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Soo Oct 02. 2023

늦은 이별

이젠 안녕

언제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고 죽음이 아닌 이혼으로 끝이 났었으니까...


그녀는 이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몇 번의 말다툼 속에서 서로 상처를 받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퇴근길 전화도 하지 않게 되었다.

대화가 줄어감에 따라 함께 식사하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만남이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메꿔가야 하는 고민하며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 간의 먹방으로 인해 불어난 살들이 눈에 거슬렸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동안 머리로만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일들을 시작했다. 귀로만 듣던 경제공부를 책상 앞에서, 책을 통해서 시작했다. 얄밉게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가 그동안 해왔던 말들이 실타래 풀리듯이 풀리는 듯했다. '아, 그 얘기를 그래서 했구나...' 이런 것들,,

그러던 어느 날 그와의 대화가 그리웠고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 집에 너 물건도 몇 개 있는데 가져가야 할 것 같아."

얼마 전 좀 더 먼 곳으로 이사간 그에게 건네야 할 것들이었다. 

"그래. 그럼 내가 너희 집 쪽으로 갈게." 웬일인지 그가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 뭐 먹고 싶은 것 있어?" 

"오랜만에 오니까 자주 가던 그 집 짜장면이 먹고 싶긴 한데..." 그가 대답했다.

"면 먹는 게 좀 거시기 하긴 한데 알았어. 오랜만에 나도 그 집 짬뽕 먹어야겠다. 나가자."

그렇게 그들은 그녀의 집을 나섰다. 


여느 때처럼 그들은 미니 탕수육과 삼선 짬뽕 2그릇을 주문했다. 실은 짬뽕 맛집이긴 해서인지 그는 메뉴를 바꾸었다. 

"그래 해물 많은 게 낫지"  그녀는 카드를 꺼내 키오스크 카드 입구에 넣으며 말했다. 

항상 음식값은 반반이었고, 계산은 거의 그녀가 했었다. 그날도 다름은 없었다.

익숙했던 음식점에 오랜만에 가니 그곳 점원분이 그들을 알아보는 듯했다.

자리 잡은 테이블에 물병과 컵을 가져다주는 점원에게 그녀는 살짝 웃으며 "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건넸다. 왠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하며 그들은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실은 요즘 경제 공부에 몰입되어 있던 그녀는 이것저것 이야기들을 펼쳐 놓았고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현 상황에 대한 그 뒷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정보를 가진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요즘 왜 청약붐이 다시 부는지, 한국은 금융 선진국이 아닌지 등등 시간은 흘러갔고 식사를 마치고도 그들은 한참 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녀는 이야기를 나누며 왠지 그들에게 이별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리를 나와 물건 살 것이 있다며 그녀는 그와 함께 윗 층의 다이소로 향했다. 

새로 이사한 그에게 필요한 물건은 다 샀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평상시처럼 쇼핑을 마쳤고 무거운 짐은 그가 들어주었다.

그렇게 건물을 나와 다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마치 그들의 관계를 대변 하듯 이미 해는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아있었다. 

그들은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전과는 다른,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생겨있었다. 의식적으로 서로 가까이 가지 않았고 스치는 걸 피했다. 아마도 그녀는 이 만남이 마지막일 거란걸 동물적 감각으로 알았을 것이다.

자꾸 입에서는 어떤 말이든 하려고 튀어나왔고, 그가 몇 번 시계를 보는 것을 보았다. 

'아, 가야 하는데 나 때문에 못 가고 있었구나. ' 가끔은 지나친 배려를 하는 그의 습관을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들은 조금씩 발걸음을 서둘렀고 어느덧 주차장 입구에 다다랐다. 


그가 짐을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나 이만 가볼게. 조심히 들어가."

"응, 운전 조심하고 잘 가."

"응, 조심히 들어가."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을 두어 번 하면서 그는 사라졌다. 


짐을 들고 집에 도착한 그녀는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아야 됨을 직감으로 알았다. 

서로를 미워하기 전에 멀어짐을 택하고 서로가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이별을 택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며칠 동안은 마지막 순간이 떠나질 않았고 급기야, 그녀는 가끔 보는 친구로 지내면 어떨까 하는 메시지를 보내 보기도 했다. 물론 바보 같은 행동이었고 역시 답장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옆을 비워야 다른 사람이 올 수 있다는 글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별할 때마다 반복되는 패턴을 끊어야 할 때임을 알았다. 그런 패턴이 전 남편과의 인연을 끊지 못하게 한 원인이었단 것도 알았다. 

'달라지길 원한다면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마음을 다 잡았다. 다시 운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그 외 시간에는 책을 보거나 유튜브로 세상에 귀를 기울였다. 퇴근 후에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운동을 해서 인지 밤에 잠드는 게 어렵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날을 보내니, 점차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에 대한 생각들은 사라져 갔고 실직적으로 당장 그녀가 헤쳐나가야 하는 일들이 대신 그 자리를 메꿔나갔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 했고 다음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며 장바구니를 채우고 오히려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 외로움은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아니었다. 이제 외로움이란 인생의 동반자이며, 외롭다고 외칠 시간에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에 바빠졌다. 
'내가 이렇게 변해가는 건 성장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그녀는 생각했다. 무엇이 든 간에 마이너스 효과는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그로부터 배운 혼자 살아가기에 유용한 삶의 지혜와 경제 지식, 이혼 후에 힘든 시간을 잊도록 그녀의 곁에서 있어준 그에 대한 고마움은 끝까지 간직하기로 그녀는 다짐했다. 그 속에든 아픔, 슬픔, 기쁨과 즐거움...그 모든 것을 포옹하고 기억 저편에 넣어두기로 했다. 

선선한 가을이 여물어 가는 시기 그렇게 그녀는 또 한 번의 이별과 떠나보냄을 겪는 중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질 결심(Separatio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