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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GUM Oct 26. 2023

금리단길의 작은 봄, 책봄

week 2. 서글서글



  금리단길에 가면 꼭 들르는 공간이 있다. 바로 구미역 후문을 따라 강변을 향해 쭉 걷다 보면 마주하는 작은 책방 ‘책봄’이다.


  책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아는 이들도 있겠지만,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는 시험도 수업도 다 끝났을 때라 오전 수업만 하고 집에 간다. 그날도 어김없이 단축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하교 후 친구들과 시내에서 떡볶이를 먹기로 약속했던 날이기도 하다. (2번 도로에 있는 떡X모를 생각하신다면, 정답입니다.)


  떡볶이에 용돈을 모두 털어 돈이 없던 나와 친구들은 쇼핑 대신 산책을 선택했고 금오산 근처로 향했다. (당시에는 ‘금리단길’이라는 이름 대신 우리끼리 구미역 후문, 금오산 근처 같은 약칭을 사용했다.) 정말 별 볼일 없던, ‘구미역 뒤 작은 동네’에 불구하던 지역에 점점 개성 있는 공간이 생겨나면서 구경거리들이 많아지던 시점이었다. 우리는 지금 ‘금리단길’이 된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미에 이런 곳이 있다니! 신기하다’를 외치고 다녔다.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음식점, 그리고 몇 개의 카페를 지나치고 마주한 곳이 책봄이었다. 카페도 아니고 소품샵도 아닌 곳. 여기는 대체 뭘 하는 곳일까? 하는 호기심에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작은 공간을 ‘서점’이라고 인식하기에는 책방의 개념을 모르던 때였다. (서점이라고는 교보X고, 영풍X고 같은 곳만 있는 줄 알았다.)


  그때의 나는 책 좀 읽으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지쳐 책의 ㅊ만 들어도 살결이 떨리곤 했는데, 책봄의 책들은 왜인지  읽고 싶어지는 책이 많았다. 무심코 펼쳐본 페이지에는 친근하고 포근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그날 처음으로 ‘독립출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생각했던 ‘엄마가 읽으라는 책’들과 조금은 다른 길을 걷는, 독립출판물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 ‘엄마가 읽으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어릴 적의 내가 거부했던 건 책이 아니라 엄마의 잔소리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 내 방 책장에는 출판사도, 작가도 모두 다른 독립출판물이 가득하다. 앞집 아주머니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 마냥 일상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은 독립출판물은 어느덧 취향이 되었다. 읽는 재미를 알려준 스승이기도 하다.


  책봄을 만난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책 좀 읽으라는 엄마의 입에서 ‘책 좀 그만 사’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읽고 쓰는 일은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만약 그날 책봄의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책봄이 그곳에 없었더라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책봄은 모든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작디작은 책방이지만, 공간이 품은 온도는 칠 년치 봄을 밀어 넣은 것 마냥 따스하다. 소규모의 독서 모임부터 작가와의 만남까지. 이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봄을 선물하고 꽃을 피워내곤 한다. 금리단길에서 꾸준히 읽고 쓰는 즐거움을 전도하는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무수한 질문을 품고 최현주 대표님을 찾아갔다.




금리단길에서

독립서점 책봄을

운영하는

최현주입니다.











어떤 계기로 독립서점을 시작하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책봄이 생기기 전에 다른 지역에 있는 독립서점을 자주 다녔어요. 독립출판물의 매력에 푹 빠졌었거든요. 처음에 독립 서점을 갔을 때, ‘이게 정말 책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한 책들이 많았어요.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내가 생각했던 판형의 책이 아닌, 다양하고 독특한 판형과 장르의 책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저 책들을 모두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렇게 매력적인 책이라면, 다른 분들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독립서점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독립출판물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무엇인가요?


서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책을 만든 사람과 책을 파는 사람이 연결된 구조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거 같아요.

 일반 서점 같은 경우는 책을 주문할 때 총판에 주문을 해요. 중간 유통자가 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죠. 그런데 독립 서점은 독립 출판물을 만든 제작자와 판매하는 사람이 직접 연락을 주고받아요. 제작자로부터 택배를 받았을 때 책에 붙어있는 작은 메모지나 섬세한 포장에서 만든 사람이 이 책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가 보여요. 그러면 저도 그 책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더 잘 소개하고 싶고 더 잘 팔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들거든요. 책봄을 시작한 이후로 독립출판물이 더 좋아졌어요(웃음).


책을 소개하는 작은 메모지와 섬세한 포장 / 출처 : 책봄 인스타그램



이번 주말에 열리는 구미 독서문화축제 준비에도 함께하고 계시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으신가요?


이렇게 큰 독서문화축제에 참여하는 게 처음이에요.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하고 있는데 구미 시민뿐만 아니라 타지에서도 많이 오시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잘 대접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시는 분들이 ‘나 오늘 굉장히 대접받았다!’는 생각이 드시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웃음).



오는 주말, 구미에서 열리는 독서문화축제 / 출처 : 구미시립도서관 홈페이지



그러면 혹시 준비하시면서 따로 두신 목표 같은 게 있을까요?


이 행사가 계속 연속될 수 있는 게 모두의 목표일 거 같고요. 또 저는 독립 출판 마켓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구미에서 독립 출판 마켓이 열리는 것 자체가 처음이어서, 많은 분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행사를 잘 이끌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구미에서 독서문화를 주도하시는 1인으로서 특별한 사명감 같은 게 있을까요?


사실 제가 문화를 주도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요. 그냥 문화를 향유하는 그런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그래서 뭔가 문화를 주도한다기 보다는, 저희는 되게 재미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재미난 일을 많은 사람들이랑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해주셔야 저희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


책봄이 매달 선정하는 베스트셀러


1인 책방을 운영하시며 책 판매부터 모임 기획, 진행까지 혼자 하시기가 쉽지 않으셨을 거 같아요. 책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동력은 어디서 얻나요?


책방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손님분들이 가끔 제가 생각지도 못한 말들을 해 주실 때가 있어요. 구미에서 이런 공간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 혹은 유지해 줘서 고맙다는 말···.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그냥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인데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가끔 들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오래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죠.



대표님을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책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이 되게 어렵더라고요(웃음). 좋아하는 책이 많아서 하나를 꼽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떠오르는 장면들이 몇 개가 있어요. 제가 어릴 때, 한 번씩 잘한 일이 있으면 엄마랑 손을 잡고 서점에 갔어요. 엄마가 보상처럼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게 해 줬거든요. 그렇게 고른 책은 너무 소중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아마 엄마가 저에게 선택권을 주고 책을 고를 수 있게 해 준 그 순간부터 책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장 하나만 알려주세요!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멈추지도 말고’라는 말을 되게 좋아해요. 제가 되게 성격이 급하거든요(웃음). 사실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는 건 좋은데, 서두르거나 조급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좋게 말하면 추진력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신중하지 못한 면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를 다스리는 마음에 ‘서두르지 말고’.

근데 또 천천히 오래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잖아요. 차분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느리지만 오래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의미의 ‘그러나 멈추지도 말고’. 이 말을 들었을 때 꼭 기억해 두고 싶더라고요.

책봄의 테마곡. 콜드의 Your Dogs Loves You. 실제로 운 좋은 날 책봄에 가면 귀여운 진돗개 한 마리를 볼 수 있다. / 이미지 제작 양지연




글, 편집 : 김예빈

사진 :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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