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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절규'하게 되는 뭉크의 도시

[퐁당퐁당 여행기 1.  노르웨이 오슬로 ]

230210 ~ 230213 / Oslo, Norway


1. 물가에 '절규'하게 되는 뭉크의 도시, 오슬로


숙박비가 1박에 4만원인 저렴한 호스텔을 예약했다. 오슬로에서 가장 저렴한 호스텔로 뜬 곳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독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빼꼼? 하고 침대에 누워서 다들 날 쳐다보고 있는 거다!

깜짝 놀라 그 길로 다시 프런트로 와서 물어보았다.

"숙소 예약할 때 도미토리라는 말은 없었는데, 혹시 방을 잘못 배정받았나요?"


Felles sovesal, delt bad

프런트 직원들은 예약 페이지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이 문구를 내게 보여주었다.

이게 바로 "Shared dormitory, shared bathroom"라는 뜻이었다.


1인실을 기대하고 밤늦게 들어간 호텔은 도미토리였고 그것도 심지어 8인 도미토리였다. 뭐, 군대에서 1년 반동안 16인 도미토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8인 1실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럼에도 나는 오슬로에서 가장 저렴한 (심지이 샤워실에 샴푸도 없었다) 호스텔 8인 도미토리 방이 4만원이라는 것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만큼 노르웨이는 물가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오슬로에 가면서 아침점심저녁 세끼를 다 '연어'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게 노르웨이라는 나라는 곧 '연어나라'로 인식되었던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 나는 연어만 먹고 돌아간다'는 생각에 한가득 사로잡혀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첫날 저녁 호텔소동을 겪고 나서 나는 생각보다 더 노르웨이의 물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점심이랑 저녁은 제대로 먹더라도 아침은 가볍게 빵으로 때워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숙소 앞 맥도나알두에 들어갔다.


앗. 작은 햄버거 세트가 15,000원 가까이 나왔다. 돈 아끼려고 편의점에서 산 빵도 값이 만원 언저리였다. 만약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다면 최소 2만원대에서 일반적으로 3,4만원대까지는 생각하고 가야 했다.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먹은 연어요리는 6만원대였다. ㅎㅎ 전쟁 이후로 물가가 많이 올랐다던데 그 영향을 받은 건지, 아님 원래 북유럽이 이렇게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곳이었던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아무튼 쉽지 않은 물가였다.




2. 뭉크!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뭉크의 그림을 바라보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오슬로에 온 목적은 사실 딱 하나, 바로 뭉크였다. 그래서 아침 일어나자마자 오픈시간인 10시에 맞춰서 천천히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참 아쉽게도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없어서 영어 오디오가이드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뭉크는 어렸을 적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에는 늘 불안과 고통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불안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또다시 실연이 불안과 고통을 낳는 악순환에 빠진 느낌. 그러다가 말년에는 그런 불안과 고통이 마치 기쁨과 평안함으로 극복된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종교적 작품들을 남기기도 한다.

드디어 영접한 뭉크의 <절규>!


 에드바르드 뭉크는 같은 작품을 여러 개의 버전으로 남기곤 했고,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절규> 또한 여러 가지 버전으로 그렸다. 따라서 뭉크미술관 안에서도 여러 가지 버전의 절규를 감상할 수 있고,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가면 또 다른 버전의 절규를 볼 수 있다. 모두 복제품이 아닌, '진품'이다.
여러 버전의 절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작품이 다소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버전의 절규를 보며 그 사소한 차이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재밌는 것은,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있는 <절규> 앞에는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지는 않았는데 뭉크미술관의 <절규> 앞에서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 아무래도 뭉크미술관에 온 방문객들은 '뭉크'만을 위해서 의도를 갖고 방문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절규 앞에 모여있었던 듯싶다.


<흡혈귀>

물론 '절규'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 작품을 꼽자면 <흡혈귀>라는 그림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여자는 남자의 목을 물고 피를 빨고 있는데, 죽어가는 남자는 여자의 심장에 귀를 대고 박동소리를 듣고 있다니. 여자는 사랑하는 이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면서 본인의 삶을 연장시키고, 남자는 죽어가면서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평화를 찾는 아이러니. 사랑으로 하나 된 두 사람 사이에서 삶과 죽음이 뱅뱅 도는 모습이 참 기묘하게 다가왔다. 뭉크는 이렇게 삶과 죽음을 주제로 그림을 많이 남겼다.
유년 시절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 예술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에드바르드 뭉크의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구스타브 말러'라는 걸출한 음악가가 연상되기도했다.




3. 이 시국에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라니?


뭉크미술관 옆에는 거대한 오페라하우스가 있는데, 마침 <유진 오네긴>이라는 오페라를 공연한다길래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다. 티켓값을 슬쩍 물어봤는데 오케스트라 바로 앞에 있는 좋은 1층자리가 마침 비어있다면서 학생할인하면 5만원에 볼 수 있다고 영업을 당했다. 그래서 넘어갔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난 뒤, 난 저녁에 다시 이곳으로 걸어와 오페라를 보게 된다.


생각해 보니 <유진 오네긴>이라는 작품은 푸쉬킨의 산문에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쓴 '러시아' 예술작품이었다. 비록 러시아라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이미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러시아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러시아'라는 복잡한 역사적 구성물이 곧 푸틴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니깐. 하지만 오페라를 보면서 찝찝한 마음이 안 들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 문화를 내쫓자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 미묘한 분위기를 이미 다 예상하고 있었는지, 커튼콜 때 주연인 '오네긴'역을 맡았던 배우가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등장했다.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쳤고, 찝찝했던 마음도 조금은 개운해진 것 같았다. 다만 오페라를 보고 나오면서도 계속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이 시국에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관련된 것이라면 일단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이 옳을까? 하지만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은 히틀러의 모국어인 바로 그 '독일어'로 자신의 책을 썼다. '칼로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다고 해서 그 '칼'이라고 하는 도구를 안 쓸 것이냐'라고 말하면서.
물론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시위를 한 우크라이나 분들이 '러시아 문화를 모두 부정'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야 사람들의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보다 강하게 표현하고 행동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도 오페라를 보면서 한 번 더 전쟁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


참 오페라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유진 오네긴>은 나름(?) 재밌게 봤다. 렌스키가 부르는 아리아는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노래였는데, '아 이 노래가 이 오페라에 나온 노래였어?'하고 놀라면서 들었다. 알고있는 노래가 나오면 반가워서 더 귀를 기울여 듣게되는 효과가 있는 것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젊은 사람입장에서 오페라가 막 엄청나게 재밌고 흥분되지는 않았다. 뮤지컬이면 모를까... (관객들도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참 많았다. ㅎㅎ) 그래도 오랜만에 '오페라'를 직접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그것도 가뜩이나 물가 비싼 노르웨이에서 단돈 5만원에!

 


4. 연어

계획했던대로 연어는 원 없이 먹었다.

뭐 노르웨이 연어라고 특별히 맛이 다르지는 않았지만, 버킷리스트를 하나 달성해서 기분이 좋았다.

"노르웨이에서 연어 실컷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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