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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자버 May 11. 2024

자매는 천등을 날리지 않았다

더 큰 가정의 달을 꿈꾸며

언니 생일 선물로 타이베이행 티켓을 끊어줬다. 물론 내 몫까지 포함해서 흔쾌히. 어느새 둘 다 어엿한 삼십 대. 전에 비해 일에 치이고 돈에 쩌들어 좀처럼 텐션 날뛸 일 없는 나이. 그럴수록 같이 여행이라는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다. 웬만하면 해외로. 그러니까 말하자면 좀 멀리. 평상시와 같지 않고 싶었으니까. 언니는 몇 해 전 일 때문에 두어 번 갔었던 타이베이에 이젠 맘 놓고 놀러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나로선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타이베이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대만의 음식들은 짜고 달고 푹 삭아있었다. 언니 입맛에 딱 맞다는 뜻이다. 어떻게 타이베이에 두 번이나 와봤던 사람이 야시장 한 번을 안 가봤을까. 언니는 야시장 초입에서부터 떠억 하고 입이 벌어져서는 저 중에 뭘 먹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만 가득해 보였다. 현지인 가득한 좌판 테이블에 끼어 앉아 간장 된장 뭔지 모를 장맛으로 꼬소짭잘한 면을 후루룩후루룩 맛봤다. 언니랑 나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뱉었다. 


"이거 완전 원교 씨가 좋아했겠네." 


면 요리만 그랬을까. 저렴해서 부담 없는 물가를 좋아했을 것이다. 어두운 밤을 화려하게 밝히는 구경거리를 좋아했을 것이다. 시끌벅적 사람 사는 것 같은 소음으로 가득한 시내를 좋아했을 것이다. 푹푹 찌다가 밀당하듯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래,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분명 타이베이를 좋아했을 것이다. 자매는 동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 좋아했을 것이라는 가정의 문법은 참 슬픈 것이었다. 괜히 대만의 음식들이 이 씁쓸함의 누명을 쓰지 않게 우리는 맛있는 것들을 꼭꼭 씹어 먹었다. 한번 내뱉은 괜한 생각들은 굳이 꺼내지 않고 꿀꺽 삼키기로 했다.


타이베이 근교에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가보고 싶은 도시가 하나 있었다. 알록달록한 천등에 소원을 적어 하늘에 날려 보내는 것으로 유명한 스펀이란 곳이었다. 하늘 가까이 띄워 보내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소원이랄까, 하늘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 건네고픈 한마디 말이랄까. 천등이 화려해질수록 요금도 더 비싸지는 전형적인 외국인들 종잣돈 빼먹는 관광 상품 같으면서도, 이것도 기념인데 언니랑 한 번 천등을 날려보고 싶긴 했다.


그렇게 기차까지 갈아타며 도착한 스펀. 아직 기차 플랫폼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 둥둥 떠있는 작은 점 같은 천등들이 보였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천등을 영업하는 상인들이 달라붙는 탓에 언니랑 나는 괜히 방향을 틀어 강가로 나있는 흔들 다리부터 가보기로 했다. 한차례 천등을 날린 다음 땅콩 아이스크림과 같은 간식거리를 사들고 찾아가는 코스인 것 같았다. 굉장히 옛 되어 보이는 다리를 천천히 걸으며 언니와 나는 강을 가로질러 반대편 마을터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그제야 보였다. 두둥실 떠올라 상승하는 줄만 알았던 천등이 실은 검은 연기 꼬리를 달고 서서히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불을 피워 떠오른 자리에서 바람을 타고 강의 반대편까지 겨우 날아왔다가 얼마 못 가 그렇게들 추락하는 듯했다. 멀리서 보니 기차 플랫폼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정도의 거리밖에 못 나는 셈이란 게 한눈에 들어왔다. 끝지점으로 보이는 강바닥에는 찢어지고 물에 젖어 흐물흐물한 천등들이 물길 따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천등은 굳이 날리지 말자."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던 언니가 말했다. 당연한 결정이었다. 마음이 조금 내려앉았다. 천등에 실망한 게 아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다. 아빠에게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서다. 살아있을 적 대만을 가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대만에 대해서 알 도리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갈기갈기 찢긴 채 강 바위에 걸려 풀어헤쳐지고 있는 천등 마냥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렸다. "그래 뭐 하러 날려." 물론 나도 천등 같은 걸 날릴 마음이 전혀 아니었다. 돌아가는 길에 여전히 기찻길에 삼삼오오 모여 천등을 날리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무리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내 시선이 느껴져 민망했다.


그렇게 언니와 대만에서 5월의 시작을 맞이했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했지만 얄궂게도 가정의 달이다. 돈 들여 시간 들여 언니와 대만에 오길 잘했다. 우리 서로 곁에 있을 때 결에 있어주자. 하늘에 대고 안부 같은 거 묻는 일은 만들지 말자. 일에 푹푹 절어도, 세상사에 찢어발겨져 추락하는 날이 있어도 곁을 지켜주자. 타이베이에서 맡은 향과 닿은 공기는 살면서 처음 맞아보는 것들이었고, 지난한 일상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생에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소원을 빌지 말자. 소원을 이루자.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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