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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익허브 May 07. 2024

당신의 휴대폰을 만들다가 생긴 일

미션61. 외주화된 위험, 원청이 나서라

공익허브는 매주 월요일 '미션 100'을 연재합니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제도적 변화 100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의 10대 시절, 스무 살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으셨나요?

2003년생 수현(가명)씨는 스무 살이 되던 지난 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았어요. “바라고 바라던 스무 살이 되면서 친구들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한창 놀러 다닐 때인데 왜 내게 이런 병이 생겼을까?” 수현씨는 어머니께 이런 말을 했어요.


작년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수현씨의 모습. 사진: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갤럭시폰 조립하던 20살 노동자, 급성 백혈병 진단


수현씨는 고등학교 졸업 전부터 삼성전자 협력업체에서 현장실습생으로 휴대폰 조립 일을 했고, 졸업 후에는 ‘학습 근로자’로 일과 대학생활을 병행해왔습니다. 수현씨의 업무는 납땜되어 넘어온 갤럭시 S21, S23, Z플립 등의 휴대폰 기판 위에 플라스틱 부품을 하루 2,000개씩 수작업으로 조립하는 일이었어요.


평소 건강에 이상이 없었지만 일한 지 2년 만에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수현씨의 가족은 산업재해를 주장하고 있어요. 수현씨를 대리해 산재를 신청한 ‘반올림’측은 휴대전화 뒷면을 부착하는 공정 중에 수현씨가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해요. 방수폰인 갤럭시 S21~23는 접착제와 접착테이프를 발라 뒷면을 압착하는데요, 고온에서 접착제 성분 등이 녹아 휘발성 유기화합물 및 벤젠,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백혈병을 유발하는 발암성 성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작업장이 배기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공기 질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정 중에 매번 기름냄새와 과일향이 났다고 해요.



원청인 삼성전자의 입장은?


삼성전자는 ‘매년 전문기관이 해당 협력사의 작업환경을 조사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어요. 그러면서 수현씨가 근무한 조립공정이 작업환경 측정 대상 물질(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작업환경 측정 대상으로 정해진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는 공정에서도 업무상 질병이 인정된 판례가 다수입니다. 2014년 삼성전자 반도체 조립라인에서 일했던 유아무개씨는 재생 불량성 빈혈을 진단받았는데요, 유씨도 유기용제나 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는 공정에서 일했어요. 당시 법원은 ‘저농도 일지라도 벤젠 등의 화학물질이 검출됐을 뿐 아니라, 측정하지 않은 여러 유해 화학물질이 실제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유해물질의 검출량이 작업환경 노출 허용기준 미만이라 할지라도 저농도로 장기간 노출될 경우 건강상 장애를 초래할 개연성이 있다’며 유씨의 질병이 산업재해임을 인정했어요.


고용노동부 고시.



하청 노동자의 안전은 누가 보장하나

‘휴대폰 노동자 6人 실명 사건’도 하청에서


삼성전자의 휴대폰이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지 오래됐고 우리도 자국의 브랜드를 자랑스러워 하는데요, 그 휴대폰을 만들다가 치명적인 건강 피해를 입는 노동자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특히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2016년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폰 부품 가공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20~30대 청년 6명이 시력을 잃는 사건이 있었어요. 실명의 원인은 메탄올 노출이었죠. 메탄올은 사람의 시신경과 중추신경계를 망가뜨릴 수 있는 물질이에요. 피해 노동자들이 맡았던 업무는 증기 휘발성이 높은 공정이라, 메탄올과 같은 성질을 지니면서도 인체에 유해성이 덜한 에탄올을 사용해야 하지만 해당 공장은 메탄올을 사용했어요. 메탄올이 에탄올에 비해 가격이 싸거든요.


파견업체를 통해 휴대폰 부품 공장에서 일하게 된 노동자들은 일할 시간과 급여 외의 다른 조건에 대한 정보는 받지 못했어요. 어떤 위험물질을 다루는 지, 얼마나 위험한 지에 대해 안내받지 못했기 때문에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원인을 찾지 못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메탄올 노출 피해 노동자의 인터뷰. 출처: 이근탁 외. 2017. [왜 21세기 한국 사업장에서 메탄올 중독 실명 사고가 발생했을까?]


위험한 공정이나 업무가 갈수록 외주화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하청 노동자들은 점점 더 보호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어요메탄올 중독 실명사고를 연구한 한 논문에서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실명사고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해요청 생산 구조를 만든 원청 대기업에도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원청은 휴대폰 모델이나 부품의 새로운 사양을 제시하면서 협력업체의 공정에 유해인자를 도입하는 주체가 되잖아요노동자들이 치명적인 건강 피해를 입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원청의 노력이 필수적일 겁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11주기에 진행된 ‘삼성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행진 당시 모습. 사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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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근탁 외. 2017. [왜 21세기 한국 사업장에서 메탄올 중독 실명 사고가 발생했을까?]. 한국산업보건학회지.
한겨레. 24-04-17. [삼성 협력업체 21세 노동자, 백혈병 걸려... "해고에 학업 중단까지"].  
경향신문. 24-04-17. [삼성 협력업체 21살 노동자, 백혈병 걸려…“삼성도 책임져야”].
매일노동뉴스. 24-04-19. [(업무상 질병 가능성 제기에) “노출 기준 초과 없어” 삼성의 동문서답]
경향신문. 16-10-28. [“그냥 알코올”이라더니 그건 독성 메탄올이었다].
경향신문. 17-06-11. ["우리는 일회용 컵처럼 버려졌다"...삼성전자 '메탄올 실명' 피해자의 유엔 연설].
오마이뉴스. 17-11-29. [삼성 하청업체 메탄올 실명 노동자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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