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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Jun 21. 2024

미니멀 프로포즈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에 남편에게 미리 신신당부했다.

‘명품백같은 걸로 프로포즈는 절대 하지 말라고.’

언제부터 유행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식 프로포즈에는 명품 가방(최대치 샤넬백)과 호화 호텔이 필수 조건이다. 프로포즈의 원래 뜻(?)은 한쪽이 상대방에서 결혼을 서프라이즈 방식으로 제안하는 행위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결혼을 약속하고 준비하는 시기에 보통 진행되니 시기적으로도 모양새가 웃기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프로포즈 따위 하지 맙시다!라고 선언하고싶은 것은 결코아니다. 다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에 수천만원을 들이면서 부담감을 가지지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남편이 프로포즈를 한다면 받고싶은 물건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필요한 물건은 정말 없었다.


개인적으로 필요한게 있다면 받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봐도 당장 떠오르는 가지고 싶은 게 없었다.


그 순간 그 사실 자체가 좋았다.

대화를 하던 곳은 대형 쇼핑몰이었다. 수없이 스쳐지나가는 물건들 앞에서 비어져 있는 욕구들로 이미 풍족해졌달까.

결혼준비를 하던 날들 중 하루였다.

지극히 한국적이게도 결혼을 확정한 상태로 받은 프로포즈였지만, 나도 예상치 못했던 평일 어느날 저녁에 서프라이즈로 프로포즈를 받았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장식품 사이에 있던 선물은

러쉬 향수.

우리는 러쉬를 좋아한다. 언젠가 러쉬 매장에서 다양한 향수를 시향하던 중 좋다고 생각한 제품이 있었다. 당연하게 그대로 매장을 빠져나왔었다.

그때 그 향수를 기억하고 프로포즈 선물로 준비한 것이다.

소소하고 미니멀한 선물 아닌가.

그치만 지나칠 수 있었던 말 한마디를 기억하고, 직접 다시 찾아가 나를 생각하며 선물을 구매한 그 마음은 전혀 미니멀하지 않다.

프로포즈를 받고나니 나도 해주고싶어졌다.

같이 하는 결혼인데 그에게도 한번 뿐일 서프라이즈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나대로 뭐가 필요할지 고민해봤다.

운동하는걸 좋아하는데 제대로 된 운동복이 없었던 것 같았다. 기능성 운동복을 상하의 세트로 선물했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맘에드는 운동복을 입으면 소위 템빨로 운동할 맛이 나면서 즐겁지 않은가. 그 기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서프라이즈로 전달해주니 그 자리에서 입어보고

얼마나 편한지 온 몸으로 표현줬다.


우리는 마치 생일, 기념일처럼

소박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며 프로포즈를 했고

그 물건들은 일상 속에서 자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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