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칼 못 보셨소?

by 뚫어

선미가 쑥 캐러 가자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옴마 10분만 잘 테니까 오데 가지 말고 딱 전방 보고 있어라이. 잠이 와서 딱 죽굿다."

선미 따라 쑥 캐러 갈 것인지 얌전히 가게를 지키다가 엄마가 깨면 졸라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인지 고민했다. 엄마가 깨면 쑥 캐러 가는 일을 절대 허락할 리가 없었다. 숙제를 하나도 안 했기 때문이고, '나'라는 어린이는 들로 산으로 나가면 해가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기 때문이다.

결정했다. 쑥 캐러 가기로 했다. 가게에서 시커먼 비닐 봉지와 연필 깎는 칼을 챙겼다. 선미가 쑥 다 캐고 나서 인형 공장에 가서 예쁜 거 있으면 줍자고 했기 때문에 봉지를 두 개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우리 동네에서 20분 남짓 떨어진 곳에 도자기 공장이 있었는데, 만들다 잘못 된 토끼 모양 도자기나 화병을 한 곳에 쌓아 버려둔 곳이 있었다. 귀퉁이가 조금 깨진 걸 줍는 날이면 횡재한 거였다. 주워온 도자기 인형을 물감으로 색칠해서 방을 장식하거나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오다 주웠다."를 시전하며......


엄마가 깰까봐 조마조마한테 선미가 오지 않았다. 문디 가시나, 뭐 한다고 이래 어정거리노. 구시렁 한 바가지 가 다하자 선미가 나타났다. 어쭈, 딱 달라붙는 청바지에 셔츠를 입었다. 쑥 캐다보면 추울텐데 얇디얇은 점퍼를 입었고, 예쁜 바구니를 들었다. 텔레비전에서 남자랑 여자랑 공원에 소풍가면서 도시락 담아가는 그런 나무 바구니였다. 이거 어디서 났노? 물어보니 할배 아플 때 손님이 가져온 과일 바구니라고 했다. 애석하게도 우리집에는 바구니가 없었다.


칼은 있었다. 꽃 그림이 그려진 과일 자르는 칼 말이다. 선미의 칼은 시커먼 과도였다. 나는 연필칼을 내려놓고 자랑스럽게 꽃그림 과도를 집었다. 그리곤 쑥 캐러 나섰다. 당연히 엄마 몰래 과자도 하나 챙겼다. 당시 슈퍼집 딸내미 위상은 대단했다. 과자 한 봉지면 나이 불문 온동네를 무릎 꿇릴 수 있는 절대 권력이었다.


봄내음 가득 실은 바람은 부드럽고 상쾌했다. 얕게 코를 골며 잠든 엄마가 안 됐긴 하지만 곧 깰 것이다. 10분이 지난지 한참되었고,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지산의 손님이 엄마를 깨울 것이기 때문이다. 선미한테 졸라서 바구니를 손목에 걸치고 꽃칼을 넣었다. 어린이날에 엄마를 졸라 하늘하늘 리본 달린 원피스를 사고야 말리라.


당시 나는 짧게 자른 머리를 파마해 몹시 뽀글거리고, 동그랬다. 긴머리가 하고 싶어서 엄마가 미용실 가자고 할 때마다 이리저리 잘 도망다닌 결과 어깨까지 오는 중단발이 되었다. 이렇게도 묶고, 저렇게도 땋고 멋을 있는대로 부렸는데, 안타깝게도 머리에 이가 생긴 거다. 엄마가 단박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 그랬더니 대성슈퍼에 오는 손님 마다 "야가 딸이가? 아들이가?" 하고 물었다. 속상한 엄마는 부러 "아들입니더." 했고 "그래, 맞제? 걸마 싸움 잘하게 생깄따." 는 소리까지 들었다. 딸이라는 표식으로 '빠마'를 결정했고, 이후 나는 내내 뽀글뽀글 빠마 머리였다.


볕 좋은 양지에서 쑥을 캤다. 토요 명화 이야기 하다가 엄마가 아침에 안 깨워서 '들장미 소녀 캔디' 놓친 거 이야기 하다가 우리 반 인기남 범진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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