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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슭님 Feb 17. 2023

당신의 잊을 수 없는 공간들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읽고

ⓒChangbi Publishers

  

  2014년 스무 살, ‘팽목항 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재학 중이던 대학에서 연결해 준 계기도 있었지만, 국민적 참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현장은 조금 쓸쓸했다. 그때는 이미 사고로부터 2개월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는데, 진도 체육관을 비롯한 주변은 정리를 시작해 휑한 상태였고 바닷가 캠프만이 여전했다. 도착한 날 저녁, 우리 그룹은 국화 한 송이 씩 총 13명의 실종자들에게 헌화를 했다. 세상은 깜깜했고 바다는 시커멨으며, 언제든 우리를 삼킬 것처럼 포식자와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손에 들렸던 꽃을 바다로 보내며, 내게 주어진 ‘너’의 이름을 기억하겠다고, 차가웠던 밤공기를 잊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의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2장에서는 다양한 장소들이 언급되어 하나의 지도를 이룬다. 누군가에게는 진도 팽목항, 누구에겐 안산, 단원고, 광화문, 또 같이 온기를 나누던 집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곳들은 남은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경험했던 장소였으며,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자신의 오빠를 대신해 그의 교복을 입겠노라 단원고 진학을 결심했던 동생, 자식의 마지막과 가까웠던 곳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섬으로 들어간 아빠, 광화문 집회 속에서 자식과 같은 이름의 어린 전경을 만난 엄마. 어쩌면 잊지 않고, 잊히지 않으려 애썼던 이 순간들이 그 ‘지도’를 세세히 그려왔던 게 아닐까 싶다. 한편 동생의 사고현장에 대해서 직접 목격하지 못했으므로, 여전히 동생의 재킷이 걸려있는 교실이 사고현장이라고 말하던 유가족 형의 말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그 까닭은 가슴 아픈 사건으로 잃게 된 학생들을 제적 처리한다는 학교의 처우도 냉담하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기리기로 한 ‘기억 교실’이 별관 한 곳으로 정리되어 버렸다는 것이, 마치 기억 저편으로 묻겠다는 의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나에게도 마음의 지도가 있다면, 그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한편 ‘세월호 참사 피해자’라는 정의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참사 ‘생존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희생 교사의 가족들’이었다. 제도적으로 볼 때 이들에게는 보상문제가 애매하게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존자’라는 이유로, 또 ‘계약직 근로자’라는 이유로 생존 학생들과 희생 교사는 제도의 그늘에 가려졌다. (물론 피해 가족들 대부분은 정부의 공정하지 못한 ‘보상’이란 점에서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 또한 문제점에 동의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피해 가족’들 사이에서 이들이 설 곳은 너무나도 좁다. 희생된 비극에 비해 생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희생 가족들에게 아픔 및 반감으로 작용되기도 하였고, 생존 가족들은 이런 구도에서 서러움과 더불어, 살아있음에 미안함을 느껴야 하고 나아가 지속적인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또 희생 교사의 가족 역시, ‘교사’라는 직책이 사고에 기여한 것 마냥 죄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한 희생 교사의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피해자인데...... 교사는 죄인이죠....... 애들, 똑같은 애들, 우리 딸내미도......”(168p.) 분명 인간의 고통과 슬픔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내 아픔이 가장 크고, 상대의 상처가 내 잣대에 비해 적어 보인다면 더더욱 얄밉고 억울할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 문제는 모두가 아픈데, 이들이 견디고 있는 세상에선 서로가 불편한 존재, 잊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이 또 다른 비극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함께 울어주는 이웃과 가족, 시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로 인해 위로를 얻고 버틸 힘을 지켜왔다는 인터뷰도 있었다. 물론 이제는 알고 있다. 이 분들에게는 어떠한 위로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의도하지 않더라도 실례되는 상황은 언제든 올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반감을 살 수도 있다. 표현이든 지지든 섣부르게 행동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라는 시민들은 언제든 용기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어날지도 모를 갈등이 두려워서 동참하는 것을 마다한다면 애초에 ‘연대’가 발생할 기회를 저버리는 태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듯이, 또 동참의 모양과 크기에 정답이 없듯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의 간격은 누구도 의도적으로 정형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짧고도 긴 세월 동안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졌고, 그 과정 속에서 세월호 가족 분들은 많은 경험을 했다. 사회 역시 ‘공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흔적으로 남았으리라. 우리는 서로 깨지더라도 함께 배우며 연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사건이 진행되던 긴 시간 동안 분명히 모두를 구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인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러지 못했고,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정확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하루 이틀, 몇 개월, 몇 년이 지나는 사이에 달라지는 것은 낮아지는 사회의 관심뿐이었다. 정부의 진상규명은 기다려온 시간에 비해 더디었고, 4·16 활동은 하나의 진영 마냥 익숙한 사회 풍경이 되어만 갔다. ‘세월호 가족들’은 잊히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기억교실, 생명안전공원(집필 내용 기준), 광화문 집회 등 상징적인 것들이 하나둘씩 뒤로 밀려나는 순간 결국엔 옛이야기로 잊힐까 하는 우려를 불렀다. 또 7년 여 년간의 긴 시간 동안 몸과 마음도 지친 분들도 계신다. 하지만 과연 이 모든 것들이 ‘세월호 가족’에게만 한정된 책임일까? 그들에게만 갈급한 문제의식일까? 사회학자 엄기호의 의견처럼, 이 참사의 일차적 동시대인은 ‘세월호 가족’이 맞지만, 그다음 동시대인은 우리 사회 모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동일한 시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었다’와 같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참사 ‘생존자’이다. 자살 방지 캠페인을 접할 때 “우리는 모두 자살 생존자입니다.”로 시작한다. 참사에 대해 이 말을 빌리고 싶다. 참사에 희생당한 이들도, 생존해 온 이들도, 그들의 가족도 그때의 어제엔 오늘의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시민 중 한 사람이었다. 저마다 미래를 위한, 가정을 위한 꿈을 꾸고 살아왔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았고, 수학여행에 설렘을 느끼고, 다가올 내일을 살아가던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사건으로 그들의 평범했던 일상은 영영 ‘과거’가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 시민들은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사연들이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 주거의 위기, 생존, 식량, 사건, 사고, 권리, 존엄의 이슈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나를 지켜줄 것처럼 보이는 제도 및 사회에게, 국가 대 개인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이미 지나온 문제와 불완전함을 기억해 내는 우리는 서로가 힘을 모아 연대해야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여전히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제주 4·3 사건, 광주 5·18 항쟁, 전태일 열사와 노동 운동, 용산 참사, 장지동 화훼 마을 등이 우리 시대의 그늘진 표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잊힌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제도의 등진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힘을 모아 연대했던 이웃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잊힌 자들의 희생과 아픔을 뒤로한 채 누군가는 이익과 평안을 누리고 있었던 비극적인 사회상을, 이제는 마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무수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부디 이러한 질문들이 건강한 동력이 되어 우리의 삶에 적용되길 바라본다. 세월호 가족들은 말한다. 그래도 이 참사는 은폐되지 않았다고. 당시의 생중계와 무수한 움직임들, 모아 온 기록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또한 책의 제목과 같이 ‘그날’이 우리 마음의 창을 두드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7년 전에 아이들이 침몰해 가는 배의 창문을 두드리면서 살기를 호소하였고, 이제는 우리 마음의 창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슬픔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그날을 끝까지 기억해 달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이미 역사의 방향은 이전의 과오를 넘어서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져본다. 이제 다음의 과제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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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2021년 기획된 제1회 전국 4.16 독서감상문 공모전에서 일반부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필자의 원고를 축약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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