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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 LEE Mar 31. 2021

'와이 우먼 킬' 왜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와이 우먼 킬'은 작가의 전작인 '위기의 주부들'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최근 들어 더욱 여성 주연 작품들을 더욱 찾아보고 있긴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작가가 좋아서-찾아본 작품이다. 거기다 주연 배우는 루시 리우라서, 유명한 줄은 알았지만 내가 그 배우의 작품을 본 게 없어서 한 번은 꼭 봐야할 것 같았다. 


처음 볼 때는 '위기의 주부들'처럼 막장 스토리를 기대하면서 봤다. 제목도 '와이 우먼 킬'이니 죽음의 연속! 충격의 연속! 이런 걸 기대했더랬다. 워낙 기대치가 높아서 내 생각보다는 덜했지만, 마크 체리 작가의 흡입력이 굉장하다. 그냥 첫화부터 다음 회차가 다가오는 줄 모르고 빠져서 봤던 것 같다.


그때는 누가 어떻게 죽는지, 3명의 복잡한 스토리에 빠져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대로 그냥 봤다. 그리고 아무래도 주인공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봤던 것 같다. 시간이 꽤 지나고, 재미있게 봤던 작품인데 한 번만 보기는 아깝다는 생각으로 다시 봤는데 그때는 주인공 외 주변 인물들에게도 눈길이 갔다. 특히 테일러 에피소드에 나오는 제이드에게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이 장면을 볼 때만 해도 몰랐다, 제이드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일 줄은. 아마 제이드는 대본 속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넌지시 했던 거다.


어쨌든 테일러 에피소드에서 최종 보스급이었던 제이드였다. 처음에는 그냥 악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와이 우먼 킬'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아침을 차려주고, 소중한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하다가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계략을 세우고,  결국 배신하게 되는 모습까지 가장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제이드의 말대로 모든 상황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흘러갔다면 또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또 다른 전개를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특히 제이드를 보면서 '와이 우먼 킬'의 남다른 의미를 깨닫는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도 여성, 유부남과 바람 났거나 살인을 하거나 조력자로 등장하거나 친구가 되거나 모두 입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로 제이드를 꼽았다면, 배스 앤의 에피소드는 세 명의 이야기 중 가장 드라마틱하다. 불륜에 복수하기 위해 친구로 접근한 것부터 그의 방식대로 남편을 처벌하는 것까지 배스 앤의 '찐 광기'가 느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더욱 배스 앤의 에피소드를 최애로 꼽는 것 같기도 하다. 배스 앤의 에피소드에는 복수심도 있지만 모성애, 우정, 의리 그리고 광기가 있다. 처음에는 작가의 전작 '위기의 주부들'에서 브리 반 드 캠프가 떠올랐다. 완벽한 모습만 보이고자 하는 브리의 모습이나 그런 '완벽'에 집착하게 되면서 보여지는 광기가 꼭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몇 번을 보게 되니까 나중에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지만. 


각 주인공이 1960년대, 1980년대, 2010년대를 살면서 그 시대의 다른 옷차림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1960년대의 쨍한 색감들이 너무 좋았다. 에이프릴의 핑크색 립이나 배스 앤의 샛파란 구두 같은 것들. 보는 재미가 있어서 더욱 애착이 갔던 배스 앤의 에피소드였다.



시몬도 굉장히 화려한 인물이지만, 그나마 셋 중에 가장 잔잔한 에피소드인 것 같다. 저 남편이 동성애자로 커밍아웃 하면서 '나는 한평생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숨기면서 살아왔어'라고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는데.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다 표현하며 살고 있는지 숨기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했던 장면이었다.


역시나 처음에 볼 때는 자신의 평판을 무너트린 남편에게 시몬이 복수하지 않을까, 죽여버리지 않을까 했는데 시몬의 절친한 동반자가 돼서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시몬에게는 처음으로 사랑해서 결혼했던 남편이기도 하고 시몬이 남편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그렇게 행복했다면, 복수보다는 인생의 동반자로 삼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특히 저 남편 역으로 나오는 배우의 목소리나 영국식 억양이 너무 중후하고 듣기 좋았다. 딸 에밀리의 상견례 자리에서도 한번 언급되는데 캐릭터의 능청스러운 말투나 배우의 중저음 목소리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아무튼 '와이 우먼 킬'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의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신랄한 마크 체리표 블랙 코미디가 더해져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봤다. 각 세대별 옷차림이나 인테리어, 소품 등 디테일한 차이도 놓치지 않아서 구경하는 볼거리도 꽉 잡은 작품이었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세 명의 주인공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50여 분의 한 에피소드가 짧게 느껴지는데 화면이 전환되는 연출도 매우 자연스러워서 더 그랬다.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로 넘어갈 때마다 유사한 미장센을 사용한다던가, 포인트가 되는 아이템을 활용해서 물 흐르듯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던 게 인상적이었다.


'와이 우먼 킬', 여자들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묻는다면 제이드의 말처럼 "아무리 착한 애들이라도 필요에 따라서는 수시로 법을 어긴다"고 답해줄 수밖에.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고 감상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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