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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Apr 10. 2022

답정너의 고민상담

"... 어떻게 생각해?"


"음..(짐짓 고민하는 티를 내다가) 안 했으면 좋겠어."


"왜?"


"네가 이 말이 듣고 싶은 것 같아서."




도저히 결론이 안나는 고민. 설상가상으로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는 '지혜로울 지' 자에 '지혜로울 혜' 자를 쓰는 나의 오랜 친구 지혜에게 혜안을 기대하며 다급히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마음이 기우는 결론이 있긴 했지만, 그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그녀가 내게 다른 결론을 준다면 언제든 마음을 고쳐먹을 생각이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내 확신에 무게를 더해줄 타당한 이유도 필요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 툭 던져진 싱겁다 못해 맹물같던 대답.


"네가 이 말이 듣고 싶은 것 같아서."


2초 간의 정적.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

현실적인 조언도, 내 마음에 대한 타당한 근거도 얻지 못했지만 싱거운 그녀의 대답은 내게 '선택은 결국 행동하는 자의 몫이고,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상기시켜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찌됐든 그녀의 조언이 결론적으로 나의 선택에 도움이 된 걸 보면 그녀의 이름이 괜히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보다.)


답정너의 고민상담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대표적으로 연애상담이 그런데, 몇 시간을 공들여 조언해줘도 돌아오는 건 허무함뿐이다.

(연애상담의 핵심은 문제 해결이 아닌 공감과 위로라는 것을 몰랐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답정너의 고민상담은 서로를 잘 알기에 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알고 있지만 믿고 이야기하는 것,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도 알고 있지만 기꺼이 들어주는 것 말이다.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고민을 이야기해올 때 나의 답을 말하는 것도 좋지만 때에 따라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는 것도 좋은 조언이 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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