는 상스럽게 말해 ‘눈이 돌아'버렸고 이 감당불가한 택배가 계속 도착하도록 만드는 데 그녀의 아들인 남편 책임이 크다고 생각했다. 우리야 어떻든 아랑곳 않고 거침없이 본인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녀의 태도는 아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라도 이 지옥의 책임을 탓할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강하게, 더 상세하게 우리의 입장을 알리지 않은 잘못, 그녀가 이해하도록 구구절절 설명하지 못한 무능함, 무엇보다 네 어머니니까. 나는 넘쳐흐르는 울분을 주체 못하고 남편에게 손가락질 해댔다.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좋게 좋게'는 없어야 했다. 톺아보자면 그간 나나 남편 모두 모종의 룰을 어기지 않으면서 그녀에게 의견을 드러냈다. 자식 먹을 것 보내주고 싶은 어미의 마음을 찌르지는 말 것, 이라는 룰. 우리는 그녀가 느낄 감정의 안위가 우선이었나보다. 내 가정의 화목이 망가져가는데도 말이다. 당신이 투척하는 택배 때문에 아들네 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선명한 실상을 목격했다면 그녀는 그 택배들을 멈추었을까.



이래저래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었던 것인지, 남편은 회사에서 어머니 영희씨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통화를 했다고, 우리가 '해야 할 말' 다 했으나 어머니도 화가 많이 났다며 나에게 전언했다. 어쩌라고, 어머님만큼이나 너도 화났고 나도 화난걸.


남편이 말에 살을 덧붙였다. 다시는 택배 안 보낼 거니까 그런 줄 알라는 그녀의 어름장, 안 먹을 거면 도로 돌려보내라 악쓰는 그녀의 목소리, 아들에게 싸가지가 없다고 외치는 방향 잃은 비난들이 오고 가는 통화였단다. 그녀의 막말은 아들도 못 피해 가는구나 싶어, '나한테만'은 아니구나 싶어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기대만큼 교양 없고 격 떨어지는 말. 내가 기대하던 답은, 그래 너희의 입장이 그렇다면 다음부턴 고려해주마, 혹은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였지만 그런 품격 어린 어른의 말을 지금까지도 영희씨로부터 들어본 적 없다.


영희씨는 아들에게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정 떨어진다, 목소리도 듣기 싫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듣자 하니 통화는 파국이었고 나와 남편, 우리는 또 우리대로 파국이었다.


남편과 영희씨처럼 고성이 오고 가는 대화를 피하려면, 우아한 상대를 골라야 했다. 다음날, 나는 아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콩을 어떻게든 처리는 해야 하니까. 입으로든 냉동실로든. 그 생각이 들자 속절없이 머릿속이 바빠졌다. 일단 뭘로 해 먹든 씻기는 해얄텐데, 그마저도 버거워 보이는 양이다. 완두콩 요리가 있던가? 완두콩 수프? 이걸 다 씻고 말리고 냉동실에 넣어놓는다 한 들, 매 끼니 지겹도록 콩밥을 해 먹는다 쳐도 1년은 거뜬히 넘어갈 양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텐볼 중 제일 큰, 세트로 사놓고 여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사이즈의 볼을 꺼냈다. 온갖 밀폐용기에 나눠 담겨있던 완두콩을 일단 그 안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뭐로든 먹을래면 일단 씻어야 하니까. 가득 찬 볼을 싱크대로 들고 가보았지만 아뿔싸. 싱크대에 볼이 들어가지가 않는다. 어떻게 해보아도 싱크대에서 한 번에 씻을 수가 없었다. 싱크대에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의 양이었구나.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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