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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Oct 20. 2023

아버님, 제 말씀 들어보시겠어요?

우아한 대화 상대, 고성이 오고 가지 않으면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 영희씨의 남편, 아버님이었다.

나는 비단 택배뿐만 아니라 그간 묵고 묵어온 관계의 찌꺼기들을 이참에 모두 터놓으려 했다.


곧이곧대로 전언하는 남편 덕에 나는 영희씨와 남편의 통화 내용을 꽤나 자세히 듣게 되었다. 택배를 다시 돌려보내라, 다시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을 테다, 소리치는 영희씨. 아들에게 정 떨어진다, 싸가지 없다 외치는 영희씨. 아들의 아내, 며느리인 나 지인이가 왜 마음에 안 드는지 구구절절 읊어대는 말들.


남편은 택배에 대해, 우리의 의견을 수용해 줄 것을 말했지만 그 대답으로 돌아오는 말은 아들에 대한, 며느리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이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뿌옇던 시야가 선명해졌다. 설마, 싶으면서도 늘 아리송했던, 지난 8년간 마음에 품었던 질문. 영희씨는 내가 미워서 나에게 이러는 걸까. 그 대답을 영희씨의 입을 통해 들은 셈이다. 영희씨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나를 싫어했다.



아들에게 싸가지가 없다고 하는 그녀가 나에게는 무슨 막말을 퍼부을지 몰랐다. 내가 쌓아둔 말들을 전하기도 전에 자기 할 말만 쏟아내고 전화를 끊는다든가 할 게 뻔했다. 가뜩이나 이성과 합리, 존중을 겸비한 대화가 어려운 상대였으니, 이렇게 '꼭지가 돌아버린'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버님 쪽은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영희씨와 몇십 년을 동행해 온 남편으로서, 아버님이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문법으로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도 해보았다.


아버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두 번도 채 울리기 전에 연결되는 전화.


나는 아버님에게 영희씨와 남편의 어젯밤 통화 내용에 대해 알고 계신지 여쭈었다. 그는 머쓱해하며 영희씨로부터 대충 들었다 답했다. 어머님이 화가 나서 결국 전화를 끊어버렸다던데, 기분이 많이 상하셨나봐요, 를 시작으로 나는 어머님의 택배 싸는 노고와 정성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저도 알아요, 택배 싸는 일이 쉽지 않죠. 넣고 포장하고 부치고. 그래서 그간 그런 수고를 굳이 안 하셨으면 하기도 했어요. 저희 불편함을 차치하고 말이에요. 그러자 아버님의 목소리에 반짝 반가운 기색이 돋았다. 그는 그녀가 직접 하나하나 골라 담고 정성껏 꾸린 택배였음을 강조하며 그녀의 기분이 상할 만은 하다며 은근하게 그녀의 편을 들었다. 맞다, 우리가 그녀의 수고와 애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입장을, 꾸준히도 말해왔던 우리의 의견을 묵살한 것이 문제다.


이제 내 차례였다. 나는 택배에 관해, 먹을거리를 싸주는 것에 관해 영희씨에게 수없이 말해왔던 오랜 역사에 대해 그의 기억을 한 번 더 상기시켰다. 생활에 초래하는 불편함을 넘어서 이제는 우리 부부의 싸움거리가 되어버린 영희씨의 택배에 대해 그 참상을 말로 그렸다. 어째서 이토록 존중해주지 않는 걸까, 나에게 부러 그러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 정도예요. 천천히 그러나 오랫동안 그에게 말을 풀어냈다. 아버님은 어휴 어휴 아니다 아니다. 그건 아니야. 오해하지 마, 를 연발하셨다.


남아서 처치곤란인 음식들을 버릴 때의 죄책감과 번거로움, 그리고 원치 않는 택배를 원치 않는 양만큼 수령할 때의 막막함 같은 감정의 면면을 낱낱이 전했다. 아버님은 영희씨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아, 저는 누가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면서 아버님은 완두콩을 보내던 날 아침, 지인이 네가 전화를 받지 않아 보낼 양에 대해 전달받지 못했다, 그래서 원하는 양을 몰라 이만큼 보낸 것이다,라는 영희씨의 주장을 대신 전했다. 영희씨가 말한 대로라면 내가 영희씨의 전화를 '일부러' 안 받아서 이 사달이 난 것.


아니요, 아버님. 어제 아침 제 전화는 무음이었고 그래서 남편이 대신 받았잖아요. 어머님 아들이 분명 조금 달라고 했는데도 왜 제가 전화를 '안'받은 탓을 하시는 걸까요. 제가 전화를 못 받은 게 왜 여기서 비난받아야 하나요.


어제 남편에게 듣기로 영희씨는 내가 전화를 '일부러' 안 받았다며 며느리랑 전화 한 통 하기 힘들다고 화를 내셨단다. 전화 한 통 안 받았다고 나를 괘씸한 며느리 취급한 것, 나와 의사소통 하지 못해 엄청난 양의 완두콩을 보냈다는 그 어불성설. 역시 그녀에게 모든 잘못은 무조건 며느리다.


늘 고개만 주억거리는 며느리로 살다가, 차근차근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따져 들었다. 아버님은 그래 네 말이 맞다 맞어 하셨다. 이제 그만 귀를 여시고 제발 존중해달라 읍소해보았다. 이것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면서.



어제 영희씨는 아들에게 나에 대한 불만을 쏟아 냈다. 그걸 고스란히 전해 들은 나는 아버님께 입을 떼 보았다.


연락도 잘 안 한다, 자주 만나지도 못한다 뭐 이런 불만을 표하셨다던데 저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아요. 대체 일 년에 얼마나 자주 보기를 바라시는 걸까요.


시가, 처가가 지방인 주변의 사례만 대충 놓고 봐도, 만남 횟수가 결코 많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만남에 목메실 정도로 뜸한 것도 아님을 말씀드렸다.

 

두 분은 대체 얼마나 자주 저희와 만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이번에는 안부 전화에 대해 운을 뗐다. 영희씨가 안부 전화 하지 않는 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으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음을 말씀드렸다. 영희씨와 통화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기분 좋은 대화가 이어지고 그 경험이 누적되었다면 그녀가 나에게 전화하지 말라 손사래를 쳐도 전화했을 일이다. 결혼 후 그녀와 전화를 할 때면 늘 예상치 못한 질문과 비난에 대처해야 했다. 나로서는 난감하고 미칠 노릇이다. 시시때때로 '마가 뜨는' 그 안부 전화를 왜 바라시는지. 안부 전화는 자식에게 바라셔라, 저는 남편을 통해 두 분 안부를 잘 전해 듣고 있다, 를 맺음말로 하며 안부 전화에 대한 내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자 아버님은 난색을 표했다. 듣고 보니 네 말이 다 맞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2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전화 해주면 어떻겠냐고 하신다. 내 한숨 소리가 짙어질 때마다 그 기간은 더 늘어난다. 횟수까지 정해가며 주기적으로 의무감에 안부 전화 하고 싶지 않다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두 분 안부는 남편을 통해 들을게요, 했다.  


나는 아버님에게 반문했다. 당신의 아드님이 처가에 연락과 방문이 뜸한 것은 알고 계시는지, 그래도 그 아드님은 장인 장모로부터 한 번도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음을. 염두 밖의 말이었던 탓인지 그는 어허, 하는 난처함이 묻어나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내 쪽에서 이것이 꽤나 불공정하게 느껴짐을 날 것 그대로 전했다. 본인 아드님이 처가에 그렇게 하는 것은 오케이고, 며느리는 안 된다? '시'자 붙은 특권 의식 아니신가요. 저는 이런 부당한 요구와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아요.


이 기회에 다 말씀드리고 싶었다. 웃어른에게 하고픈 말 다 하다니 참 되바라졌다. 그런데 웃어른이 어른답지 않게 구는 데다 아랫것인 나도 8년쯤 참았으니 이제는 말해도 된다고, 혼자 그렇게 결론지었다.


아버님, 저는 지금까지 어머님으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어요. 옆에서 보셔서 아시잖아요. 툭하면 지적질에 불만만 쏟아내시는데 제가 성불도 아니고 어떻게 그 비위를 다 맞춰드리나요. 저도 바보가 아니잖아요,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온몸으로 느껴져요. 그간 어머님 막말로 상처받은 게 쌓이고 쌓였어요.


아버님은 내게 넌지시 영희씨가 그러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싶어 했다.


왜, 그 여자들끼리 모이면 누구네 며느리가 어떻게 했다더라, 저쨌다더라 얘기들을 주고받다 보니 지인이 너네 시어머니가 아이고 우리 지인이도 좀 그랬으면 좋겠네 싶었나 보더라고.


그는 영희씨가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들어온 어떤 '며느리상'을 원한다는 것을 슬며시 나에게 떠보는 것이었다. 그 '며느리상'이라 함은 싹싹해서 시부모 비위를 입안의 혀처럼 잘 맞추고 연락도 자주 하고 만남도 자주 갖는, 시가와 정서적 물리적 교류가 많-은 며느리.


거 나는 남자라 잘 모르겠다만, 여자들끼리 모였을 때 누구네 며느리가 어떻고 저떻고를 들으니 너희 시어머니가 지인이도 그랬으면 좋겠고, 가까이 지내면서 딸같이 싹싹하게 해 주면 좋겠고,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나 보더라.


아버님이 '딸 같은 며느리'라는 나의 발작버튼을 눌렀다. 그것은 내가 혐오하는 명사구.


나는 마지막 남은 말들을 모두 쏟아냈다. '딸 같은 며느리'의 허상, 실현 불가능함에 대해. 그리고 심지어 영희씨에게는 현존하는 '진짜' 딸이 있음을, 본인의 딸과 엄마-딸 사이로 지내야 하지 않겠어요? 저는 남의 딸이잖아요, 하는 내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아버님에게 여쭈었다. 과연 영희씨는 딸 같은 며느리를 바라면서 나를 딸 대접 해주신 적 있는 지를. 저쪽에서는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그래, 그렇지만, 을 되풀이했다. 아버님은 솔직하고 투명하다. 그가 보기에도 그랬을 테다. 그 틈에 나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저를 딸로 둔 저희 엄마는 저한테 이렇게 안 하셔요, 어머님 본인이 저를 대하신 모습은 생각 못하시고 저한테 일방적으로 딸처럼 굴라고 하지 않으셨음 해요. 저는 어머님 딸이 아니에요.


8년 간 참아왔던 울화통을 터뜨리고 나니 꽤나 상쾌했다. 존재로서 기능하는 경험이었다. 말하라고 뚫린 내 입으로 나를 돕는 말하기를 하는 나. 며느리로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 지인이로 기능하는 나. 그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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