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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Jan 30. 2024

#1

비행

인천공항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British Airway를 기다리며 희영은 어떤 여행이 될까를 상상했다.

선영의 말처럼 '낯선 곳에서의 낯선 이와의 드라마 같은 러브스토리는 어떨까? ㅋㅋㅋ' 혼자 키득키득거리다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둘러본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이 의미 있는 추억의 여행이 되기를 바라보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희영의 자리는 가운데 오른쪽 끝자리였다. 생각보다 탑승객들이 외국인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녀의 옆으로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실례합니다. 제가 옆자리네요."

"아, 잠시만요. 제가 들어가시게 일어날게요." 희영은 그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훤칠한 키에 슬림한 몸매,  뿔테 안경과 살짝 컬이 있는 브라운 컬러의 헤어를 갖고 있었다. 조금은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회색 후드티와 재킷, 깔끔한 나이키 운동화와 청바지가 그를 젋어 보이게 했다.

나이 들어도 청바지를 입는 남자.. 멋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자리를 잡고 희영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왠지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게 느껴졌다.

스튜어디스들이 자리를 정리하며 윗 짐칸을 닫기 시작했다. 곧 이륙준비를 시작할 모양이다.


희영은 항상 이 순간이 즐거웠다. 무겁게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려 나간다. 이 무거운 쇠덩이가 최고 속도를 달려 중력을 거슬러 부웅~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순간은 항상 가슴벅참을 느꼈다.  실은 이 순간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비행기가 안정권에 접어들자 안전벨트 등이 꺼지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희영도 아이팟과 핸드폰을 꺼내 음악을 들을 채비를 했다. 식사가 나올 때까지 음악을 들으며 어젯밤 설렘으로 못 이뤘던 잠을 보충했다.


두 번의 식사가 나오고 희영은 그녀가 좋아하는 와인을 홀짝였다. 옆 자리의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지 음료만 마시는 모습이었다.

어느덧 어둠이 찾아오고 몇 잔의 와인을 마신 희영이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가 대답했다.

"유럽으로 여행 가세요? 아니면 출장?"

"여행이요. 유럽은 처음이에요. 그쪽은요?"

"저도 여행이요. 저도 유럽은 처음이에요."

그렇게 그들은 그 긴 비행의 첫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런던에서 로마로 가서 거꾸로 여행지를 거쳐 다시 런던에서 서울로 가는 일정이었다.

"아, 나랑 완전 반대네요. 전 런던에서 파리, 이태리로 들어가서 로마 찍고 런던으로 다시 와서 서울로~ 같은 일정이면 같이 다녀도 좋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ㅎㅎ" 희영이는 그녀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함께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웃을 때 눈은 사라지고 양 쪽 볼에는 살짝 보조개가 파였다. 하얗고 계란 형의 동그란 얼굴과 까만 머리색은 희영의 귀여운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참,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할까요? 전 장서준이라고 해요." 서준이가 말했다.

"네, 그렇네요. 이것도 인연이네요. 전 진희영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서준은 54살이었고 두 아이가 있는 싱글남이었다. 희영이는 그보다 5살이 어렸고 몇 년 전 이혼 후에 혼자 지내고 있었고 그녀에게 아이는 없었다. 몇 잔의 와인 때문인지 비행기 안의 옅은 조명 때문인지 희영의 눈에 그 뿔테 안경너머 보이는 그의 눈이 참 순수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씩 보여주는 그의 웃음소리와 천진한 말투도 그랬다.

"서준 씨 말투가 꼭 유재석 같아요. ㅎㅎ 실례되었다면 미안해요."

"아니에요. 실은 눈도 작고 안경을 써서 그런지 종종 그런 얘기 들었어요."

"아, 외모가 아니고 말투가 좀 유재석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내 귀엔 그렇게 들리네요."

"그런가요?!" 서준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이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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