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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Oct 21. 2023

어머님을 차단합니다.

이 관계도 영원히 차단될까요

일련의 사건이 있고 나서도 내 생일에 영희씨와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주고받았고, 아버님과는 더더욱이 별일 없는 듯 지냈다. 그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그들을 대면하게 된 날, 나는 사랑과 전쟁에서나 볼 법한 일을 겪게 된다. 사실 그날 겪은 일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복기하며 쓴 글 한 편이 있는데 저장만 해두고 있었다. 나 자신이 구차하고 서글퍼서다. 내가 이런 부당한 일을 당했어요, 저 완전 피해자잖아요, 하는 것 같아서.


영희씨는 우리가 방문한 그날, 마침 증조부의 제삿날이라 들렀던 남편의 작은어머님께 해서는 안될 말을 했고 남편은 다음날 이를 두고 영희씨에게 쓴소리를 했다. 어머니, 누구에게든 말씀 그렇게 함부로 하시면 안 돼요, 내가 틀린 말 했냐, 를 시작으로 모자의 언성이 높아져 갔다. 마침 아버님은 손주 추피와 외출 중이었다. 그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희생양은 결국 내가 됐다.



영희씨는 자신의 부적절했던 언행에 대한 아들의 지적을 기어코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급기야 아들에게 '지인이와 살고부터 이상해졌다.' '결혼하고부터 너 이상해졌어.' 소리를 지르셨다. 모자간의 싸움통에서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하릴없이 핸드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던 내가 그녀에게는 안 보였던 걸까. 나는 그곳에 내가 있다는 것을, 그 자명한 사실을 그녀가 까맣게 잊은 줄로 느껴졌다. 어떻게 사람을 앞에 두고 그따위 말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아무런 관련 없는 둘 사이의 말다툼이 아니었나. 나는 현실감각이 없어지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남편은 고성을 내질렀다. 이것 봐요, 말씀 조심하시라 그만큼 말해도 절대 듣지를 않으시네요, 어머니 마음대로 평생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사세요. 맘대로 사시라구요.


나는 자세를 고쳐 앉고 어머님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쪽으로 몸을 획 돌리더니 나에게 화가 잔뜩 묻은 목소리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에게 불만이 없는 줄 아느냐, 넘치는 불만 말 안 하고 참고 산다, 그녀의 날 선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니요, 어머님은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다 말씀하시잖아요. 나는 힘겹게 입을 뗐다. 그리고 방금 전에 하신 말씀,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저랑 살아서 아들이 이상해졌다고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영희씨는 내게 2년 전 일을 들추며 아득바득 따져 들었다.



2년 전, 아들 추피를 보여주려 영희씨 내외와 영상통화를 할 때면 나는 추레한 내 얼굴을 비추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화면에 내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영희씨는 '추피야, 엄마 얼굴에 똥 묻었어? 엄마는 왜 얼굴을 안 보여줘?'를 외치곤 했다. 통화를 할 때마다 아이 앞에서 그런 소리를 듣자니 모욕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남편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으나, 그 역시 이렇다 할 대처에 나서지는 않았다. 괜한 갈등 만들고 싶지 않았으리라. 이번에도 지인이만 참으면 끝날 일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또 그런 소리를 들으며 통화를 마무리하고 나서는 참다못해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었다. "어머님, 추피도 듣는데 저한테 얼굴에 똥 묻었냐는 그런 말씀은 앞으로 삼가 주시면 좋겠어요.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행여 아랫것이 화난 것처럼 보이려나 싶어 이모티콘을 듬뿍 버무린 두 문장. 그녀로부터 읽씹을 당했던 그 카톡을, 지금 그녀는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때 하지 못한 답장을 이제라도 하는 걸까. 2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길길이 화를 내고 있었다.


세 살배기 애가 알아들으면 뭘 알아듣는다고, 얼굴 보려고 한 번 그렇게 말한 걸 가지고 시어머니한테 그런 말을 하고 말이야! 내가 그날 밤에 화가 나서 잠을 한숨도 못 잤어. 지인이 너네 엄마, 사부인한테 전화를 하려다 말았어 내가!


아, 어머님. 그때 추피는 다섯 살이었고요, 어머님이 어쩌다 한 번 그렇게 말씀하신 걸로 제가 걸고넘어진 게 아니잖아요. 그 무렵 저희랑 전화할 때마다 그러셨다구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한 번 그랬어! 한 번!


그녀는 추피가 그런 말 따위 알아듣지도 못할 세 살이었고, 자신은 단 한 번 그렇게 말했을 뿐이라 주장했다. 둘 다 틀렸지만,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말이다. 한 번 말했다 한들 그게 해도 되는 말은 아닌데. 시어머니가 해대는 그 정도 말쯤은 '한 번' 정도 들어도 무탈할 것이라는, 이 관계성에 대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들.


사부인 들먹거리는 영희씨를 보고 있자니, 엄마가 생각나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에게 딸 간수 잘하라는 말이라도 하려고 했던 걸까. 엄마는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뭐라고 할까. 눈물은 터져 나오고 영희씨는 계속 중얼중얼, 말들을 쏟아냈지만 내 귀에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막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님과 추피는 이 광경을 보고 얼이 빠졌다. 아버님은 일순간에 상황 파악이라도 하신 것인지, 영희씨를 향해 손을 훠이 훠이 휘저으면서 애 보는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 당장 그만 해를 외쳤다. 동시에 나와 남편, 추피를 현관으로 끌며 어여 나가자, 하셨다.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는데 아버님께 말씀은 드려야겠다 싶은 마음에 아버님, 이라고 부르는 그 순간. 어머님은 소파에 삐딱하게 걸터앉은 채로 나를 독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외쳤다.


아버님은 무슨! 아버님이 네 구세주냐!



황급히 짐을 싸고 집 밖으로 대피하듯 나온 나와 남편, 추피, 그리고 내 어깨를 잡고 하염없이 미안하다 하시는 아버님. 나는 끝없이 울음이 터져 나와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울음 반 목소리 반 섞인 소리를 내며 아버님께 말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요, 아들과 싸우다 저에게 이러시는 게 맞나요, 할 말이 넘쳐났지만 울음 탓에 그 소리는 끊기고 끊겼다.


아버님은 영희씨를 견디며 같이 살고 있는 자신을 봐서라도 이해해달라 내 손을 부여잡고 애원하셨다. 나는 울음 탓에 대답을 할 수가 없어 고개만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는 이제 그만할래요. 더는 못해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차에 올라탔다. 실컷 울고 난 그날 밤, 나는 어머님의 연락처와 카카오톡 계정 모두를 차단했다.


추피는 나에게 할머니가 왜 엄마한테 소리를 질렀는지, 다른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며 물어왔다. 나는 그래, 누구도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해서는 안돼. 그거 할머니가 잘못한 거야, 답했다.



남편은 나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회색 빛 얼굴로 몇 날 며칠을 사과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의 원인과 책임을 자신과 아버지, 누나에게 돌렸다. 영희씨가 저렇게 나이 들도록 방관 한 가족 책임이라며. 그 피해를 오롯이 내가 보게 한 것도 미안하다 했다. 미안함을 대주제로 한 그의 맥아리 없는 목소리가 며칠간 이어졌다. 나는 남편에게 앞으로 내가 영희씨를 만날 일은 절대 없을거야,를 나직하게 말했다. 그는 내 결정을 존중한다 했다.


어머님 영희씨에 관해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일전에 한 적 있는 자신의 옛이야기를 다시금 꺼냈다. 10대의 중학생 남편이 어머니의 언행을 견디기 힘들어 고등학교만은 기숙사가 있는 자사고로 입학하고자 했던 일. 학업에 매진했고, 결국 어머니를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또 한 가지는 10대 이전의 초등학생 남편이 들었던 잊지 못할 막말 -당시 남편의 친구였던 잘난 아이와 비교하며 ‘너는 걔 똥이나 빨아먹어라!’라고 말하셨단다-


연애 시절 흘려 들었던 이 이야기를, 우스갯소리처럼 소비했던 이야기를 지금 이토록 너덜너덜 해진 마음으로 다시 듣고 있자니 그때 진작 도망쳐야 했었나 싶은 후회 짙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차라리 내 남편 역시 여느 막장 결혼스토리에 나오는 남편 정도의 언행을 해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끝없이 변호하고, 와이프에게 이해를 요구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그런 남편이었더라면 나는 칼같이 깔끔하게 내 남은 인생을 위한 선택을 했을 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남편은 그렇지 않았고, 내 선택을 존중한단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영희씨의 말로 상처 입어 왔다고 자조적으로 지난날을 돌아본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던 어떤 날에는, 그에게 더 이상 영희씨가 얽히고설킨 이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내 정신건강, 나아가 내 삶의 행복을 위해서. 남편은 '그런 사람' 때문에 자신과 내가 불행해지는 잘못된 선택을 해서는 안됨을, 나에게 설득시키고는 했다.


나처럼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정신력 약해빠진 사람에게는,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채 이렇게 지내는 것 또한 마음의 짐이다. 그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직장에서도 불쑥불쑥 내가 그녀로부터 들은 말들이 떠올랐고, 수치심이 시시때때로 느껴졌다. 컴퓨터 화면을 보다가도 툭하면 눈물이 차올랐고, 눈물을 애써 다시 들여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코가 훌쩍여지는 식이었다. 순탄하던 내 인생이 결혼 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조져졌다는 그 패배감에 한동안 허우적 댔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던 정신의학과로 전화를 걸었다. 가장 빠른 진료는 2주 뒤라는 대답을 받았다. 예약을 받던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일로 내원을 원하게 되었는지 묻는다. 이 장황한 이야기를 다 말해야 하나 아득해지며 꼭 다 말해야 하나요, 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는 우울, 불안, 공황 등 어떤 사유인지를 답해달라 한다. 아 그거라면, 아마도 우울감인 것 같아요. 나는 그렇게 예약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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