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가족으로부터 서로를 지키는 법
이탈리아 맘마.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그 이탈리아 맘마를 들어보았는가.
이탈리아 엄마들의 자기 자식, 특히 아들사랑은 유별나다. 다 큰 아들일 지라도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자기보다 큰 아들을 어린아이 달래듯이 무릎에 앉히고는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모든 이탈리아 엄마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이탈리아의 관용구 '코코 디 맘마' 즉 이탈리아 마마보이는 이미 유명하다. 보통 다른 나라 사람들이 집을 살 때 가격, 직장과의 거리를 고려한다면 이탈리아에서는 엄마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한다는 농담까지 있다.
아무튼 이 이탈리아 맘마와 그녀의 코코 사이에 내가 끼어들었으니 그 여파를 어느 정도 짐작하리라 예상된다. 수차례 무시무시하다는 이탈리아 맘마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국도 치맛바람이 센데 설마 그만하기야 하겠냐며 가드를 풀고 승태의 부모님을 뵈었다.
그리고 처음 인사를 나눈 그 30초 만에 KO 당했다.
이때 껏 유럽에서 있으면서 이탈리아 친구들과 가장 친하게 지냈는데 가까운 친구들 집에 초대되어가기도 했고 간혹 부모님들이 영국으로 오시면 나까지 불러내어 밥을 사주시기도 하셨다. 다만 엄브릿지로부터 매우 엄하게 자란 나는 나이 많은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게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따라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렀더니 너무 귀여워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나에게도 '엄마가 이걸 해줄게', '파파 따라와 봐' 라면서 엄청나게 챙겨주셨다. 종종 젊은 부모님도 계셨는데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하셔서 그렇게 불렀었다.
착한 며느리 병도 아니면서 괜히 그 집 식구들 마음에 들고 싶고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평소에 보다 배로 살가운 표정에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맘마,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망할. 그 0.1초의 시간 동안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조금 뒷걸음질 치시는 듯한, 뭔가 어색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 안녕, 근데 나는 너네 엄마가 아닌데?'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난처하고 부끄러워서 쥐구멍을 찾는 그 0.1초 동안 그 이탈리아 맘마는 내 옆에 있는 승태를 껴앉으며 '너네 엄마지! 아유 우리 보물!"이라고 하셨다...
그래, 이때부터 가드를 올렸어야 했다. 하지만 착하고 멍청한 나는 '아 맞아 우리 엄마가 아니긴 하지, 북부 이탈리아라 그런가 개인 평등주의 그런 게 있나 봐. 그래 좋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을 뿐. 그리고 이건 몸 푸는 연습게임에 불과했다.
이탈리아에 간 첫 번째 이유는 누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결혼하기 하루 전날 자리배치로 성당에 함께 들렸는데 어머니가 앞좌석에 앉으시며 '아빠랑 나랑 승태랑 이렇게 앉으면 되겠네'라고 하셨다. 저.. 나는 어디로..? 나는 투명인간인가요? 다행히 누나의 중재로 승태 옆에 앉을 수 있었다. (아니었음 그 뒤에서 낯선 사람들 틈에 있을 뻔했다)
이 외에도 어머니의 공격은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예상치 못한 방법,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감히 생각해 낼 수 없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대놓고 얼마나 버는지 물어보시기도 하고 혹은 내 얼굴이 크다던지, 눈이 작다던지 그런 말들을 아주 뜬금없이 하기도 하셨다.
이쯤 되면 이탈리아 어머니가 아주 나쁜 사람 같지만 실은 모든 이 생각 없는 말들에 나쁜 의도는 없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그냥 마음 편하게 사시는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생각나는 대로 말하신다. 승태 아버지와 승태는 엄마보다 코끼리가 좀 더 섬세한 스타일이라고 했다.
얼마나 버는지, 밥은 먹고살만한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고 자기가 늘 보던 서양인보다 얼굴이 크고 눈이 작으니 어머 눈이 작네 라고 하는 것 그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알았으니까 그냥 참고 살면 안 되느냐고? 안된다. 예쁨 받고 싶어 하는 착한 한국인은 코스프레는 그 첫 방문에 끝났다.
하지만 영어도 아닌 제3 외국어로 받아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승태를 불러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할 때면 하지 말라고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당부는 참담한 결과를 불러왔다. 아니 누가 화를 내라 그런 것도 아닌데 한 번도 엄마랑 싸운 적 없는 아들이 엄마에게 막상 화를 내려니 그 화가 도무지 조절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나에게 득이 아닌 실이 될 뿐이었다. 내가 여기 온 것이 무슨 엄마랑 아들 사이 이간질하러 온 것도 아니고. 이탈리아에 갈 때마다 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수는 없고 승태가 자기 부모님 게 화를 내게 하는 것도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승태에 맞게 눈높이 교육을 시도했다.
Q 엄마가 나보고 얼굴이 커다랗네, 코가 크네 눈이 작네 그랬을 때 답은?
A 아니 항상 예쁜데?
Q 엄마가 여자는 요리도 하고 다림질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넌 못하냐고 했을 때 답은?
A 나도 잘할 줄 몰라. 여자만 밥 먹는 것도 아니고 여자만 옷 입는 것도 아닌데 같이 해야지
Q 엄마가 내가 새로 간 학교에서는 얼마나 버는지 물었을 때 답은?
A 밥 먹고 살 만큼 벌어. 혹시 모자라면 엄마한테 달라고 꼭 얘기할게 (ㅋㅋㅋ)
Q 엄마가 나보고 너 이탈리아어 늘어야 된다? 이탈리아어 공부하고 있니?라고 했을 때 답은?
A 요즘 얘 네덜란드어 배워 난 7년을 살아도 네덜란드어 못하고 한국어도 못하는데. 얘는 이제 네덜란드어도 하고 이탈리아어도 안 까먹었잖아.
Q 엄마가 승태에게 내 비자 때문에 결혼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답은?
A 이미 직업이 있는데 왜 비자 때문에 결혼하겠어? 그쪽으론 내가 쓸모가 없어.
Q 한국이나 중국이나 태국 (이웃집 남자가 태국 여자와 결혼을 했다)이나 똑같잖아라고 할 때는?
A 루마니아랑 이탈리아랑 다르듯이 아시아도 국가 간에 문화가 달라. 어디 가면 꼭 아는 척해.
Q 무엇인가 했는데 엄마가 좋아했을 때 덧붙일 말은?
A 그거 베아 아이디어야!!
아니나 다를까 결혼 전 잠시 이탈리아로 갔을 때 정말 이 모든 질문들을 하셨고 우리는 놀라기도 하고 꼬셔하면서 미리 짠 그대로 대답했다. 진짜 어머니 말문이 턱턱 막히는 게 보였다. 얼굴이 크다고 놀리려고 하는데 급 아니 예쁜데? 이러니까 할 말이 없으셨을 것이다.
아마 다음번에는 이런 질문들을 안 하실 테지만 좋은 것은 무조건 내 아이디어 안 좋은 것은 승태 책임이라는 레퍼토리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우리 엄브릿지와 아빠는 다른 방식으로 승태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승태 집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우리의 삶에 너무 간섭할 때가 가장 그런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통역을 다르게 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했던 말을 전혀 엉뚱한 말로 통역했다. 승태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고 엄마랑 아빠도 내가 다르게 통역했다는 것을 모르신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의 가족으로부터 서로를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이다.
가족의 구성원이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가족으로 떨어져 나간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식이 되었든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이 주는 사랑이 자신의 배우자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최우선은 내 배우자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아내/남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본인의 부모님께 심어주는 것부터 나의 새 가족을 지키는 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