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빠르게 달리게만 하면 놓치는 것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몇 시간이 너무 길어서 요약정리본을 본다. 유튜브 영상을 2배속으로 본 지도 꽤 됐다. 이렇게 아낀 시간을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는 것도 아닌데도 오랜 시간을 쓰는 게 너무 귀찮아졌다. 인터넷에 몰아보기 콘텐츠와 핵심만 들어있는 쇼츠가 늘어나고 x개월 만에 자격증 따기 x일만에 시험 합격하기 같은 내용이 인기인 걸 보면 나만 성급하게 변한 건 아닌 것 같다.
이전보다 더 빠른 걸 세상이 더 요구하는 느낌이랄까?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클릭 하나면 자판기처럼 바로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날로그는 때론 뒤떨어지는 낡은 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하고 이렇게 짧게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소 1년 이상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한다. sns도 한몫하는데 대부분 멋진 결과만 보여주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얻은 것처럼만 보이고 그것이 평균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누구나 투자하면 결과가 빨리 나오길 바란다. 하지만 분명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나올 수 있는 결과들이 있는데 그런 단계들은 생략하고 시작과 끝만 있길 바란다. 중간의 과정들은 매우 고통스럽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만화나 드라마에도 현생에서 죽고 이 세계에 부자나 능력자로 다시 환생하는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과정을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투영 돼 있다고 느낀다. 처음부터 완벽한 상태로 등장해서 원하는 것을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으니까. 특히 최근 그런 소재가 많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 많은 사람들의 현실이 많이 힘들단 뜻일 거라 씁쓸해진다.
한 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점은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못나고 볼품없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허황된 이야기를 한다고 비웃음을 산 시간을 보낸 일론머스크가 지금의 성공을 거둔 것처럼. 그리고 과정이란 긴 시간을 거쳐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건 그때와 지금 모두 동일하다.
재미있는 소설들이 주인공이 태어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지 않듯이 그 사이에 수많은 위기를 겪어야 독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결과를 얻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급하게 돌리지 않아도 결국엔 우린 죽는다. 죽음이란 바꿀 수 없는 끝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서두르기만 한다면 죽음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성급하지 않고 시간의 여유를 갖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과정에 창밖의 풍경들, 맛있는 음식, 잔잔한 음악에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 중이다. 최악으로 도착한 목적지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아름다운 풍경, 달콤함과 짠맛, 기분 좋은 선율은 기억에 남을 테니까.
그동안 난 드라마나 영화 요약본을 보면서 배우들의 실감 나는 표정연기, 중요한 복선, ost, 미장센을 놓쳤을 것이다. x일만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도 그 지식을 활용하려면 x일의 몇 배가 되는 시간을 다시 투자해야 할 것이다. 빠르게 결과를 얻는 건 매우 솔깃하지만 그만큼 잃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건 합당한 비용을 지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