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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Oct 27. 2024

몽골 4일 차 홍고린엘스 (1)

낙타와의 첫 만남

 어젯밤 자기 전 머리맡에 놓아둔 낙타 인형 덕에 기분이 좋다. 욜링암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낙타 인형을 샀다. 낙타 인형은 후에 가게 될 바양작이 종류도 많고 품질도 훨씬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도저히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귀여움이었다.


 까슬까슬한 부직포 같은 촉감의 낙타 인형은 낙타와 양에게서 빠진 털을 모아 직접 만든 수제 인형으로, 통칭 '진짜 낙타 인형'이라고 불린다. 그에 반해 내가 산 인형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가짜 낙타인형'. 가짜라는 말에 순간 흠칫해 사지 말까 망설였지만 금세 마음을 고쳐 먹었다. 저걸 안사면 분명히 눈에 밟힐 거다. 한국 가서도 생각날 거다! 그래- 자고로 기념품은, 귀여우면 장땡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가짜면 어떠하고 진짜면 어떠하리! 짝퉁이어도 나는 이 녀석이 더 좋다. 아주 마음에 쏙 든다. 한국에서 파는 곰인형처럼 털이 훨씬 복슬복슬해서 자꾸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오늘은 이 낙타와 함께 몽골 투어의 하이라이트, 고비사막홍고린엘스로 떠날 것이다.

귀여운 녀석- 넌 내 거야!

 한국에서는 아침을 제대로 챙긴 적이 없었는데, 몽골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비장하게 일단 뭐라도 든든히 챙겨 먹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토스트가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특히, 오늘은 일정을 생각한다면 더욱더 많이 먹어 두어야 한다.


 오늘은, 아주 기념비적인 날이다. 바로, 홍고린엘스 등반. 고비 사막의 모래 언덕을 등반하는 일정으로, 몽골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정수라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수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홍고린엘스에 대해 무지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홍고린엘스가 고비 사막의 안에 있는 건 줄도 몰랐다. 별이 가득한 몽골 밤하늘 사진 한 장보고 몽골 여행을 충동적으로 예약했기에, 동행들과 만남을 가지기 전까지는 사막을 등반하는 줄도 몰랐다.  


 사막 등반이라고? 여행 직전 급하게 여행 자료를 조사하며 홍고린엘스의 명성(이라 쓰고 악명이라 읽는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아니 아주 많은 이들의 간증이 가득했다. 뭐라더라- 다리가 푹푹 빠지는 모래 언덕을 오르다, 죽을 뻔했다- 라든가, 진실로 사경을 헤맸다- 라든가, 눈앞이 노래졌다- 라던가?


 결국 등반을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속출했다고 했다. 대체 어떻길래? 그래봤자 모래 아닌가? 나름 조깅과 헬스로 단련해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지만, 슬슬 걱정이 되긴 했다. 우선 사막이잖는가? 겨울에도 히터를 틀지 않고, 여름에는 에어컨과 떨어지지 않는 자칭 '온열인간'에게는 너무나 혹독한 기후다.   


암석 사막 지대 위로 작열하는 햇빛

 '고비'란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라는 뜻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막으로 동서길이는 무려 1600km에 이른다. 우리는 흔히 사막하면 모래사막을 생각하지만, 고비사막 대부분의 지역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암석 사막이다. 또 넓은 초원지대도 있어 푸르공을 타고 달릴 때는 사막 언덕보다는, 모래와 돌이 섞인 땅과 낮은 풀이 함께 있는 초원을 오히려 더 자주 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홍고린엘스는 고비사막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모래언덕이다. 사막지대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쉽게 접근할 수 없으며, 높이 약 300m, 폭 5~20km, 길이는 무려 185km에 달한다. 이곳은 바람이 굉장히 센 지역이기도 한데, 바람에 부딪히는 모래 소리가 끊임이 없어 '노래하는 모래언덕'으로도 알려져 있다. 랑이의 소리라는 '홍고린(hongoryn)'이라는 단어에서 이름도 따온 것이다.


 푸르공 이동 중에 시내가 추천해 준 사진 스폿에 잠시 내렸는데, 벌써 날씨가 심상치 않다. 도로 위 아스팔트에서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묘하게 들린다. 이거... 설마 끓고 있는 건가? 오 마이 갓! 도로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그리고 기억할진 모르겠는데, 몽골의 푸르공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익고 있다. 아주. 장렬하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신경 쓰지 않게 될 즈음 오늘 묵을 게르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내린 순간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더위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 이것이 세계지리 교과서에서 연평균 강수량이 250mm 이하인 사막기후라는 것이구나! 책에서 보던 숫자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일 년에 비가 몇 mm 온다는 걸 외우는 게 무슨 소용이랴. 이곳이 고비 사막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는 없다. 한국에서의 더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의 더위가 습한 찜통 속 더위라면, 이곳은 에어 프라이어 속에서 구워지는 치킨이 된 기분이다.

 

 차라리, 바짝바짝 땀이라도 났으면 하는 기분이다. 바삭하게 말라가는 기분. 조금이라도 시원할까 싶어 게르에 들어갔다. 오 마이갓! 더 덥다. 찜기다. 에어컨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여기에 누워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명의 위협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중 가장 강한 것은, 눕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나는, 게르에 위에 쓰러져 그대로- 기.절.했.다.


 흐느적거리며 깨어나니, 머리가 띵했다. 물에 젖어 흐물흐물해진 휴지가 된 것 같다. 드디어 다리가 녹아버린 건가? 더위에 취해 몽롱해져서 입맛도 없다. 이틀은 내리 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더위에 미각을 잃어버린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었나 보다. 점심 메뉴로 입맛을 확 돌게 해줄 매운 음식이 나왔다. '반쉬'라 불리는 이 메뉴는 작은 만두가 들어간 양고기 탕인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만둣국과 굉장히 비슷하다.

몽골의 반쉬. 육개장과 소고기뭇국 사이의 맛이 났다.

 몽골의 전통 반쉬는 갈비탕처럼 맑은 고깃국물이지만, 지금 내 눈앞에는 오랜만에 보아 더 먹음직스러운 빨간 국물이 담긴 그릇 위로 김이 풀풀 피어오른다. 한술 뜨니, 익숙하게 자극적인 빨간 매운맛이 온몸에 퍼져, 지쳐있던 몸뚱아리에 생기가 돈다. 입맛 없다는 말을 내뱉은 입이 민망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한국인 여행자들을 위해 특별히 약간의 개량을 보태 조금 맵게 만든 여행자용 음식이라고 한다.




 식사를 마치니 내가 지금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들었다. 동행 중 1명은 이미 사막 기후의 불볕더위에 두 손 두 발을 다 든 채로 게르에 휴식을 취하러 갔다. 여기서 움직이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였다.


 오호라! 꽤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귀가 팔랑댔다. 평소의 나였으면 이미 귀차니즘과 배터리 방전으로 나가떨어지고도 남았다. 그러나, 일전에도 말했듯 ‘여행을 왔기에’ 약간의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낙타를 타고 고비 사막을 구경하기로 한 것이다.


 햇빛에 타 죽지 않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쿨링 소재 옷에 팔토시, 기다란 레이스와, 모자, 선크림과 선글라스까지 중 무장을 했다. 한사랑 산악회에 다닐 듯한 아주머니 포스가 물씬 난다. 아참참! 그리고 꼭 필요한 것! 장갑을 챙겨야 한다. 낙타 체험을 하고 나면 낙타 향이 무조건 배이기 때문에, 비싼 것 필요 없고 목장갑이 최고다.

   

앉아있는 낙타에게 한 발짝 다가가 보기

 

 등에 혹을 단 채로 따가운 햇볕 아래 있는 낙타들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영 지쳐 보여 타기가 미안하다. 속눈썹 연장을 어디서 했냐고 물어보고 싶은 기다란 속눈썹 아래 졸린 눈을 숨기고, 심심한지 발굽으로 딱딱한 모래 바닥을 소리 나게 파내고 있다. 툭 튀어나온 둥그런 입은 신기한 모양으로 꿀렁거리며 움직인다.


 그리고 낙타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높이에 위압된다. 크다! 말보다 크다! 진짜 크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키가 커서 정말 놀랐다. 내가 이걸 탄다고? 두려움과 흥미로움이 동시에 몰려온다. 이거 혼자 뻐적거리며 타다가, 낙타의 성질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떨어지는 그대로 다리 하나 정도는 거뜬히 부러질 것 같은 느낌이다.


 앉아있는 낙타의 혹과 혹 사이 안장에 다리를 올려 탑승하면, 낙타가 꿀렁거리면서 천천히 일어난다. 이동할 때는 떨어질 수도 있으니, 두 손으로 낙타의 혹을 꼭 잡아야 한다. 따로 손잡이가 없으니 놓치면 안 되고, 장난을 쳐도 안된다. 혹이 뜨뜻하고, 생각보다 말랑거려서 주물주물 만져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낙타 목이 180도 돌아가는 것을 보고 참았다. 까불다간 내 얼굴에 침을 뱉을지도 모를 일이다.


 관광객들은 처음부터 낙타를 혼자 탈 수는 없기 때문에, 낙타 2~3마리당 1명씩 현지 숙련자가 함께 낙타를 몰아준다. 청년 한 명과 꼬마 아이 한 명이 우리 일행의 담당으로 배정되었다. 나는 다른 낙타보다 조금 더 귀엽게 생긴 작은 낙타를 탔는데, 그래서 그런지 꼬마 아이가 내 옆에서 낙타를 몰아줬다.


 너무 작아서 낙타를 끌 수나 있으려나 싶었는데, 고삐를 단단히도 쥐고 우리 앞에서 타박타박 걷는다. 10살이나 되었으려나. 낙타를 몰고 능숙하게 고비사막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지도도 없는 이곳에서 길을 어떻게 찾는 걸까?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도, 햇볕이 따갑다.


 어느 순간 사막이 아니라 흰 도화지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새파랗다 못해 하얗게 느껴지는 하늘과, 햇빛을 받아 쨍하게 빛나는 모래가 하나의 색이 된 듯하다. 낙타 혹은 꿀렁거리고, 뜨거운 햇살은 내리쬐고. 게르에서 멀어질수록, 세상도 고요해지는데, 머리는 깨끗해지는 것 같고... 잠깐만, 이거 일사병 아니겠지?

  


  

 나는 문득,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꼬마가 모는 낙타를 타고 왔다 갔다 40분을 있었다. 덥지 않으려나? 오늘 평일인데, 학교는 안 가나? 아- 갔다 왔나? 낙타를 타고 있어서 망정이지 걷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한데, 얘 괜찮은 건가? 그래- 사막에 살다 보니 더위에 적응력이 강하겠지? 잠깐만, 아무리 비용을 지불했다지만, 이거 아동학대 아닌가?

낙타를 태워주던 꼬마. 어쩐지 악덕 주인이 된 기분.

 이놈의 직업병. 사막 한가운데서도 결국 아동학대를 외치다니. 젠장! 하지만, 낙타를 모는 아이의 손이 너무 자그마해서 눈에 걸렸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태우고 싶다. 교실에서 떼를 쓰던 또래 한국 아이들이 생각났다. 안절부절인 나에 비해 그 아이는 담담했다. 비록 꼬마지만, 멋진 프로였다.


 선글라스도 없이 그 드넓은 사막을 어떻게 걷는 건지, 대체 길은 어떻게 찾는 건지 낙타를 타는 내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잔뜩이었지만, 아는 몽골어가 없었다. 뮤지컬 빨래 보면서 솔롱고한테 몇 마디라도 배워 놓을걸 그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이드가 미리 언질을 준대로 낙타 투어가 끝난 후, 팁을 넉넉히 주는 것뿐이었다.




 낙타 투어에서 돌아온 뒤, 동행들과 맥주를 마셨다. 매점에 말도 안 되게 시원한 냉장고가 있었다! 미지근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 만큼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맥주와 아이스크림이 가득했다. 실제 물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었지만,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아이스크림과, 물, 그리고 시원한 맥주 6캔을 신나게 사들고 와, 게르 뒤의 손바닥 만한 그늘에 들어가 작은 의자 6개를 깔아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아까도 말했지만 게르 안은 만두 찜통만큼 덥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 조그마한 그늘과 잠깐씩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게 느껴지는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앉기가 무섭게 맥주캔을 깡 따고, 목구멍을 열어 시원하게 들이켰다. 오! 맥주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해도 탑 3안에는 들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한 낮인데도 꽤 큰 맥주를 모조리 다 마시고, 아이스크림까지 신나게 먹고, 배를 두드리며 그 뜨거운 게르에서 다시 낮잠에 빠졌다.  


 물론 그때까지는, 시원하게 들이켠 그 맥주가 다가오는 홍고린엘스 등반의 큰 화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말이다.


-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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