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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Mar 25. 2022

일석삼조(一石三鳥) _ 베토벤 <3중 협주곡>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24

우리 집 두 번째 차는 렉스턴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여기저기 여행하며 많은 추억을 쌓은 차였다. 크고 묵직한 SUV여  안정감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오디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고음은 날리지 않았고 깊은 저음의 울림도 허전하지 않았다. 이퀄라이저를 클래식 모드에 놓고 소리를 크게 키우고 들으면 집에 있는 오디오가 부럽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차에는 없는 CD플레이어도 있어서 더욱 좋았다.


딸내미와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눈 곳도 렉스턴 차 안에서였다. 몇 년 전 딸내미가 이천에 있는 반도체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기숙사 생활을 할 때였다. 금요일 밤에 집에 내려와 있다가 일요일 밤이면 기숙사로 돌아갔는데 내가 데려다주어야 했다.


일요일 밤 아홉 시쯤의 영동고속도로 하행선은 밀리지 않는 착한 길이 되어 운전하기 편했다. 딸내미는 조수석에 앉아서 CD를 틀고 계속 말을 걸어주었다. 차들이 많지 않아 과속을 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정속 주행했다. 가끔은 딸내미 모르게 팔 구십 킬로로 속도를 추기도 했다. 그래도 한 시간 남짓이면 이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함께 갈 때는 딸내미가 좋아하는 조성진의 쇼팽을 많이 들었고 혼자서 돌아올 때는 주로 베토벤 <황제>와 <운명> 그리고 <3중 협주곡>많이 들었다. 혹시나 졸음이 올까 봐 꽝꽝 울리도록  소리로 들었다. 깜깜한 밤중에 차의 전조등만 바라보며 듣는 베토벤은 또 다른 감동이다. 마치 불멍하는 듯한 느낌의 베토벤멍 이라고 할까?


이런 사연이 깃든 차를 강제 폐차시켜야 다. 이른바 공해유발 차량. 공해를 유발한다니 할 말이 없었지만 십 년이 훨씬 넘은 차를 그것도 불명예스럽게 폐차시키려니 사뭇 섭섭함이 적지 않았다. 특히 오디오가 좋은 차여서 더 아쉬웠다. 결국 나의 작은 음악 감상실 폐차시켰다.

굿바이 렉스턴~!  굿바이 오디오~!



베토벤의 <3중 협주곡 Triple Concerto>은 내가 가장 많이 듣는 클래식 중 하나다. 베토벤의 곡 치고 아주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 일석삼조(一石三鳥)가성비 좋은 음악이랄까? 내겐 아주 매력적인 곡이다. 한 번 들으면 몇 번을 반복해서 듣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협주곡은 하나의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지만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3개의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한다. 게다가 이 세 악기 연주자들의 기량은 뛰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케스트라는 물론 다른 2대의 수준 높은 독주 악기와도 호흡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탁월한 개인기는 기본이고 팀 플레이도 뛰어나야 하는 것이다.



베토벤 <3중 협주곡> 명반은 지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피아노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1915~1997), 바이올린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 첼로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의 음반(1969년 녹음)을 제일로 꼽는다. 구 소련 최고의 세 연주자들과 베를린 필을 이끄는 카라얀이 합세한 그야말로 세계 최고 전설들의 황금 조합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하도 강해서 녹음 내내 긴장감이 팽팽했다고 한다. 한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듯한 그 팽팽한 긴장감은 녹음 속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오죽하면 네 명이 한꺼번에 웃음 짓는 앨범 자켓 사진 한 장을 찍는 데에도 무척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불꽃 튀는 경쟁 속에서 실력을 뽐내는 카라얀이 지휘한 <3중 협주곡> CD _ 왼쪽부터 카라얀(지휘)  리흐테르(피아노)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한데 내가 많이 듣는 연주는 다니엘 바렌보임(아르헨티나 1942~)이 베를린 필을 지휘하면서 피아노를 치고 이작 펄만(이스라엘 1945~)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요요마(중국계 프랑스 1955~)가 첼로를 연주한 음반(1995년 녹음)이다. 특별히 요요마의 첼로 음색이 따뜻해서 좋아한다.


음색은 '음의 크기와 높이가 같더라도 감각적으로 다른 느낌으로 들리는 음의 특색'이라고 한다. 즉 음색은 "같더라도 (감각적으로) 다른" 주관적 느낌이다. 바렌보임, 펄만, 요요마의 <3중 협주곡>을 들을 때마다 기교 넘치면서도 따뜻한 요요마의 첼로 음색에 반하곤 한다.

배려 속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는 바렌보임이 지휘한 <3중 협주곡> CD _ 왼쪽부터 요요마(첼로)  바렌보임(지휘, 피아노)  펄만(바이올린)


 카라얀이 지휘한 음반이 타계한 전설들의 음반이라면 바렌보임의 음반은 살아있는 전설들의 음반이다. 또한 카라얀 음반이 불꽃 튀는 경쟁 속에서 뛰어난 실력을 뽐내는 명연이라면 바렌보임의 음반은 서로를 배려하면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품격 있는 연주다.



https://youtu.be/lrRwKskCVQg

서로 배려하면서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바렌보임(지휘, 피아노), 펄만(바이올린), 요요마(첼로)의 <3중 협주곡>


일반적으로 피아노가 들어있는 협주곡에서는 피아노가 주제를 제시한다. 하지만 베토벤 <3중 협주곡>에서는 첼로가 그 역할을 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첼로가 제시한 주제를 차례로 이어받아 연주하고 여기에 오케스트라가 가세하는 형식이다. 이런 첼로-바이올린-피아노의 연주 순서는 3악장 내내 이어진다. 이런 구조를 염두에 두고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 등 세 독주자들이 뽐내는 기교를 감상하는 것은 이 곡의 특별한 재미이다.    


제1악장 Allegro 빠르게

중후한 콘트라바스(더블베이스)의 저음이 조심스럽게 악장 문을 열면 현악기들이 가세하고 이내 다른 악기들도 일제히 밀고 들어와 빠르고 절도 있게 행진해 나아간다. 잠시 조용히 쉬어가는 듯하다가 대포를 쏘듯 "꽝~"(2:33)하고 신호를 울리면 첼로가 아름다운 주제를 제시한다. 이어서 바이올린이 장식하듯 이어받고 피아노가 영롱한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합류한다. 여기에 오케스트라가 가세하여 베토벤 특유의 웅장함을 완성한다. 1악장은 이렇게 계속해서 주제를 확장하며 반복해 나가는 형식이다. 세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즐거운 향연을 따라가면 된다. (개인적 감상이지만 4:00부터 4:13까지 요요마의 첼로 연주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제2악장: Largo 폭넓고 여유롭게(17:07~)

현악기가 서정적인 선율을 차분히 풀어놓으면 역시 첼로가 오래도록(17:30~19:20) 주제 선율을 연주한다. 이 부분의 첼로 연주는 매우 아름다워서 3중 협주곡이 아니라 마치 첼로 독주곡을 듣는 듯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한참 뒤에야(19:21) 다소곳이 들어온다. 서정적인 짧은 악장으로 쉼 없이 3악장으로 이어진다.


제3악장: Londo alla Polacca 폴란드 풍의 론도(22:45~)

3악장에는 빠르기 지시어 없이 '폴란드 풍의 론도'라는 말만 있다. 주제가 반복되는 폴로네이즈 춤곡 리듬을 가진 악장이라는 뜻이다.

2악장의 서정은 어느새 경쾌하고 흥겨운 춤곡으로 넘어와 있다. 특히 3악장에서는 세 독주 악기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타이밍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들이 주고받는 리듬감이 재미있다. 마치 무대 위의 댄서가 여러 명의 상대와 번갈아 가며 춤추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마지막에는 세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되어 웅장하면서도 기품 있는 피날레로 마무리한다.


폴로네이즈_17세기 궁정에서 귀족들 사이에 유행했던 춤이었지만, 지금은 일반화된 폴란드의 민속춤이다. 18세기에는 무용에서 독립되어 기악곡 형식이 된 보통 속도의 3박자 짧은 리듬 동기의 반복이 특징이다._[네이버 지식백과] 폴로네이즈(polonaise) (두산백과)
론도_A-B-A-C-A 형식의 작곡법. 하나의 주제 A를 먼저 제시한 후 다른 주제 B로 넘어갔다가 다시 A로 돌아오고, 또 다른 주제 C를 제시하고 다시 A로 돌아가는 스타일이다. 즉, 하나의 주제를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그 사이에 새로운 주제를 끼워 넣는 작곡법이라고 할 수 있다._나무위키



참고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네이버 지식백과] 베토벤, 3중 협주곡 (클래식 명곡 명연주, 황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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