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노세키에서 후쿠오카까지 100km 걸어가 보기
0일차 : 부산 출발
최근 일본 여행을 꽤나 자주 가다 보니 느끼는 감정이 있다.
"가서 할 게 없다."
배부르다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도시는 2회 차가 된 순간부터 스카이트리, 오사카 성과 같은 관광지는 의미가 없어지고, 저런 배부른 생각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또 누군가는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왜 가는 거야?"
내 소개를 하자면 31살의 어느 곳에서나 볼법한 직장인이다.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회사 생활에 피로를 느끼고 있어 회사에서 잠시 도망칠 구멍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연차라는 수단이 있다.
고로 나는 회사에서 잠시 도망치기 위해서 연차를 사용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연차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물론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꽤나 아깝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 해외여행을 가자.
그렇다면 어디로 여행을 갈까. 나도 20대까지만 해도 여느 젊은이들처럼 여러 나라에 발도장을 찍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성향은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타국을 찾은 나는 우리와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에 휴양보다는 피곤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타국을 방문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두근거림도 여전히 나한테 존재했다. 참으로 피곤한 인간인 내가 결국 찾은 해답은 바로 일본이었다.
일단 가깝다. 시간이 적게 든다. 비행기를 짧게 탄다. 비행기편도 많다. 음식도 잘 맞는다. 많이 갔다.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익숙해져서 편하지만 그렇다고 타국을 방문했을 때 그 두근거림도 여전히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간다.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일본에 가서 무엇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던 중 저번 후쿠오카에 갔을 때 후쿠오카에서 아주 즉흥적으로 시행했던 일이 하나 있었다.
2회 차의 다자이후. 원래 관광지는 2회 차는 웬만해서는 시행하지 않는 편이지만, 저번 1회 차 때 버스 타고 그냥 흐지부지 지나다 보니 다시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냥 기차를 타고 가면 재미가 없으니 그래서 걸어가 보자.라는 결론이 내렸다.
그래서 그 걷기의 결론은 중간의 휴대폰도 이상해지고, 비도 내려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도 결국 돌이켜보니 꽤나 즐거웠었다.
나의 취향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아예 도보여행을 테마로 일본을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도보여행의 경로를 이번에는 시모노세키에서 후쿠오카까지 걸어가 보자라고 결론이 났다.
일단 이 경로를 선택한 이유는
첫 번째로는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가 있고 후쿠오카에서도 돌아오는 비행기가 있어서였다. 여느 한쪽으로만 간다면 처음에 출발지로 이동해야 하거나, 도착 후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왠지 그건 내키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중간 경로에 가보고 싶은 도시가 끼어들었다. 원래라면 그 도시들로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도시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아서 애매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도보 여행의 경로에 있다면 끼어넣기 좋다고 여겼다.
상기 2가지의 이유를 대표로 삼아서 나는 시모노세키에서 후쿠오카를 여행 경로로 삼았다. 그리고 평소 여행 스타일은 여행 계획은 짜지 않고 비행기표와 호텔 정도만 예약해서 훌쩍 떠나는 스타일을 그대로 삼아서 이번에도 교통편과 호텔 정도만 잡아서 그 이외에는 무계획으로 떠났다. 바뀐 점이 있다면 원래라면 일정 내내 같은 호텔에서 계속 묵었었지만 이번에는 도보 여행이기 때문에 매일 다른 호텔을 예약했다는 것뿐.
그 밖에 평소에 전혀 운동하지 않는데 계획 상 100KM 정도를 걸어야 되는데 운동을 좀 해야 되지 않을까. 비상용품 같은 것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원래대로 가기로 했다.
여행이란 건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
첫째 날.
내가 일본으로 가는 수단으로 선택한 건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 가는 부관훼리였다. 전날 밤에 부산에서 출발해서 아침에 시모노세키에 도착하는 배편인데 아침 일찍부터 일정을 시작할 수 있어서 상당히 경제적으로 느껴졌다.
거기에 경제적 한 스푼을 더 담아서, 회사에서 오전까지 근무까지 하고 오후 반차를 사용해 살던 곳에서 부산까지 왔다. 해외여행은 많이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그렇게 돌아다니지 않기에 부산에 온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김해공항은 자주 가지만 거기는 부산이 아니니까.
부산의 이미지 중 하나는 언덕이 많다는 느낌이다. 언덕 위에 층층이 쌓아 올려진 건물들을 보면서 내가 부산에 왔구나라고 느꼈다.
그래도 부산까지 왔으니 부산의 명물 하나 먹어보자 했다. 배 시간이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시간이라서 부산역 앞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내 머릿속의 리스트는 국밥과 밀면이었는데 내 사는 곳에서도 평소에 국밥은 자주 먹는 편이기도 하니 밀면을 먹기로 했다. 먹은 밀면은 그냥 평범한 느낌이었다.
밥을 먹은 후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내가 구매한 여객사의 현수막을 찾아서 표를 받고, 혹시 모를 멀미를 대비해서 멀미약까지 구매했다. 그리고 출국 수속을 마치고는, 비행기의 출국하는 장소에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한 장소에서 대기를 하다가 배를 탑승했다.
배를 탑승하고 내가 잠을 잔 침대까지 간 후에 내가 느낀 점은 너무 개방된 장소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돈이 있으면 개인실을 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도 탑승 전에는 이 정도로 개방된 느낌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 안쪽으로 들어가서 내 침대까지 가면 아직 한국에 정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통신이 터지지 않았다. 아마 다시 탈 일이 있다면 그때는 개인실을 예약하지 않을까.
성격이 그렇게 예민한 건 아니지만, 잠을 잘 때에는 예민한 편이라 무언가 특효약이 필요하다 싶어서 알코올의 힘을 좀 빌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배에는 맥주와 안주 자판기가 있었고, 나는 배 중앙의 홀의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고 안주를 까먹으며 휴대폰을 보았다. 맥주를 3캔 정도 까고, 안주도 모자라서 탑승 후 조금 늦게 연 배 내부의 면세점에서 제법 커다란 일본 봉지 과자를 하나 깐 후에야 그제야 이제 적절히 취할 정도의 취기에 올랐다. 그렇게 취기와 함께해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렇게 배를 탑승하고 일본에 간 첫 번째 후기는 아마 웬만해선 다시 이용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너무 개방된 느낌이라던가 이런 건 개인실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완 가능하겠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가장 큰 단점은 의외로 시간이 너무 많이 낭비가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5시 ~ 6시까지는 터미널로 가서 다음 날 아침에 시모노세키에 떨어지는 사양이다. 물론 다음 날 아침부터 바로 여행할 수 있다는 점과 노는 시간인 잠자는 시간을 이동 시간으로 삼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이 너무나 낭비로 느껴졌다.
그래도 배를 타고 일본에 간다는 건 한 번쯤은 경험해 볼 만한 일이라고 한다. 일단 배 값이 말도 안 되게 싸고, 다음 날 아침부터 활동할 수 있다는 메리트는 지금 생각해 봐도 좋은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예약 당시의 궁금점이었는데 배표를 예약할 때 왕복과 편도의 가격이 똑같다. 내 기억이 잘못됐나 싶어서 글을 쓰면서 확인해 보니 편도가 더욱 비싸다. 편도만 이용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가격이 저렴해서 그냥 넘어갔었는데 어떤 시스템이 있어야 이렇게 가격이 설정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