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이 또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다. 2012년에 이미 한 번 우승을 했던 로린이 다시 스웨덴의 대표로 나와 1위가 된 것이다! 이로써 스웨덴은 2023년 기준 아일랜드와 함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최다우승국(7회)이 되었다.
2023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스웨덴 대표로 출전한 로렌
유로비전?
몇 달 전에 스웨덴 친구와 얘기하다가 '유로비전' 얘기가 나온 적 있었다. 공원에서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음악이 바로 '유로비전'이라는 대회에서 우승한 팀의 노래였던 것이다.
유로비전? 난생처음 들어 본 이름이었기에 그게 뭔가 했다. 물어보니 유럽 각국에서 대표로 한 팀씩 내보내서 경연을 치르는 대회라고 했다.
아~ 전국노래자랑의 유럽판뭐 그런 건가?
유럽 사람들끼리 노래 부르면서 하나 되는 큰 축제구나!
이 대회의 유명한 우승자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가 아는 그ABBA였다!
ABBA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해가 무려 반세기 전인 1974년이고, 그로부터 20여 년 전인 1956년에 첫 방송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참 역사가 깊은 오래된 대회였다. 거기에다가 1억 명 이상이 방송을 시청할 정도로 규모가 큰 대회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일까...???)
암튼 스웨덴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최다우승국인 데다가 비틀즈 이후로 최고의 팝스타였던 ABBA의 모국이라면, 이 나라 참 노래 잘 부르고 음악을 잘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웨덴은 객관적으로도 '음악강국'으로 정평이 난 나라였다. 나만 잘 모르고 있었을 뿐...
하지만 음악강국이라 하기에는 '스웨덴'하면 딱 떠오르는 클래식 음악가(작곡가)는 떠오르지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고전 음악가가 한 명씩은 꼭 있기 마련인데 스웨덴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나 음악사에서 변방 취급을 받았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노르웨이에는 그리그가, 핀란드에는 시벨리우스와 사리아호가, 덴마크에는 칼 닐센이 있었는데 도대체 스웨덴에는 왜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가 없는 걸까?
전통적으로 음악을 잘해왔던 나라는 아닌 걸까?
그러다가 월간 <객석>에 송준규 칼럼니스트님이 쓴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글에서도 내가 품은 의문이 반복되고 있었다.
19세기 스웨덴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차지했던 위상을 고려하면, 왜 유명 작곡가를 배출하지 못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스웨덴이 유명한 작곡가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이 음악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는 말은 아니었다. 스웨덴은 대신 훌륭한 성악가와 연주가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였다! 특히 안네 폰 소피 오터를 필두로 걸출한 성악가를 많이 배출했다.
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최다우승국답게 이 나라는 '노래' 하나만큼은 깔고 가는 나라구나 ㅎㅎ
스웨덴의 클라리넷 연주자, 마르틴 프뢰스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리스트 음악원에서 들은 공짜 연주다(나는 학생이어서 무료로 들을 수 있었다.) 정식 공연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진/동영상 촬영도 가능했다!
몇 주 전, 부다페스트에 가서 우연히 스웨덴 출신 클라리넷 연주자인 마르틴 프뢰스트의 연주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전에는 스웨덴과 클래식 음악이라는 두 카테고리가 머릿속에서 잘 연결되지 않았었는데 리스트 음악원에서 스웨덴 출신 연주가를 만나서 그 익숙하지 않은 두 카테고리의 연결을 경험하며 신기하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스웨덴이 클래식 음악과는 동떨어진 나라라고 생각했던 인식을 뒤집을 수 있었다.
유명한 작곡가가 없었을 뿐이지 스웨덴은 서양고전음악사에서 아예 배제된 변방국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스웨덴은 오늘날 특히 대중음악에서 정말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음악강국이었다. ABBA 외에도 바로크 메탈로 알려진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이나 살아있는 전설로 꼽히는 프로듀서맥스 마틴 등 걸출한 대중음악가들과 프로듀서들을 배출한 나라였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이 음악강국이 된 이유가 궁금해서 관련된 글을 뒤적뒤적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오마이뉴스 이현파 기자님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내용이 참 흥미로웠다. 이현파 기자는 스웨덴이 음악강국으로 성장한 이유를 바로 '교육'과 '제도'에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이 음악강국으로 성장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두 갈래로 나누어서 이해할 수 있는데, 하나는 당연히 음악교육이겠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언어교육이다.
후자부터 얘기하자면, 스웨덴은 정말 '영어를 잘하는 나라'다. 간혹 나이가 든 어르신분들은 영어를 잘 못하시는 경우도 있다. 영어가 세계공용어로 부상하기 전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영어보다는 독일어에 친숙하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들 정말 영어를 잘한다. 오죽하면 스웨덴 사람들에게 '영어 할 줄 아세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곧 '혹시 숨 쉴 줄 아세요?'하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만큼 스웨덴은 교육을 통해 시민들의 영어 수준이 굉장히 높고, 음악도 영어가사를 많이 사용한다. ABBA의 노래도 영어가사였고, 이번에 유로비전에서 우승한 로린 역시도 영어로 된 노래를 불렀다. 전 세계인들에게 친숙한 영어를 적극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스웨덴의 음악은 세계화가 가능해졌던 것이다.
또 스웨덴 시민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밴드를 구성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의 '능동적인 향유자'로 성장해나간다고 한다. 특히나 학교에서 클래식음악뿐 아니라 록이나 팝과 같은 대중음악을 배우고 다루면서 살아있는 음악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공교육에서 대중음악을 접하고 배울 수 없었던 나로서는 이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우리나라 교육(그리고 음악교육)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들이 배움에 있어서 더욱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토론 수업이나 발표, 그리고 프로젝트와 같은 활동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교과서에서도 서태지나 이적 같은 대중음악가들의 음악이 실린다고하니 흥미롭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교육에서 학생들의 음악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는 않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하게 교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체화하는 일이 많았던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음악 잘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려나?
마지막으로, 스웨덴에는 대중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그들의 창작물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정책과 문화가 잘 자리 잡혀있다고 한다. 이런 제도적인 안정성 덕분에 잠재력을 가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오랫동안 자리에 남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예술인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늘어나고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문화가 유지되고 더욱 보편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보통 우리가 '스웨덴'이라는 복지국가를 언급하면서 하게 되는 흔한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스웨덴은 선진국이고 우리는 스웨덴 같은 국가의 제도나 문화와 비교불가한 단순무식한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를 가졌다'는 식의단순하고 허무한 도식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는 엄연히 개별적인 '다른' 사회이고, 모두 명암을 갖고 있는 인간사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이해 위에서 우리 사회의 특징들을 톺아보고 다른 사회가 가진 긍정적인 부분들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글을 쓰면서 교육과 제도가 문화예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그 문화예술분야에서의 역량이 국가적인 이미지와 위상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BTS를 필두로 K-Pop이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고,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분야에 상관없이 뛰어난 한국 출신의 뮤지션들이 배출되고 있다. 김구 선생님이 꿈꾸었던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는 나라'가 정말로 실현되고 있는 오늘날, 스웨덴의 사회를 들여다보며 혹시 우리가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은 없나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