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느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었다. 도화지 위에 선 하나를 그었다가 지웠다가, 동그라미를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 그렇게 마주한 결과는 실력보다 빠르게 자라버린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뒤로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먹어야하는 마음의 크기는 점점 커져갔고, 그렇게 부담감에 연필을 잡는 횟수가 줄다가 급기야 백지가 무서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 지독한 완벽주의는 심지어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무기로 좋지 않은 결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이것은 아마도 완벽주의의 탈을 쓴 강박일 것이다. 나는 나의 완벽주의에 기대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멀어지고 있었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었던 완벽주의가 오히려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만들고 있던 것. 그것을 확인한 순간 완벽주의를 벗고 완벽 주의注意자가 되리라 다짐했다.
진정한 완벽주의란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무디고 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