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중심을 잡는 것
뭐 해 먹고살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땐 전공을 정해야 해서, 취업을 앞두고 있을 땐 직무를 정해야 해서 했던 질문이었다. 나의 답에 확신을 했던 시기도 있기도 했지만 10년을 넘게 아니 평생을 했던 저 질문에 아직까지도 난 답을 명확히 내리기 어렵다. 어쩌면 틀린 답이 없는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는 것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PD를 꿈꿨지만 1~3시간 자면서 편집에 매달리는 것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느꼈고, 광고대행사 인턴을 하면서까지 마케팅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어쩌다 보니 인사 쪽 일도 하게 됐다.
회사원은 지루해서 나와 맞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나는 직장에서 원활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노무사로서 또 다른 커리어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PD를 꿈꾸던 나에게 미래에 넌 노무사가 될 거야라고 하면 얼마나 놀랄까 싶다.
처음엔 인생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를 맞춰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의 벽이란 것은 존재했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이럴 때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거센 바다의 흐름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배는 부서진다. 그렇다고 단지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 무기력하게 표류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지금 나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노를 젓다보면 언젠가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어딘가 다다르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
인생은 알 수가 없어서 내가 헤엄치는 방향과 반대되는 조류를 만나 엉뚱한 섬에 다다르기도 하고 공들여서 만든 배가 큰 폭풍에 휩쓸려 난파선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폭풍을 부르고 싶어서 부른 것이 아니듯 가고 싶은 직장에 티오가 없는 것은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어떤 회사를 가느냐가 아니다. 직장은 단지 하나의 다리를 구성하는 돌일 뿐이다. 어딜 가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까를 고민해야 한다. 정답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내가 그렇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고 싶었던 이유는 사람에게 소명이란 것, 세상에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 크다. 태어난 김에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에서 보람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의미 충만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고 여러 강연을 들으며 나의 소명은 무엇일지 정해진 답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긴 고민 끝에 깨달은 건 소명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이 정해준 운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이유를 정하고 만들어 가는 것뿐이다. 타고난 소명은 그저 신화일 뿐이다.
사실 이 글은 가장 처음 썼지만 확신이 서지 않아서 몇 번을 고쳤다. 가장 어렵고 힘든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정리하는 것이기에 이것이 맞을까를 고민하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뭐 해 먹고살지?”라는 막막한 질문은 이제 나에겐 “뭘 더 하고 싶은지?”란 도전의 질문으로 바뀌었다. 나의 삶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은 채로 조금씩 비어 있는 자리를 채워 나갈 것이다. 지금의 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한 걸음씩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의 항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과 결론을 보면 중간에 생략해도 될만한 과정들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헤매고 실수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흘러가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열심히 노를 저으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처럼 누군가는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불안정해 보이는 도전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에게만 불안정해 보일 뿐 실제로는 위태로운 줄타기가 아닐 것이다. 이전과 다르게 나는 거친 파도 속에서 가라앉지 않는 법을 배웠으니까.
어디를 가야 할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은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도 스스로 강한 확신을 가진다면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