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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Apr 22. 2022

음반 표지 이야기 2_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26

개인적 경험과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정한 때에 들으면 더 감동적인 곡들이 있다. 가을에 듣는 브람스 교향곡들이 그중 하나다.


십 년도 더 지난 오래전 늦은 겨울에 그런 경험을 했던 적이 있다. 봄날을 빌려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창밖은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겨울이었지만, 쏟아지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정남향의 우리집 거실은 봄처럼 따뜻했었다. 작은 라디오 겸용 오디오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이 흘러나왔는데 통통 튀는 듯한 쾌활함과 우아한 멜로디에 일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1악장.


지금도 이 곡을 들을 때면 거실 가득 쏟아지던 햇살과 그 공간을 채우던 소리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겨울과 봄이 공존할 때, 볕 좋은 창가에서
듣기 좋은 곡이다.



이전 글에서 표지가 매력적인 음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반 표지가 또 하나 있다. 오래전에 구입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5번> 음반이다. 카라얀과 어린 안네 소피 무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인데 그렇게 다정하고 뻐 보일 수가 없다.


굳이 케이스에서 음반을 꺼내 듣지는 않더라도 가끔씩 표지만 들여다보아기분이 좋다. 클래식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표지를 보면 저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 같다. (이 곡은 23번 글에서 힐러리 한의 연주 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냉정하고 폭발적인 카리스마로 유명한 지휘자 카라얀, 하지만 귀여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앞에서는 딸바보 아빠처럼 무장 해제되었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관계를 넘어 손주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같은 사랑이 느껴진다.

신통방통하다는 듯 애정이 듬뿍 담긴 얼굴로 눈을 맞추며 말하는 카라얀과 잘 알아들었다는  듯 자신감 충만한 표정으로 거장의 말에 귀 기울이는 어린 안네 소피 무터의 야무진 모습이 예쁘기 그지없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을 지휘하고 안네 소피 무터가 바이올린을 연주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 5번> CD 표지 사진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오스트리아 1756-1791)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피아노 연주를 하며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그런데 천재 아들에 욕심이 많았던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가 피아노뿐만 아니라 바이올린에도 재능이 있음을 알고 바이올린 곡을 작곡하라고 재촉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아버지 말을 잘 따르던 착한 아들 모차르트는 편지를 받고 나서 바로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작곡했다.


그렇게 탄생한 곡들이 바이올린 협주곡 2번부터 5번이다. (1번은 2년 전인 1773년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나이 열아홉 살인 1775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일이었다.

아들아, 너는 유럽 최고의 바이올린 솜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네가 바이올린곡을 열심히 쓰지 않는 것을 보니 아비가 무척 안타깝구나. 제발 신이 내린 재주를 썩히지 말기 바란다…….
박종호가 지은『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중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 Anne-Sophie Mutter (독일 1963~ )는 1976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루체른 음악제를 통해 데뷔했다. 이때 카라얀이 어린 무터의 괄목할만한 실력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베를린으로 초청했다.


그리고 1978년 열다섯 살의 무터는 드디어 카라얀의 베를린 필과 함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과 5번>을 협연했다. 연주는 대성공이었고 카라얀은 계속 벙글거리며 흡족해했다고 한다.


위의 음반이 바로 그 녹음이다. 열다섯 살은 우리로 치면 중학교 2학년이다. 그러나 연주는 어른의 연주 못지않게 훌륭하다.



1악장 Allegro (빠르게)

처음부터 일제히 터져 나오는 오케스트라 합주의 밝고 경쾌한 멜로디가 단숨에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이내믹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오보에가 "라빠빠~ 라빠빠~ 라빠빠~ 라빠빠~ "하고 마무리하는 순간(1:19) 독주 바이올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치고 들어와 강렬하면서도 우아하게 주제를 연주한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는 주제를 놓고 서로 대화하듯 나아가다가 기교를 뽐내는 카덴차(7:58~10:20)를 거쳐 웅장하게 종결한다.


https://youtu.be/JEPa0uT-bAg



2악장 Adagio (느리게)

오케스트라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아련한 선율을 느긋하게 펼쳐 놓으면 독주 바이올린은 그 위에 아름다운 주제를 살포시 얹는다. 이렇게 독주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가 깔아 놓은 부드러운 카펫 위를 사뿐히 걸어가는 느낌이다. 특히 현악기의 뒷받침을 받으며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연주는 연인들의 속삭임처럼 부드럽고 상냥하다.


https://youtu.be/VLqVBXPyo1w



3악장 Rondo Allegro (빠르게)

경쾌하고 빠른 춤곡 형식으로 주제를 다채롭게 반복한다. 중간쯤에 현악기의 피치카토 배경 위에 나오는 다소 느린 부분(3:30~4:40)을 꼭 들어보길 바란다. 주제와 다른 에피소드가 삽입된 부분인데 악장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색다른 재미를 준다. 마치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앙코르 곡을 듣는 횡재를 만난 듯한 기분이다. 마지막은 호른과 오보에가 묘한 여운을 남기며 차분히 끝낸다.


https://youtu.be/9DxIGEgVuzs




참고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손열음]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다음 클래식 백과, 음악세계 & 음악사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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