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종일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둘러보고 와서 그런가 아침에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다리는 너무 아프고, 몸은 피로하고..
광산을 갈까 말까 엄청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가게 되었는데 정말 재밌는 경험을 했다.
같은 시간대에 'Miner's route'를 신청한 사람이 딱 나 혼자 뿐이라 가이드님(이름이 마렉이었다. 마렉 함식의 그 '마렉')과 단둘이 프라이빗한 광산투어를 한 것이다. ㅋㅋㅋ 사실 일반 관광객 루트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있었는데, 다들 '광부의 루트'를 선택할 생각은 못했나 보다. 단지 광부의 루트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신청했을 뿐인데... 단둘이 투어라니 행운이다!
처음에 일반 관광객 루트 앞 줄에 서있다가 뭔가 이상해서보니 '광부의 루트' 입구는 3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여유롭게 도착하지 않았으면 약속시간 놓쳐서 큰일 날 뻔했다. 더군다나 오늘 가는 사람이 달랑 나 하나뿐이었는데.
정말 광부처럼 입고 들어갔다.
메테인 함량측정, 밧줄 엮기
안에서 다양한 체험활동을 했다.
공기 중 메테인(CH4) 함량을 측정해서 기록해보기도 하고, 실제 목수가 된 것처럼 나무를 잘라보기도 하고, 밧줄을 엮어보기도 하고, 지도 한 장 들고 어둠 속에서 길도 찾아보고, 염화나트륨 결정체를 절구로 찧어보기도 하고, 가짜 다이너마이트 눌러보기도 했다.(근데 정말로 우르릉 쾅쾅하고 소리와 함께 진동이 생겼다. 이런 걸 어떻게 기획한 거지)
적으면서 생각해 보니깐 정말 다양한 체험활동을 했다. 더군다나 관광객이 딱 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 모든 것들을 다 내가 하게 된 것이다.
소금(NaCl) 실제로 손으로 찍어서 맛봤는데, 당연하게도 정말 짰다. 가이드님이 'Take your self'라고 하셔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소금 덩어리 하나를 들고 나왔다.
어둡고 좁은 통로
광산 내부의 넓은 광장과 비석
몇 백 년 전부터 사용되던 곳이라 그런지 소금광산은 상상 이상으로 규모가 컸다.
복잡한 개미굴 같은 통로를 지나가다 보면 군데군데 기도실이 있었는데 인상 깊었다. 광산 내부에서 화재나 지반붕괴 등으로 사고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이들은 작은 기도실을 마련해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저 지하밑 광산 속에 기도실을 만들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한 편 광산 안의 광장은 오스트리아 황제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경우가 많았다. 전에 가보았던 브로츠와프(슐레지엔 지방)는 프러시아 쪽 땅이었는데, 이곳 크라쿠프(갈리치아 지방)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땅이었다고 한다. 프란츠 요세프였나 아무튼 오스트리아 황제 중 한 사람도 이 광산에 들어왔었다고 했다.
어제 아우슈비츠에서도 그랬고, 오늘 소금광산에서도 가이드님이 이 말을 강조하신다.
"Poland was not exist in the map for a long time"
지도에서 한동안 지워졌던 나라, 폴란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의 쇠락 이후 세 차례의 분할을 겪으면서 프러시아와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속으로 편입되었던 폴란드 땅과 국민들...
이들은 코시치우슈코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간 뒤로 1795년 제3차 분할을 겪고, 그때부터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아래 탄생된 제2공화국이 1918년에 들어서기 전까지 123년간 지도 위에서 사라졌다. 이후에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침공당하고, 전쟁 이후에는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는... 정말 쉽지 않은 역사다.
투어를 마치고 나와 단돈 14,000원짜리 폭립을 먹으며, 합리적인 폴란드 물가에 감동했다. 폴란드는 음식이 참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