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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슭님 Feb 17. 2023

이악한 여자들이 만든 세계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를 읽고

ⓒChangbi Publishers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알 수 없는 마을에 불시착하게 되었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왜인지 낯선 느낌이다. 처음에는 존재를 들키지 않도록 숨은 듯이 지내야 했지만 결국엔 존재가 밝혀진다. 당신을 숨겨준 사람은 당부한다. 누구에게도 신분이 밝혀지면 안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을의 생활 방식을 익히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겉모습부터 사고방식까지 조심해야 한다고. 이제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당신은 원래 살던 곳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몇 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설정 중 하나다. 만일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어쩌면 자와 유사 구석이 있는 상황을 경험한 다수의 이야기로, 알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북조선 여성들을 담고 있다. 저자 김성경 교수는 연구자의 수직적 위치가 아닌 상호교류적인 입장에서, 북조선 여성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또한 한반도에서 벌어진 식민과 전쟁, 냉전과 탈냉전, 지역화와 세계화가 어떻게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쳤는지 밝힌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은 비단 '너(북조선 여성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며, 한반도에 살아가고 있는 '나(여성)'에게도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이를 통해 '전쟁'과 '분단'을 다시금 감각해 볼 수 있다.


  1부는 북조선 사회의 미디어를 바탕으로 실제 인터뷰 내용을 첨가하여 문학적으로 재구성한다. 북조선 여성의 노동 참여, 본격적인 경제활동, 해외 노동을 시대 순으로 나열하여, 사회가 요구했던 삶의 방식과 세대 별 가치관 변화를 엿볼 수 있다. 2부는 저자가 직접 취재했던 내용을 에세이 형식으로 전달한다. 중국 접경지역의 북조선 여성과, 이주노동자가 된 어머니들, 조선적 자이니찌의 삶을 들을 수 있다. 때로는 없는 존재가 되기도 한 그들의 경험 속에서 숨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3부는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로 확장한다. 남한과 북조선 여성 사이에는 분단을 매개로 작동하는 국가와 젠더 관습의 위력을 감내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 안에 탈식민적 사고가 필요함을 전한다.


  이 책은 '태도'에서 오랜 여운을 다. 미디어에서 익숙하게 비쳤던 젠더화된 인식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회의 무감각에서 오는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시선을 교정했다. 대신 '개인의 삶'과 경험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내면의 감정을 이끌어냈다. 아마도 이전 저서인 갈라진 마음을에서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분단체제 아래서 한국사회는 우월한 위치에서 북조선을 대상화하곤 했는데,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지점이 바로 북조선 여성에 대한 성애화된 담론인 것이다.
-「갈라진 마음들」 217p -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 경제 책임, 이주 노동, 타지에서의 연대는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닌 온전한 그들의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즉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 여성들 스스로가 행위의 주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런 면모는 형용사 '이악한-'을 떠올리게 한다. "악착스럽다"라는 북조선식 표현으로, 1부에서 언급된 북조선 소설에서 "북조선 여성이 국가의 통제와 남성의 폭력을 뛰어넘는 존재로 형상화"(86p)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필자의 경우,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초월적 사고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한편 저자는 북조선 출신자 연구에 앞서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목했다. 이것은 역사성과 위치성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상대를 타자화하여 순식간에 간극을 만들 수 있다는 한계를 발견하게 한다. 결국 내재된 우월감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의 대안점으로 '타자되기' 윤리학을 제시한다. 나아가 연구자 개인의 성찰로부터 독자들의 참여로 확장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것을 독자가 대입시키기엔 한계점이 보인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상적인 접근으로 이해를 도왔다면 더 나은 마무리가 되었을 것 같다. 지금의 이야기는 완결이 아닌 진행형이기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결핍된 '너'에 대한 감정과 감각을 되살리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분단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현실을 마주하고, 올바른 정체성을 키우고 싶은 이들에게 담백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저자의 갈라진 마음을을 읽었 독자라면 심화된 질문을 얻을 수 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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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글은 출판사 창비의 서평단 활동을 위해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저자의 표현방식 따라 일부 문장에서 북조선식 고유명사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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