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를 여행하면서 재미있었던 기억 중 하나는, 바로 버스에 단말기가 따로 없었던 것이다.
참 이상했다. 카드를 찍을 곳이 없어서 허둥대고 있었는데, 기사님이 그냥 뒤에 가서 앉으라는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살펴보니 다들 카드를 찍거나 현금을 내지 않고 그냥 버스에 자연스럽게 올랐다. 그게 정말 신기했다. 물론 가끔씩 검표원들이 들어와서 승객들의 표를 확인이야 하겠지만 애초에 버스 단말기가 없는 버스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2. 박물관 뽕 뽑기 (오슬로패스를 사는 게 아니었어...)
오슬로에 도착하자마자 72시간짜리 Oslo Pass를 끊었다. 오슬로패스 한 장으로 웬만한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대중교통까지 다 무료로 이용가능하다고 해서 덜컥 사버린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슬로패스를 사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뚜벅이 여행을 선호하는 나는 대중교통은 몇 번 이용하지도 않고 종일 걸어 다니기만 했고, 또 박물관은 개별적으로 학생할인받아서 가는 게 알보고니 더 저렴했다. 그래도 이미 '오슬로 패스'를 사버렸기 때문에 최대한 뽕을 뽑기 위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정말 열심히 다녔다. 특히 박물관이 몰려있는 비그되이 지구(Bygdoy Peninsula)는 원래 갈 생각이 크게 없었는데, 박물관 뿌시기(+대중교통 최대한 많이 이용해 보기)를 달성하기 위해서 마지막 날 몰아서 방문했다.
오슬로패스 뽕 뽑기 위해서 뭉크미술관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간 곳은 오슬로 국립미술관이었다.
뭉크미술관과는 달리 너무 볼게 많아서 오히려 집중이 잘 안 되었는데, 모든 걸 다 담아가려고 하지 않고 그냥 산뜻한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左 노르웨이의 광활한 자연 / 右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그린 그림. 오딘과 발키리의 모습이 보인다. 참고로 이 그림은 록밴드 Bathory의 앨범 표지로도 쓰였다고한다.
북유럽, 그리고 노르웨이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에 눈길이 먼저 갔다. 예컨대 스칸디나비아의 광활한 자연과 소박한 민중들의 삶과 표정을 묘사한 그림에 눈길이 갔고, 북유럽 신화를 다룬 압도적인 그림이 또 인상에 남았다. 생각해 보면 북유럽신화는 게임, 영화, 음악 등 알게 모르게 우리 삶 속에 참 깊게 스며들어있다.
생명의 춤과 절규
국립미술관에는 뭉크미술관과는 또 다른 버전의 그림들이 있었다. 절규와 생명의 춤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사람들의 얼굴에 눈코입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게 색달랐다. 개인적으로는 눈코입이 없는 게 더 모호하고 암울한 인상, 혹은 어떤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하지만 표정이 있는 것도 나름 매력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표정들을 그려 넣었길래 분위기가 비교적 가볍게 느껴졌던 것이다. 사실 조금 웃겼다 ㅋㅋ
3. 위대한 탐험가의 나라 (Feat. 비그되이 지구)
노르웨이는 위대한 탐험가의 나라다.
극지 탐험가인 난센과 아문센, 그리고 돛단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던 인류학 토르 헤이어달까지. 바이킹의 후예답게 이들은 용감하게 배 위에 올라 험난한 여정을 떠났다. 참 '바이킹'하니깐 생각이 난 건데, 비그되이 지구에는 바이킹 박물관이 있다! 그래서 그곳을 가는 김에 꼭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하필 2025년까지 박물관 공사를 한다고 했다. 아쉬워라...
실제로 탐험가 난센이 탔던 '프람호'가 그대로 전시되어있었다. 내부도 들어가볼 수 있었는데, 요리사를 보고 깜짝 놀람.
고대인들이 긴 바다항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직접 나무로 된 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했던 인류학자 토르 헤이어달.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의 글로벌판이다.
4. 리시 수낵 총리를 닮은 영국형과 파울루벤투 감독을 닮은 포르투칼 형
호스텔에서 만난 형들이랑 하루일정을 같이 보냈다. 바로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前 감독이었던 파울루 벤투를 똑 닮은 포르투칼 형과 現 영국 총리인 비시 수낵를 묘하게 닮은 영국 형. (그 사람들의 국적을 알아서 그렇게 더 보인 것도 있겠지만, 아니다. 정말 벤투와 수낵을 닮았다.)
파울루 벤투를 닮은 포르투칼 형은 정말 축구를 좋아했다. SL 벤피카의 빅 팬이었고, 동시에 호날두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래서 우리에게도 처음 던진 질문이 바로 그거였다.
"너희는 호날두하고 메시 중에 누가 더 나은 선수라고 생각해?"
순간적으로 그 형이 포르투칼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1초 만에 "당연히 메시"라고 답했다. 그 순간 사알짝 등골이 오싹해지는 거다. 앗. 혹시 내가 실수한 건가. 하지만 그는 의외로 덤덤해 보였다. 이미 내가 그렇게 말을 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다들 메시가 최고의 선수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어. 바로 호날두는 메시보다 나이가 두 살 더 많다는 것이야. 그래서 그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면 안 돼. 또 그거 알아? 메시는 인터뷰를 할 때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 스페인어만 사용하지. 그것은 세계 팬들에 대한 존중이 아닐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호날두는 영어를 사용했고, 그런 면에서 국제 팬들을 더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기도 하고, 또 어느 정도 맞는 말 같기도 했는데 완전히 수긍은 가지 않았다. 호날두라는 축구선수의 태도가 그렇게 썩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 그런 떨떠름한 표정이 읽혔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의 설득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듯한 그는 "메시와 호날두 모두 다 훌륭한 선수고, 그 둘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는 결론으로 논쟁을 얼른 마무리지었다.
여기서도 호날두메시 논쟁이라니. 부먹 찍먹과 같은 의미없는 논쟁같긴 하지만, 처음보는 사람과 친해지기에 이보다 더 좋은 주제도 잘 없다.
리시 수낵을 닮은 영국 형이 내게 던진 질문 중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너희들 정말 개고기를 먹어?
이 질문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순간 벙쪘다. '혹시 이게 인종차별인 건가?' '왜 너희들은 개고기를 먹냐면서 따지려 드는 건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며 상대방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순수하고 무해해 보였다. 아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짧은 영어로 열심히 대답을 했다.
"일반적이지는 않아. 하지만 흔치는 않더래도 네가 아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개고기를 먹을 수 있어. 아마 시골 같은 데 내려가야 할 거야." 그리고는 방어기제가 작동했던 것인지, 이런 말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꺼림칙하게 느껴져. 강아지는 사람과 친밀한 반려동물이니깐. 하지만, 개를 먹는다는 것을 이유로 그 문화를 열등하다는 식으로 낮추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소나 돼지, 거위 간이나 달팽이를 먹으면서 개를 먹는 사람들을 야만적으로 바라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앗. 따지려 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순수히 궁금해서 물어본 것임이 분명했다.
가끔씩 이렇게 인종차별 내지는 공격적인 발언인지, 아님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질문들이 내게 들어올 때가 있다. 결국 대화의 맥락과 분위기 속에서 그 의도가 드러나는 것 같다. 어떤 중동에서 온 남자는 내게, "너희 아시아인들은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데, 그럼 한국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어떻게 구분해?"라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 워낙 초롱초롱한 눈에 순수한 호기심에 물어보는 것 같아서 "나도 너희가 레바논 사람인지 시리아 사람인지 오만 사람인지 구분 못해"라고 담백하게 답했다. 그런데 그 중동남자가 떠나고 난 뒤 내 옆에 같이 있던 스위스 친구가 나 대신 기분을 나빠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 좀 무례했던 것 같아. 너가 참 대처를 잘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