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성조 Oct 28. 2024

몽골 4일 차 - 홍고린엘스 (2)

인생의 고비에서 만난, 잊지 못할 석양 

 낙타를 타며 고비 사막도 보고, 시원한 맥주도 한잔 하며 배를 두드리다 보니 졸음이 몰려온다. 마침, 홍고린엘스 등반을 위해서는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야 해서 낮잠을 잤다. 처음에는 게르 안에서 잠들었다가, 더위에 지쳐 게르 밖에 돗자리 한 장 덜렁 깔아놓고, 얼굴 위에는 햇빛을 가릴 잠바를 뒤집어쓰고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모래사막 등반은 보통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저녁 즈음에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첫째, 한낮에 그 뜨거운 모래 언덕을 오르다 가는 더워서 그대로 익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홍고린엘스 모래 언덕 꼭대기에서 보는 일몰이 아주 장관이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힘들까? 그리고, 대체 얼마나 아름다울까? 보통 여행지에서 고통과 아름다움의 정도는 정비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래봤자 모래'라는 생각에는 큰 변함이 없었다. 모래가 뭐가 그렇게 힘들겠어? 높이도 300m 정도밖에 안 되는데. 산도 아니고. 그리고, 모래가 뭐 얼마나 대단하게 아름답겠어? 그냥 모래인데.


고비 사막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장황하게 서술하기 앞서, 시내 가이드가 해준 한 마디를 첨언하자면 그렇다.  


 "고비를 가보지 않은 자, 몽골을 논하지 말라."라고!



 차를 타고 홍고린엘스 근처에 도착하니, 모래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인터넷에서 '사막'을 검색하면 의례적으로 나오는 사진들이 펼쳐지는데, 모래 언덕의 둥근 굴곡감이 특히 눈에 띈다. '생각보다 크지는 않네? 아- 우리가 저기를 올라가는구나' 하는 와중에, 믿기 힘든 걸 발견해 버렸다. 모래 위에 웬 까만 개미들이 줄줄이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콩국수 위에 뿌려진 검은깨들이 점점이 움직이고 있는 광경을 보자마자 목 뒤로 소름이 섬찟하게 돋았다.


 불길한 예감은 왜 매번 틀린 적이 없는 것인가- 그러니깐, 그건 진짜로 사람이었다. 언덕을 등반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니깐, 저 검은깨 만한 점들이 사람이라면-? 저 누런 모래 언덕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게 아니었다. 무지하게 높고 엄청나게 거대한 거였다.


 홍고린엘스의 위압감은 다가갈수록 더 대단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모래 언덕이 우리를 향해 우뚝 솟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던데,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마음을 다잡으며, 언덕에 오를 준비를 해본다.


 우선 신발은 벗고 맨발로 걷는다. 언덕의 모래 입자가 고와 맨발로 다녀도 다칠 일도 없을뿐더러,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가면 꺼슬거려 오히려 불편하다. 다만 여름이 아닐 경우에는 해가 지면 발이 시릴 수 있으니 유의하자. 모래 바람이 불 것을 대비해 천 마스크를 챙기고, 오늘도 역시나 선크림과 썬스틱을 꼼꼼하게 듬뿍 발라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준비물! 바로 썰매다. 시내 가이드는 우리를 위해 빨간 플라스틱 썰매를 하나씩 준비해 주었다. 어렸을 적 타던 눈썰매랑 똑같이 생겼는데, 올라갈 때는 높은 모래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지만 내려갈 때는 이 썰매를 타고 언덕 정상에서 미끄러져 내려온다고 한다. 한 마디로, 눈썰매가 아니라, 거대한 모래썰매다.


 썰매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무게가 나간다. 모래썰매- 분명 재밌긴 하겠다만 안타도 되니 몸을 가볍게 하고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언덕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썰매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된다.

홍고린엘스의 초입 부근. 아직은 경사가 완만하다. 저 멀리 보이는 아주 작은 점들은 모두 사람이다.  

 모래 속으로 발이 쑤욱 들어간다. 어라라? 잠깐만-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렇다. 썰매는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모래 언덕 등반을 위해, 삽처럼 썰매를 찍으며 걸어가라고 있는 거였다! 모래 언덕을 다시 한번 올려다본다. 에버랜드 티 익스프레스 급 경사와 믿고 싶지 않은 검은깨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주 잠깐 고민한다. 그냥... 내려갈까? 그래, 중간에 포기하느니, 깔끔하게 시작을 안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몰라! 귓속에서 악마가 살살 속삭인다. 하지만 어쩌겠어, 여기까지 왔는데. 가야지-


 한 걸음을 내딛고 올라갈라 치면, 오히려 미끄러져 저 멀리 내려가는 슬픈 몸뚱이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게 바로 나다. 지금 이 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내 인생,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이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다. 이건, 대학시절 농활 가서 하루에 마늘 2000개 심던 고통과도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  


 개미들의- 아니 사람들의 걷는 자세도 점점 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를 수습해 보려 보폭을 크게 벌려 겅중겅중 걷다가, 점점 모래 언덕의 경사에 어깨가 굽더니, 이제는 두 팔과 두 다리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거짓말 안 하고 딱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계속 든다. 제기랄 거- 젠장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에- 와 가지고- 이 몽골 언덕을- 네발로- 아니지- 두 팔- 두 다리로- 기어- 올라가고- 있냐- 이걸 왜 했지- 이 멍청아- 집에서- 잠이나- 잘걸-  


 그 와중에 머리까지 어질어질하다. 나- 이렇게 죽는 건가? 빈혈도 없는데? 고비 사막 등반 중 쓰러져 사망- 하기에는 나는 꽤 건장한데. 아... 생각해 보니 빈혈이 아니다. 이건 숙취다! 아까 먹었던 맥주가 느글느글하게 속에서 끓는다.

 

 평소 같으면 맥주 한 캔은 별것도 아니지만, 무더운 날씨와 격한 운동에 몸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중간에 쉬면서 이야기해 보니 동행들도 다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 역시 음주 후 무리한 운동은 절대 금물이 맞다. 모든 경고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쨌든, 다시 걸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걷기 무섭게 숨은 가빠오고, 다리는 후들거리다 못해 벌벌 떨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려가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와버렸다.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썰매로 모래 언덕 위를 콱! 찍었다. 썰매를 찍고, 3번 걷고, 또 썰매를 찍고 3번 걷고-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는 오로지 걷고 오른다는 생각 단 하나뿐이다.


 함께 올라가던 동행들도 이제는, 뿔뿔이 흩어졌다. 내 위로 까만 점이 된 동행의 모습이 보이고, 내 밑으로도 까만 점이 된 동행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함께 하는 여정이지만 동시에 결국 나와의 싸움이다. 그 누구도 이 언덕을 대신 올라가 줄 수는 없다. 서로 응원은 해줄 수 있어도, 손잡고 끌고 가 줄 수는 없다.


이제는, 다들 자기 몸도 벅차다. 오롯이 나 혼자 걸어내야 올라갈 수 있다. 두 다리로 걷지를 못하고 헥헥대며 엉금엉금 모래 언덕을 기어 올라가는 내 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서글펐달까?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말이다.


 정상 근처에 올 수록, 중도 포기자도 속출하고 있다. 모래 바닥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도 보이고, 심지어는 토하는 사람들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모래 언덕의 정상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슬프게도, 언덕의 경사는 조금 더 가팔라진다. 고비가 저 눈앞에 보이긴 하는데, 정상은 어째 바다 위 신기루처럼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아 나를 미치게 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정상 위에 먼저 간 동행이 보였다. 이쯤 했으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옆으로 아기를 업고 등반하는 젊은 외국인 부부가 보였다. 발이 모래에 콱 박혀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을 순간의 연속에서 마지막으로 딱 한 발만, 더 힘을 내보기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천근만근한 몸을 이끌어, 마지막 한 발을 내딛고 드디어! 도착이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데,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풍경을 감상할 새도 없이 모래밭에 앉아 한참을 숨부터 골랐다. 모래 바닥만 쳐다보느라 몰랐는데, 해가 벌써 슬슬 지고 있었다. 


 시내 가이드는 얼른 뒤를 돌아 노을을 보라며 성화였다. 나는 기대하는 마음에 괜히 미적대다, 참지 못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잊지 못할 홍고린엘스의 석양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위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모래 언덕의 명암과, 붉게 물든 하늘은 이제껏 본 적 없는 광경이다. 감탄조차 나오지 않을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거기에 있었다. 


 사람들은 고비 사막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광활한 사막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눈앞의 풍경에 몰입하자, 이전까지의 모든 육체적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시간이 흐르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쉽다.


 몽골을 다녀갈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고비 사막의 석양은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글로도, 말로도 오롯이 표현할 수 없는 울컥한 무언가를 함께 느끼고 싶다.  

낙타와도 한 컷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